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성탄의 재구성
성탄절이 다가왔다. 올해는 차분하게 성탄의 주인공을 묵상해보면 어떨까.사실 성탄 이야기는 너무 유명해 모두 안다고 생각한다. 동방박사가 세 사람이었으며 이들은 탄생 당일 찾아왔고, 예수는 마구간에서 태어났다는 얘기들 말이다. 하지만 성경을 꼼꼼히 읽어본다면 이런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우선 출생 장소다. 탄생과 관련된 구체적인 이야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만 다룬다. 누가복음(2장)은 요셉과 마리아가 원래 살던 나사렛에서 왜 베들레헴으로 갔는지 소개한다. 다윗 가문 자손이었던 그들은 호적 등록을 위해 베들레헴으로 갔다. 누가복음은 그들이 거기 머무는 동안 마리아가 해산하게 돼 ‘첫아들을 낳아 포대기(강보)에 싸서 구유(여물통)에 뉘었다’고 기록한다. 그런데 누가복음 어디에도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곳이 언급돼 있지 않다. 마구간이나 외양간이란 단어도 없다. 구유 때문에 마구간일 거라고 추측했을 뿐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예수가 집 바깥 추운 외양간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누가복음은 그저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다’고만 기록할 뿐이다.
그렇다면 구유가 있던 곳은 어디였을까. 여기서는 성서고고학이나 고대 이스라엘 문화를 통해 추측할 수 있다. 1세기 당시엔 자연 발생한 동굴을 이용해 집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여관 주인은 호적 등록차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방이 없자 요셉과 마리아에게 집 뒤에 있는 동굴을 소개했을 것이다. 출산이 임박한 마리아의 상태를 봐서라도 가까운 곳을 안내했을 가능성이 크다. 마리아는 거기서 예수를 낳고 가까이 있는 구유에 아기를 뉘었을 것이다.
이런 아기 예수를 처음으로 보러왔던 사람들은 동네 양치기였다. 누가복음은 그 지역 목자들에게 주의 사자(천사)가 나타나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 곧 그리스도 주가 나셨다고 말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천사들의 말을 들은 목자들은 아기를 확인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달려간다. 그러고는 아기를 확인하고 천사의 고지(告知)를 전한다.
이후 아기 예수는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았고 한 달여를 더 머물렀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첫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지냈다. 이는 유대인 율법이 정한 것이었다. 레위기에 따르면 산모는 남아의 경우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하고 산모의 몸이 깨끗해질 때까지 33일을 집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마리아와 예수는 동굴에서 40여일을 머물다 제사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이 분명하다.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 이야기는 마태복음(2장)에 등장한다. 이들은 별을 보고 예루살렘까지 온다. 그러고는 헤롯왕을 만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냐’고 묻는다. 이 말을 들은 헤롯과 관료들은 놀라워하면서 유대인의 왕이 베들레헴에서 날 것이라는 예언서 내용을 확인한다. 동방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아 마침내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본다. 여기서 집은 시간상 베들레헴의 동굴은 아니다. 목자들이 아기를 봤던 그 밤은 아니었다. 동방박사들은 여러 달이 지나 요셉과 마리아가 원래 살던 동네의 집, 곧 나사렛에 갔을 것이다.
이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쳤다. 마태복음엔 박사가 몇 명인지 언급되지 않는다. 세 가지 예물을 드렸기에 3명이라고 추측했을 뿐이다. 박사들은 누구인가. 우리말 성경엔 박사로 나오지만 영어 성경엔 ‘마기(magi)’ 곧 마법사나 점성술사다. 페르시아 바빌론 아라비아에서 온 사람들로 추정된다.
동굴, 구유, 양치기, 그리고 동방의 점성술가. 예수 탄생 자리엔 모두 비천한 장소와 사람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구주를 알아보고 만났으며 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주목받지 못한 장소, 비주류의 사람들, 그리고 나 같은 죄인을 위해 한 아기가 태어났다.
신상목 미션탐사부장 smshi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정식 등판 전인데…‘대통령 적합도’ 한동훈 45%·이재명 41%
- 전청조, 첫 재판서 눈물…“혐의 인정, 수익은 다 남현희에게”
- ‘살림남’ 나왔던 강성연·김가온 이혼…“일사천리로 진행”
- 경복궁 낙서 테러, 빙산의 일각…“내부 이미 도배됐다”
- 경차 자리 2칸 주차 BMW…신고하자 “뇌 없냐” 욕설
- “39년간 동네의 등불”…약사 부고에 모인 애도 쪽지들
- 尹 “늘 한동훈 의견 구했다…있는 그대로 말해줄 사람”
- “휠체어OK”…전신마비 유튜버 열애 밝힌 걸그룹 멤버
- ‘13월의 월급’… 연말정산, 조금이라도 더 절세받는 꿀팁
- ‘실세’ 한동훈의 1년7개월… 서초동과 여의도, 엇갈린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