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더 다가가기 위해… 젊은이도 전통적 예전 중시

전병선 2023. 12. 23. 03: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병선 기자의 교회건축 기행] <8> 충현교회
유럽풍의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충현교회 전경. 높이 솟은 탑과 대리석 마감은 중후하고 웅장한 느낌을 더한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충현교회(한규삼 목사)를 찾은 건 지난 8일이었다. 서울에 있는 잘 알려진 대형 교회, 유럽풍의 고전적 고딕 양식으로 사진으로는 많이 봤지만 그동안 방문할 기회가 없었다. 역삼동은 벤처기업의 요람 테헤란밸리를 중심으로 업무용 빌딩이 숲을 이룬 곳이다. 그 숲속 어딘가에 사진으로 본 그 큰 교회가 있으리라고 상상은 잘 안 됐다.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교회로 향했다. 언주역 인근 차병원을 지나 좌회전을 하자 3~4층 상가 건물들이 나왔고, 이어 다세대주택들 사이를 지났다. 그렇게 4분여를 갔더니 정면에 고딕 양식의 큰 건물이 딱하고 나타났다. 탐험을 하다 발견한 신세계 같았다. 교회는 1만6000여㎡(5000여평)에 본당, 선교관, 교육관 3개, 복지관으로 이뤄졌다. 대리석 외관의 본당은 지하 1층, 지상 7층 대예배당 4500석 규모로 보는 이를 압도했다.

교회 대예배당. 신석현 포토그래퍼

교회건축의 역사

충현교회는 웅장한 모습은 물론 전통적 예전, 하나님에 대한 열정, 그리고 헌신적인 이웃사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충현교회는 1953년 9월 6일 한 가정에서 18명으로 시작해 1958년 서울 충무로 961㎡(291평)에 성전을 건축했고 현 성전은 두 번째 건축물이다. 충무로 성전 당시 교회는 크게 부흥해 성도는 계속 늘고 공간은 한계에 다다랐다. 그래서 1968년 출석 성도 1300여명일 때 건축위원회를 구성한다.
충현교회 70년사 편찬위원장인 이상석 장로가 교회 머릿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충무로에서 한강 이남 이전은 당시 김창인 목사의 생각이었다. 지난 8일 만난 이상석 장로의 이야기다. 충현교회는 올해 70주년을 맞았고 이 장로가 70년사 편찬위원장을 맡았다. 1969년 11월 당회 때 김 목사는 그렇게 말했다. “나라 경제가 발전하면 서울시 인구가 늘고 분산될 수밖에 없다. 새 성전 용지를 굳이 충무로 근처만 생각하지 말고 넓게 보자.”

새 성전 건축의 목적은 세 가지로, ‘신령한 예배를 위해, 믿음의 유산을 물려줄 일꾼양성을 위해, 한국교회를 섬기기 위해 가장 좋은 환경을 만들자’였다.

교회는 1970년 논현동에 2만9000여㎡(9000여평)를 샀고 서울시 정책 때문에 논현동 땅 대신 현 역삼동 땅 2만여㎡(6067평)를 확보했다. 이후 건축허가 등 여러 우여곡절로 착공은 1980년 4월 8일에야 이뤄졌다. 충무로 성전 출석은 5000여 명이었다. 이후엔 재정 부족으로 공사가 지지부진했다. 충무로에만 있으면 교회 건축의 실체가 잘 안 보이니까, 일단 예배 장소를 건축 중인 교회로 옮기기로 했다. 교회는 선교관과 교육관을 먼저 짓고 1984년 4월에 준공 감사예배를 드리며 미완성된 본당 1층 갈릴리홀 시멘트 바닥 위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찍은 충현교회와 인근 모습. 충현교회 홈페이지


성도들이 건축 중인 예배당을 눈으로 보니까 더 간절하게 기도하게 됐다. 교회는 1986년 3차 공사 개시 이후 속도가 붙어 1987년 7월 입당예배를 드렸다. 예배엔 9000여 명이 참석했다. 이후 1년 뒤인 1988년 12월 20일 헌당하면서 충현교회 성도들의 기도와 땀이 열매를 맺었다.

