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안 해도…맥주 마시고 요가 하러 가전매장 찾는 Z세대

박해리 2023. 12.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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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가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마련한 Z세대 경험공간 '그라운드220(GROUND220)'. 지난 21일 커뮤니티 그라운드에서 진행된 뜨개질 클래스에서 고객들이 스탠바이미 디스플레이를 활용해 뜨개질을 배우고 있다. 뉴스1

지난 21일 방문한 서울 영등포구 베스트샵 양평220점. 1층은 여느 지점과 다름없는 가전 양판점이지만 2층에는 전혀 다른 공간 ‘그라운드220’이 약 1000㎡(300평) 규모로 펼쳐졌다. 2층에 들어서자 빔프로젝터로 한쪽 벽면에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전경을 가득 채운 카페가 나왔다. 이곳에선 휴대용 모니터 속 벽난로 영상으로 ‘불멍’하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그라운드220은 LG전자가 Z세대(1990년 이후 출생자)를 위해 마련한 경험 공간이다. 이 회사 CX(고객경험)센터 관계자는 “20대 초반 대학생 자문단인 ‘LG크루’ 참여자가 ‘결혼 앞둔 예비부부도 아닌데, 베스트샵에 가서 기기를 체험할 일이 거의 없다’고 의견 낸 걸 보고, 이번 공간을 기획했다”며 “젊은 세대들도 우리 제품을 경험할 수 있도록 문턱을 확 낮추고자 했다”라고 소개했다.


제품은 거들 뿐, ‘라이프 스타일 체험’ 공간


LG전자 그라운드220에서는 루틴테스트를 통해 나와 맞는 루틴을 알려주고 이와 관련한 체험을 소개한다. 박해리 기자
그라운드220에서 LG전자 제품은 철저히 조연에 머문다. Z세대가 지향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LG 제품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슬며시 보여주는 역할이다. 간단한 테스트로 방문자의 일상생활(루틴) 속 취향이나 성향을 진단한 후 좋아할 만한 코너를 안내한다. 예를 들어, 건강에 관심 많은 이들에게는 식물 생활 가전 ‘틔운’에서 키운 식용 메리골드를 우려낸 차를 마셔보는 ‘골든 티팟 루틴’을 추천한다. 휴대용TV인 ‘스탠바이미 고’로 게임을 즐기거나 사운드 바가 있는 공간에서 재즈 음악을 감상할 수도 있다. 다양한 강좌도 진행되는데 이날은 마인드 케어 솔루션 ‘브리즈’와 함께 명상과 요가 클래스가 진행됐다.

가장 인기있는 코너는 수제 맥주를 집에서 직접 만들 수 있는 홈 브루였다. 예상보다 많은 이들이 시음에 참여해 준비된 맥주가 일찍 소진됐다.

LG전자는 다음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소비자가전 박람회(CES)에서 전시될 제품도 향후 이곳에 전시할 예정이다. “CES에서 흥미로운 제품이 많이 전시되던데 일반 소비자는 볼 수 없어서 아쉽다”는 LG크루의 의견을 조주완 LG전자 사장이 직접 듣고 이곳에 반영하도록 했다. 봄에는 인근의 양평유수지 생태공원과 안양천변에서 LG전자 제품을 활용한 캠핑 행사도 펼칠 예정이다. 지난 15일부터 일주일간 사전 예약을 받아 운영한 그라운드220은 22일부터 누구나 예약 없이 이용할 수 있다.
그라운드220에서 식물가전 틔운에서 재배한 메리골드로 수확해 만든 차를 시음하는 공간. 박해리 기자

그라운드220에 마련된 맥주를 시음하는 홈브루 코너. 이날 준비한 맥주가 오후 1시가 되기전에 모두 소진됐다. 박해리 기자


가전회사가 왜 이런 공간을?


LG전자가 이런 공간을 마련한 이유는 Z세대 등 미래 고객에 대한 회사의 고민과 무관치 않다. LG전자 한 관계자는 “젊은 세대들은 ‘가전은 LG’라는 말을 들어는 봤지만, ‘부모 세대의 가전’으로 여긴다”라며 “미래 고객을 확보하려면 이들과 더 친숙해지고 이들의 팬덤을 형성해야 한다는 데 회사 내 공감대가 넓다”고 말했다.

조주완 사장도 지난해 5월 새로운 LG전자를 만들자는 취지의 리인벤트(REINVENTㆍ새로운 변화)’를 선포하고, 젊은 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다양한 제품을 출시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동대문구 경동시장에 복합문화공간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를, 성수동에는 팝업스토어를 마련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외의 젊은 소비자도 적극 공략한다. LG전자는 베트남 호치민에서 소셜미디어와 글로벌 트렌드에 빠른 2030세대를 위해 가전 경험 공간 ‘어나더 사이공’을 23일 선보인다.

그라운드220에서 LG그램을 활용해 나만의 티셔츠를 디자인하는 모습. 직접 사진이나 그림을 넣어 티셔츠를 제작해 구매할수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판매하는 굿즈 중 가장 인기있는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삼성전자도 젊은 세대와 접점이 될만한 공간에 공을 들이고 있다. 갤럭시폰은 중장년층이 많으 쓰는 ‘아재폰’ 인상이 있는 데다, Z세대의 아이폰 선호 현상은 더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서울 강남 한복판에 ‘삼성 강남’을 열며 “젊은 세대들을 위한 ‘놀스팟’(체험형 놀이공간)으로 누가 와도 화장실을 자유롭게 쓸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한 만남형 공간으로 자리 잡겠다”고 했다. 경쟁사인 애플 스토어와 불과 600m 떨어진 위치라 더 화제가 됐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Z세대는 태어나서부터 스크린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라, 오프라인 경험에 대한 동경이 있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으면 만족감이 높다”라며 “20대 때의 소비 태도가 평생의 소비를 결정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기에, 이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건 브랜드에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 강남' 체험형 플래그십 스토어 '삼성 강남' 연합뉴스


다만, 이들 공간을 방문했더라도 실제 구매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김보름 한성대 문학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이들은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새로운 체험을 남보다 먼저 해서 ‘얼리어답터’처럼 보일 수 있는지를 중시하며 체험을 놀이로 생각한다”며 “(공간 체험만으론)브랜드의 팬으로 발전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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