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톡!] “아빠 없이 동생 돌보며 대입 준비한 아들에게 성탄 선물 부탁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장애가 있는 아빠와 여동생을 돌보면서도 올해 8월 검정고시를 고득점 합격했습니다. 대학 입시도 준비 중입니다. 5년 전 아이 엄마와 이혼 후 두 자녀와 살다 구속된 몸이라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미술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미술용품 등의 학용품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올해 겨울 서울 온누리교회(이재훈 목사) 엔젤트리에 도착한 사연입니다. 이 사연을 보낸 주인공은 한 교도소의 수감자입니다. 영어(囹圄)의 몸으로 가족에게 갈 수 없는 만큼 교회가 “아들에게 검정고시 합격과 생일, 대학 합격 축하 선물을 전해달라”고 성탄 선물을 요청한 것입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소외이웃에게 온정을 전하기 위해 2015년 시작된 이 교회의 엔젤트리 사역은 재소자 자녀에게 성탄 선물을 전하기 위해 출발한 미국의 엔젤트리 프로그램을 본뜬 것입니다. 교회 측에 따르면 엔젤트리는 1972년 앨라배마주 지역 교회들이 인근 교도소 수감자 자녀에게 선물을 전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이들 교회가 교도소로 성탄 선물을 보냈는데 수감자들이 이를 다시 자녀에게 보내는 걸 보고 착안했다고 합니다.
엔젤트리가 미국 전역으로 확대된 것은 1982년쯤입니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 74년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돼 수감 중 회심한 찰스 콜슨이 옥중에서 영감을 얻어 출소 후 엔젤트리 프로그램을 본격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적잖은 미국 기독교인이 이 사역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온누리교회 엔젤트리는 재소자 자녀뿐 아니라 각지의 소외이웃에게도 성탄 선물을 전하고 있습니다. 국민일보는 그간 ‘반짝이는 교회의 밤 따뜻한 나눔 속으로’(12월 16일자 7면 참조) 등의 기사로 누군가의 산타가 될 수 있는 엔젤트리 사역을 소개했습니다. 올해는 7400여건의 사연이 답지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기사에 담지 못한 뭉클한 사연도 적잖습니다.
특히 주변의 독거 어르신을 위한 성탄 선물을 신청한 사연이 많았습니다. 한 사연 신청자는 거동이 어려운 80대 독거 어르신을 위한 보행기를 요청했습니다. “혼자 외롭게 지내시는 어르신입니다. 몸이 불편하신데 보조기로 따뜻한 봄엔 교회 오시면 좋을 것 같아 신청합니다. 엔젤트리 선물로 외로운 마음이 조금은 따뜻해지길 바라봅니다.” 교회는 12월 말 엔젤트리 후원자가 마련한 보행기를 들고 해당 어르신에게 선물을 전하며 사용방법도 안내할 계획입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무허가 컨테이너에서 거주하는 어르신을 돕고 싶다는 사연도 있습니다. 사연 신청자는 “68세 어르신인데 전립선암을 앓은 데다 당뇨와 디스크가 있어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는 분이다. 가족이 없어 늘 외로워하는데 엔젤트리가 선물을 전달한다면 추운 겨울 큰 힘이 될 거 같다”며 식료품을 요청했습니다. 장애로 인한 대인기피증을 앓는 58세 여성을 위해 목도리 장갑 선물을 요청한 사연도 있었습니다. “자매님은 심한 지적장애가 있습니다. 고아로 보육원에서 지내다 18세 때 만난 지인의 도움으로 현재까지 함께 지냅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 엔젤트리 선물로 기쁘게 해 드리면 좋겠습니다.”
위기 청소년을 위한 성탄 선물을 요청하는 사연엔 가슴 시린 이야기도 적잖습니다. 지난 2015년 엔젤트리에 도착한 사연엔 친엄마에게 버려지고 새아버지와 살며 성추행을 당하다 청소년쉼터에 온 재중동포(조선족) 자녀 A양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연을 신청한 이는 이주민센터의 부설 교육기관에서 이 청소년을 돌본 전도사님입니다. “새아버지에게 상처받고 친어머니에 버림받은 아이가 하나님 사랑 안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선물은 아래 사랑의 글귀를 담은 선물을 만들어 주면 좋겠습니다.” 전도사님이 부탁한 선물은 선물에 사랑의 문구가 일일이 붙어있는 ‘30일 사랑의 키트’였습니다. 이어폰엔 ‘하나님은 너의 기도와 신음에 응답하는 분이야~^^’란 문구를, 화장품엔 ‘하나님이 정말 사랑하는 A는 소중하니까’ ‘우리에게도 A는 정말정말 소중하니까’란 문구를 붙여달라는 세심한 요청이었습니다.
익명으로 선물 받은 이들 가운데는 교회로 감사 인사를 전하는 분도 있습니다. 최근 교회가 소개한 문자에는 이들의 진심이 잘 드러납니다. “카드에 메모까지 남겨주셔서 뜨거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두 아들도 받은 그 이상으로 베풀고 나누는 마음의 성자로 키우겠습니다.”
성탄과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루의 삶이 힘겨운 누군가에게 온정을 더하는 작은 나눔 한번 실천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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