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기후위기의 시계
기후위기는 기자로서 참으로 다루기 어려운 주제다. 익숙한 문제이다 보니 ‘했던 얘기를 또 한다’고 느껴지기 쉽고, 전문용어나 수치가 많아 조금만 깊게 들어가도 ‘머리 아픈 기사’가 되고 만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제28회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를 지켜보면서도 비슷한 고민이 들었다. 그러나 복잡하지만 중요하고, 들어본 것 같지만 또 해야만 하는 것이 기후 이야기였다.
COP는 ‘당사국 총회’를 뜻한다. 1995년부터 이어진 COP는 기후변화 대응을 논의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회의다. 유엔 기후변화협약에 참여한 국가들(당사국)이 모여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계획을 협의한다. 회의의 바탕이 된 기후변화협약은 1992년 채택됐다. 인간이 지구 기후 체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자는 내용으로, 기후변화 관련 최초의 국제협약이었다.
COP의 성과는 1997년 ‘교토의정서’와 2015년 ‘파리협정’으로 나뉜다. 선진국에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여했던 교토의정서는 미국의 불참 등 여러 한계를 마주했다. 2007년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새 기후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화됐고, 8년의 논의 끝에 파리협정이라는 결과물이 나왔다.
파리협정은 인류 생존을 위한 한계선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상승’으로 제시하고 ‘1.5도’를 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토의정서와 달리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각국이 스스로 정하도록 했다. NDC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별다른 제재도 없다.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기간 역시 설정하지 않았다. 대신 2020년부터 5년마다 주기적으로 NDC를 제출해서 공개적인 압박을 받도록 설계했다. 목표 달성을 위해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지 점검하는 ‘전 지구적 이행점검(GST)’도 2023년부터 5년마다 실시해야 한다.
올해 COP28이 중요했던 이유는 중간성적표라고 할 수 있는 GST가 처음으로 시행된 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의를 앞두고 취재 과정에서 “이번 COP는 관심이 적을 것”이라거나 “얘깃거리가 없을 것 같다”는 식의 회의적인 전망을 여러 번 접했다.
미국 유럽 등은 화석연료 퇴출을 주장하고 있는데, 총회 의장국이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UAE)인 데다 석유업계 등의 반발이 거세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였다. 결과는 전혀 달랐다. ‘퇴출(phase out)’ 대신 ‘전환(transitioning away)’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되긴 했지만 COP 역사상 처음으로 최종합의문에 화석연료가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개인적 소감이긴 하나, 전 세계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기후위기 속에서 더 ‘주목받지 않는’ COP는 없을 것이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특히 파리협정에 따라 각국은 내년부터 2년 주기로 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 감축목표 이행 현황 등을 담은 ‘투명성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2035년에 달성해야 하는 NDC 제출 기한도 벌써 2년 앞으로 다가왔다. 파리협정에서 합의한 ‘진전의 원칙’에 따라 감축 목표는 꾸준히 상향해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미흡한 국가를 향한 국제사회의 압박은 갈수록 거세질 수밖에 없다. 2020년 기준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9위인 한국이 마주한 현실이다.
지난 18일 정부가 개최한 COP28 결과 공유 포럼에서도 부처 관계자와 전문가의 입에서 ‘국제사회의 요구가 커질 것’이라는 의견이 반복해서 나왔다. 130개국이 참여한 ‘2030년 세계 재생에너지 용량 3배 확대, 에너지효율 2배 향상’ 서약 이행,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손실과 피해 기금’ 공여 등 전방위로 한국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세계 과학자들은 2020년부터 2030년까지 10년간의 노력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결론 내렸다. 지구 평균온도는 이미 산업화 이전 대비 1.2도 상승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기후위기 문제를 이제는 정책의 최전선으로 끌어와야 할 때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새해를 외면할 수 없듯 시간은 차곡차곡 흘러 결국 2030년과 그 이후에 우리를 데려다 놓을 것이다. 기후위기 시계는 훨씬 더 빠르게 흘러 우리를 어디로 몰아넣을지 모른다. 역대 가장 이상한 겨울을 지나고 있는 바로 지금, 또다시 기후위기를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상은 사회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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