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의 유혹, 이렇게 다가온다
연말연시는 감정의 진폭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시기다. 다양한 모임과 만남 속에서 즐거운 교제가 이뤄지기도 하지만, 타인과 자신의 높고 낮음을 쉼 없이 비교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새로운 출발선에서의 결단 등 심리적 위축과 팽창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겪는 시기이기도 하다.
사탄이나 악의 존재는 바로 이런 시기에 인간의 약점을 파고든다. 연말연시가 사탄의 꾐과 유혹에 가장 노출되기 쉬운 시기로 꼽히는 이유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인 CS 루이스(1898~1963)는 저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통해 인간을 현혹하는 악마의 계략을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고참 악마인 스크루테이프가 신참 악마인 웜우드에게 전하는 31개의 편지엔 환자(인간)를 타락시키고 원수(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전략이 상세히 묘사돼 있다.
국민일보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등장하는 악마의 전략 4가지를 뽑아 연극 ‘스크루테이프’의 제작자 추상미(왼쪽) 감독, 기독교 문화 평론가 성현(오른쪽) 필름포럼 대표와 함께 스크루테이프의 공격을 막아내는 우리의 자세를 모색해본다.
스크루테이프: “원수가 만든 쾌락들을 인간들이 즐기게 하되, 원수가 금지한 때에, 원수가 금지한 방식과 수준으로 즐기도록 유인해야 해.”
추 감독: “운전하면서 신호 대기 중에 시선을 끄는 LED 광고판만 봐도 오감이 자극되는 시기다. 어딜 가도 정서적으로 들뜨게 되고 소비를 통해 만족을 극대화하는 요소들이 즐비하다. ‘연말인데 긴장감 놓고 세상의 즐길 거리를 누려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선을 넘는 해방감에 빠지기 쉽다. 쾌락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창조한 산물이다. 하지만 ‘감각적 쾌락’에 매몰되게 하는 게 스크루테이프의 중요한 전략일 것이다.”
성 대표: “가정사역자인 게리 토마스는 ‘쾌락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지 말라’고 경고한다. 여기서 말하는 쾌락은 말초적 쾌락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쾌락의 종류는 훨씬 다양하다. 지적 탐구로부터 오는 쾌락, 누군가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오는 쾌락, 또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을 정리하는 데서 쾌락을 느끼기도 한다. 책장에 꽂힌 책이 많다는 데서 오는 쾌락은 그 바탕이 소유에 있다. 하지만 그 책을 읽고 얻게 된 깨달음에서 오는 쾌락은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소비에서 오는 감각적 쾌락에 매몰되는 문화를 넘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해주신 쾌락의 본질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스크루테이프: “처음엔 허영심으로 시작했다 해도 결국에는 습관으로 굳어지는 법. 중요한 점은, 자기가 좋아하는 어떤 것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짜증을 부리게’ 해야 한다는 거야.”
추 감독: “SNS가 주는 초연결성은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적잖은 폐해를 낳고 있다. 허영심을 부추기고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우월 의식,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스크루테이프가 유혹에 가장 잘 사용하는 수단 중 하나가 창세기에 표현된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것’(창 3:6)이다. 내가 최고의 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도 그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진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이미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것을 망각하게 한다. 선물 주고받는 분위기가 자리 잡은 연말은 그렇게 허영과 자랑으로 점철되고 만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도 그 출발은 선한 의지로부터였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약함을 건드리는 도구로 사용되고 이를 통해 결국 악함을 드러내게 하는 게 악마의 의도 아닐까.”
성 대표: “성경은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 16:6)라고 기록한다. SNS엔 구역 없이 모든 것이 들어와 있다. 내 곁의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리기 쉬운 구조다. 가족 친지들이 함께하는 명절 모임을 떠올려보자. 1년에 몇 번 안 되는 만남의 기회인데도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장면이 익숙하다. 내 곁에 있는 가족의 소중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365일 근사하게 외식하는 금수저는 인류의 극소수다. 자족과 감사를 회복해야 한다.”
스크루테이프: “우리가 바라는 건 전 인류가 무지개를 잡으려고 끝없이 쫓아가느라 지금 이 순간에는 정직하지도, 친절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하게 사는 것이며, 인간들이 현재 제공되는 진정한 선물들을 미래의 제단에 몽땅 쌓아 놓고 한갓 땔감으로 다 태워 버리는 것이다.”
추 감독: “‘감사는 과거를 바라보고 사랑은 현재를 바라보지만 정욕 탐식 불안은 미래를 바라본다.’ 연극 ‘스크루테이프’에 등장하는 대사다. 사람들은 점이나 운세 등 자신의 미래를 알아보려는 행위를 통해 불안감을 덜고 심리적 안정감을 취한다. 스크루테이프는 성경이 말하는 인내와 노력의 가치 대신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피상적인 현실이 실제 삶이라고 믿게 한다. 인내의 열매를 위해선 분명 시간이 필요한데도 조급함과 불안을 조장한다.”
성 대표: “‘기도’라는 이름의 동전을 투입하면 반드시 ‘응답’이라는 음식이 나오는 게 신앙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 그대로 ‘자판기 신앙’이다. 여기엔 투입과 산출밖에 없다. 자판기의 즉석커피를 먹을 때와 드립커피를 먹을 때는 분명 다르다. 즉석커피를 먹는 사람들은 카페인이 몸에 들어가 잠을 깨는 것 외엔 찾을 게 없다. 하지만 드립커피는 원두를 갈고 물을 부으며 커피 본연의 향과 산미를 느끼는 모든 순간에서 행복을 찾는다. 기복 신앙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을 ‘문제 해결사’로 한정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해결사가 아니라 ‘동행자’다. 문제 해결이 안 되면 다른 자판기로 시선을 돌려버리는 게 아니라 어두운 시기 안에서 내가 안고 있는 문제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느끼는 자세가 필요하다.”
스크루테이프: “가장 중요한 건 환자가 어떤 것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게 막는 일이다. 느끼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점점 더 행동할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결국에는 느낄 수도 없게 되지.”
추 감독: “연초가 되면 성경통독 필사 QT(말씀묵상) 등 개인 신앙에 대한 새해 결심을 하는 성도들이 많다. 이 같은 결심이 작심삼일로 끝나버린 채 후회만 남게 만드는 것, 역설적으로 자신의 루틴(습관적 절차나 동작)을 스스로 옭아매는 그물로 작용하게 해 본질을 잃고 형식에 치우치게 하는 것도 스크루테이프의 전략이 될 수 있다. 형식 우선주의에 빠지게 되면 결심이 곧 우상이 될 수 있다.”
성 대표: “기독교 철학자 제임스 스미스의 저서 ‘습관이 영성’의 원제는 ‘당신이 사랑하는 것이 당신이다(You are what you love)’이다. 다이어트 한다고 백날 외쳐봐야 그 사람이 진짜 사랑하고 행복감을 느끼는 게 음식 먹고 포만감을 느끼는 거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랑의 대상이 포만감이 아니라 내 몸의 건강으로 바뀔 때 식단이 바뀌고 성공적인 다이어트에 다가설 수 있다. 사람은 연약한 존재다. 세워놓은 습관과 목표가 흔들릴 때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독려해줄 수 있는 동행자를 곁에 두는 게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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