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크로 투자 대가, ‘규제’ 필요성 역설하다 [홍기훈의 ‘세계를 바꾼 경제학 고전’]

2023. 12. 2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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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금융의 연금술

조지 소로스는 헝가리계 미국인 억만장자 투자자이자 자선가다. 2023년 10월 기준으로 그의 순자산은 67억달러에 달한다. 조지 소로스는 1930년 8월 12일 헝가리 왕국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거주하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다른 헝가리계 유태인과 마찬가지로 소로스 집안은 자신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에 불안해했다. 1936년 자신들이 유대인임을 성으로는 구별할 수 없게 만들도록 ‘Schwartz’에서 ‘Soros’로 성을 바꿨다.

나치 치하 헝가리에서 그의 가족은 쪼개져서 따로 살면서 위조 신분증을 이용했다. 덕분에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었다. 훗날 소로스는 나치 치하 헝가리에서 살아남았던 경험이 그를 성장하게 했다고 이야기했다.

17세가 되던 1947년 영국으로 이주해 1949년 런던정치경제대(LSE)에 진학했다. 1951년 철학 학사 학위를, 그리고 1954년에는 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생 소로스는 당시 LSE에서 논리실증주의로 유명했던 철학자 칼 포퍼를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소로스는 포퍼에게 논문 지도를 받았다. 소로스는 그의 스승에 대해 “포퍼의 평은 신랄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고 표현했다. 소로스는 영국에서 지내는 동안 포퍼와의 교류만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고 회고했다.

포퍼는 소로스에게 스스로 생각을 정립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덕분에 소로스는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자세를 일생 내내 유지했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훗날 금융 관련 업무를 맡을 때도 철학적 사유를 중요시하게 된다. 이는 소로스가 금융업계에서 뛰어난 업적을 달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영국과 미국의 금융기관에서 일한 후, 1969년에 첫 번째 헤지펀드인 더블이글을 설립했다. 이 펀드에서 얻은 수익으로 1970년 두 번째 헤지펀드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를 설립했다. 소로스펀드는 이후 퀀텀펀드로 이름을 바꿨다. 설립 당시 1200만달러 정도던 순자산총액은 2011년 250억달러로 불어났다. 1970년대 미국 증시가 10년 동안 47% 상승할 때, 퀀텀펀드는 420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의 펀드는 2010년까지 320억달러가 넘는 이익을 일궈냈다.

조지 소로스
시장에서의 광풍과 폭락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조지 소로스가 집필한 ‘금융의 연금술’은 총 6개장으로 이뤄져 있다. 한글 번역본 기준 2장인 ‘이론’과 3장인 ‘역사적 전망’은 소로스가 생각하는 금융과 시장에 대한 이야기다. 학자가 아닌 현존하는 가장 공격적인 펀드매니저 중 한 명인 소로스가 쓴 글이라기에는 굉장히 철학적이고 현학적이다. 이어지는 4장부터는 실전을 위한 내용을 소개한다. 4장은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바로 ‘소로스의 매매일지’다.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4장을 읽고 나면 5장인 ‘평가’와 6장인 ‘처방’은 아주 쉽게 읽힌다.

소로스에 따르면, 시장에 대한 기대가 시장을 움직이고 시장의 움직임이 다시 시장에 대한 기대를 형성한다. 예를 들어 투자자들이 A기업 주가가 오를 것이라 생각하고 주식을 사면, A기업 주가는 오른다. 그 회사가 갑자기 미래 전망이 더 밝아져서가 아니라, 투자자들이 주가가 오른다고 믿었기에 실제로 오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실현하는 예언처럼 움직이는 주가는 결코 기업의 실제 가치에 근접할 수 없다. 되레, 오른다는 전망이 만들어낸 상승이 다시 낙관적인 기대를 유발하며 주가는 계속 상승한다. 그러다 어떤 임계점을 넘는 순간, 투자자들은 이제는 증시가 내려갈 것이라고 예측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을 변곡점으로, 투자자들은 이번에는 주가가 하락한다는 예언을 스스로 실현시킨다. 그사이 기업의 진실된 가치는 큰 변화가 없었더라도 말이다. 소로스는 역사 속 여러 버블의 형성과 붕괴를 사료로 들며 시장은 결코 효율적이지도, 안정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시장에서 광풍과 폭락은 이상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는 판단이다.

소로스에게는 이 움직임이 바로 투자 전략의 근간이다. 그는 흔히 ‘펀더멘털’이라고 부르는 기업의 내재적 특성을 분석하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내재된 가치란 없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왜냐하면 내재적 특성을 분석하고, 그 판단에 맞춰 주가가 움직이면 이에 기업 사정도 주가에 영향을 받아 변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투자 전 투자 대상과 시장 플레이어들을 철저히 파악한다. 그 뒤에 이들의 행동 유인과 심리를 예측해 상승 또는 하락에 베팅한다.

예견이 곧 시장을 움직이는 법이라는 그의 철학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예시는 ‘파운드화 공격 사건’이다. 국가가 환율을 고정하는 대신, 세계 시장에서 자유롭게 화폐가 거래되게 하면 환율이 시장 균형을 찾아가며 화폐 시장이 안정을 찾는다는 게 종래의 정론이었다. 그러나 소로스는 재귀 이론에서 말했듯 급등과 폭락이 시장의 자연스러운 면모라는 그의 주장을 몸소 보여준다.

규제가 실패했다고 방임 정책을 펼치지 마라

그는 1992년 영국의 파운드화가 인위적으로 고평가됐다고 판단하고 이를 공매도한다. 영란은행이 화폐 가치를 높게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시장에서 파운드를 사들일 때, 소로스는 다른 사람들이 가진 파운드를 빌려다 계속 팔았다. 한 펀드매니저가 영국이라는 나라의 중앙은행과 정면으로 격돌한 것. 그는 파운드가 폭락할 것이라는 예견을 천문학적인 액수의 공매도로 직접 실현시켰다. 그의 공격을 버티지 못한 영국 정부는 고정 환율 정책을 포기했다. 파운드화 가치는 폭락했고, 소로스는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

이렇듯 소로스는 이 책에서 시장은 효율적이지도, 안정적이지도 않다는 강한 논거를 들어 보인다. 그리고 좀 더 나은 시스템에 대한 제언을 덧붙인다. 그 내용은 사실 소로스 스스로가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고려하면 의외의 이야기다.

소로스가 보기에, 어떤 중앙통제기구보다도 시장이 항상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자원을 배분한다는 시장만능주의는 틀린 주장이었다. 그는 20세기 중후반의 은행 규제는 과도했지만, 현 시대의 은행 규제는 오히려 너무 느슨해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한쪽 극단이 통하지 않았다고 해서 반대쪽 극단으로 치닫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그는 시장이 내포하고 있는 불안정성을 어느 정도 상쇄가 가능한 세계적 규제기구가 있어야 함을 설파한다. 소로스는 (자기 자신의 주무기로 사용한) 시장의 자유로운 움직임과 막대한 부채는 필연적으로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정도가 지나치면 국가적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일부의 이익이 아닌 전체 사회적 편익을 고려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그는 또 이익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잣대가 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인다. 이익은 목적이 아닌,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경제학 박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9호 (2023.12.20~2023.12.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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