결혼 안 해도…맥주 마시고 요가 하러 가전매장 찾는 Z세대
지난 21일 방문한 서울 영등포구 베스트샵 양평220점. 1층은 여느 지점과 다름없는 가전 양판점이지만 2층에는 전혀 다른 공간 ‘그라운드220’이 약 1000㎡(300평) 규모로 펼쳐졌다. 2층에 들어서자 빔프로젝터로 한쪽 벽면에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전경을 가득 채운 카페가 나왔다. 이곳에선 휴대용 모니터 속 벽난로 영상으로 ‘불멍’하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그라운드220은 LG전자가 Z세대(1990년 이후 출생자)를 위해 마련한 경험 공간이다. 이 회사 CX(고객경험)센터 관계자는 “20대 초반 대학생 자문단인 ‘LG크루’ 참여자가 ‘결혼 앞둔 예비부부도 아닌데, 베스트샵에 가서 기기를 체험할 일이 거의 없다’고 의견 낸 걸 보고, 이번 공간을 기획했다”며 “젊은 세대들도 우리 제품을 경험할 수 있도록 문턱을 확 낮추고자 했다”라고 소개했다.
제품은 거들 뿐, ‘라이프 스타일 체험’ 공간
가장 인기있는 코너는 수제 맥주를 집에서 직접 만들 수 있는 홈 브루였다. 예상보다 많은 이들이 시음에 참여해 준비된 맥주가 일찍 소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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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회사가 왜 이런 공간을?
LG전자가 이런 공간을 마련한 이유는 Z세대 등 미래 고객에 대한 회사의 고민과 무관치 않다. LG전자 한 관계자는 “젊은 세대들은 ‘가전은 LG’라는 말을 들어는 봤지만, ‘부모 세대의 가전’으로 여긴다”라며 “미래 고객을 확보하려면 이들과 더 친숙해지고 이들의 팬덤을 형성해야 한다는 데 회사 내 공감대가 넓다”고 말했다.
조주완 사장도 지난해 5월 새로운 LG전자를 만들자는 취지의 리인벤트(REINVENTㆍ새로운 변화)’를 선포하고, 젊은 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다양한 제품을 출시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동대문구 경동시장에 복합문화공간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를, 성수동에는 팝업스토어를 마련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외의 젊은 소비자도 적극 공략한다. LG전자는 베트남 호치민에서 소셜미디어와 글로벌 트렌드에 빠른 2030세대를 위해 가전 경험 공간 ‘어나더 사이공’을 23일 선보인다.
삼성전자도 젊은 세대와 접점이 될만한 공간에 공을 들이고 있다. 갤럭시폰은 중장년층이 많으 쓰는 ‘아재폰’ 인상이 있는 데다, Z세대의 아이폰 선호 현상은 더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서울 강남 한복판에 ‘삼성 강남’을 열며 “젊은 세대들을 위한 ‘놀스팟’(체험형 놀이공간)으로 누가 와도 화장실을 자유롭게 쓸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한 만남형 공간으로 자리 잡겠다”고 했다. 경쟁사인 애플 스토어와 불과 600m 떨어진 위치라 더 화제가 됐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Z세대는 태어나서부터 스크린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라, 오프라인 경험에 대한 동경이 있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으면 만족감이 높다”라며 “20대 때의 소비 태도가 평생의 소비를 결정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기에, 이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건 브랜드에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들 공간을 방문했더라도 실제 구매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김보름 한성대 문학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이들은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새로운 체험을 남보다 먼저 해서 ‘얼리어답터’처럼 보일 수 있는지를 중시하며 체험을 놀이로 생각한다”며 “(공간 체험만으론)브랜드의 팬으로 발전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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