그 과정에서 특별한 표징도 있었다. 1986년 6월 9일 본당의 십자가 종탑을 올리는 날이었다. 맑은 여름날 오후였는데 하늘에 무지개가 나타났다. 성도들은 이것이 건축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라 믿고 더 기도하며 헌신했다고 이 장로는 설명했다.

고딕 양식은 10주년 때 새 성전 건축을 고려할 때 결정했다. 건축위원들은 당시 미국과 유럽에 1개월여간 탐방을 다녀왔다. 대리석은 파주에서 실어날랐다고 했다. 대리석은 고급스럽고 내구성이 뛰어나다. 가능하면 더 좋은 대리석을 찾기 위해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전통적 예전과 하나님에 대한 열정

교회는 고전적 외관 만큼이나 예전도 전통적이다. 공예배의 분위기가 경건하고 차분하며 전통악기만 사용하고 찬송가 위주로 부른다. 이 장로는 “젊은이들도 본당에서 예배 드릴 땐 그것을 고수한다”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경건한 분위기에서 예배드려야 한다는 데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2017년 4월에 부임한 제6대 한규삼 현 담임목사도 교회의 좋은 전통과 신앙적 유산을 후대에 물려주자고 강조한다. 이런 모습 때문에 충현교회는 소속된 보수 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의 장자교회로 꼽힌다.

또 하나님을 알아가고 알리려는 열정도 남다르다. 대표적인 것이 어르신을 포함한 전교인 단기 선교사 파송이다. 26개국 대상으로 많을 땐 1년에 300여개 팀, 2800여명이 나갔다 왔다. 전도 용어를 현지어로 말할 수 있어야 단기 파송한다. 그런 철저한 준비 때문에 선교는 큰 열매를 맺고 다녀온 성도들의 선교 열정은 크게 달아오른다. 이것이 교회 부흥의 원천이 됐다. 자체 편찬한 주일학교 교재도 부흥에 큰 몫을 했다. 교재가 좋아서 교단 총회 차원에서 채택할 정도였다. 매 주일 예배 후 진행하는 교구 모임도 40여년을 이어가며 교회 성장을 견인했다.

헌신적인 이웃사랑

최근 교회가 집중하는 활동은 이웃을 섬기는 것이다. 한 목사가 부임한 후 이웃과 함께하는 교회로 나아가자는 목표를 세우고 다양한 활동과 더불어 주차장과 앞마당을 개방했다. 앞마당에선 매주 목요일 점심때 간이 음악회를 연다. 클래식을 전공한 성도 음악가들이 이웃과 직장인들을 상대로 20여분 연주하고 커피나 차를 무료로 나눠준다. 음악회 공간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지역의 핫스팟이 됐다. 또 교육관 1층에는 강남구청과 함께 청년 창업센터도 오픈할 예정이다.

이웃에 앞서 성도에 대한 사랑도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교회는 오래전부터 성도의 장례에 큰 관심을 기울여왔다. 이전엔 담임목사가 직접 염을 했다. 부목사들, 장로들도 염을 배워 담임목사 부재 시 이를 대신했다. 많은 이들이 그런 모습에 큰 감동을 하고 교회로 몰려왔다고 한다. 요즘 염은 안 하지만 교구별로 상조팀이 있어 위로 입관 발인 예배 때 최소 40~50여명이 참석한다. 상조 찬양대도 따로 있다.

교회 1층에 마련된 역사자료 전시관. 신석현 포토그래퍼


이 장로는 충현교회의 구석구석을 안내했다. 본당 첫 예배 장소였던 1층 갈릴리홀은 2017년 리모델링하면서 결혼 예식 등 다목적 장소로 활용된다고 자랑했다. 1층 로비엔 역사관을 설치하고 70주년을 맞아 충현교회 홈페이지와 더불어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들었다면서 6개월간 전문업체에 맡겨 옛날 사진 등 7300여 건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장로는 “담임목사님을 필두로 전통적 가치는 지키며 하나님께 더 나아가고 사람들에게 더 다가서기 위해 오늘도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