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소멸 걱정하시는 분들, 이것부터 좀 보시죠

윤일희 2023. 12. 2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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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인정 지음 <고통 구경하는 사회>

[윤일희 기자]

2015년 인기몰이를 했던 영화 <베테랑>의 말미에 이런 장면이 있다. 베테랑 형사가 악당과 일촉즉발의 결투를 벌이는데 현장을 둘러싼 모든 사람이 개입하지 않는다. 대신 모두들 손에 핸드폰을 쥐고 이를 찍고만 있다.

지인에게 이 장면의 충격을 전하자, 그렇게라도 불의를 찍는 것이 시민 됨이 아니겠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잘못하면 누군가 죽을 수도 있는 격렬한 싸움을 찍고만 있는 것이 시민 됨이라고? 영화보다 더한 충격을 받았다. 고통의 개입보다는 이를 '구경'하며 중개하는 일이 시민 됨이 되어버린 사회적 이상 징후를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이런 징후는 이태원 참사에서도 드러났다. "구조 대신 촬영을 선택"한 사람들이 전달한 참사 피해자들의 사진들이 순식간에 SNS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전달되며 전시된 사진 속 피해는 얼만큼의 고통을 담지해 냈을까. 고통을 전달하는 사진이나 영상은 "보는 사람을 목격자의 자리에 끌어들인다. 행동을 촉구하는 한편 그에 따른 죄의식이나 부채의식, 때론 지켜보는 우리는 무고한 사람이라는 면죄부 역시 함께 전달하거나 위임한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쓴 김인정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수전 손택이 일갈한 <타인의 고통>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수전 손택이 관음적 약탈적 중독적 이미지를 강하게 비판한 시간을 지나 지금은 휴대폰 촬영의 생활화로 만인이 고통의 전달자가 된 세상이 되었다.

타자화된 고통은 상품이 되고 돈이 되고 구경거리가 되어 떠돈다. 알고리즘과 구독이 매일 매 순간 당도시키는 전시된 고통에 우리의 감각은 더 이상 공감이나 연민으로 반응하지 않지만 이제 이를 감지하지도 못한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지은이)
ⓒ 웨일북
 
저자 김인정은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늘 윤리적 딜레마에 놓였다. "고통의 재현이란 사실 전달과 적극적 조명, 착취와 대상화라는 상이한 평가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추"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기자가 '기레기'로 강등되어 호명된 지 오래지만, 전달자로서의 자신의 업을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기자가 있다는 게 문득 놀랍고 다행이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디지털 우선 전략으로 일찌감치 선회한 매체들이 단지 조회 수 장사를 하기 위해 고통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효과적 뉴스를 만들겠다는 기자의 선한 다짐"의 발로이기도 하다는 변엔 선뜻 동의되지 않는다.

문학 평론가 신형철은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타인의 고통> 속편으로 언급했지만, 나는 여기에 수지 린필드의 <무정한 빛>을 얹고 싶다. 수전 손택 등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희생자 의식만 생산해 내고 독창성이나 통찰 없는 자기도취로서의 사진이나 영상 등의 이미지 자극을 철저히 경계했지만, 수전 린필드는 사진을 본다고 모두 다 착취하는 것은 아니며 눈을 가린다고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것도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옳은 말이지만 이에는 반드시 보는 이의 윤리가 철저히 전제되어야 한다. 사진가 제임스 낙트웨이가 "사진에는 네 명의 저자가 존재한다. 사진가, 카메라, 감상자, 현실"이라고 언급한 것을 고민해 보면, 전달자의 책임만큼 무거운 무게로 보는 자의 윤리도 개입되어야만 함을 새기게 된다.

5.18을 다룬 수작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어린 날 그의 아버지가 간직하고 있던 그날의 사진들을 본 충격에 붙들려 있었던 시간들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폭력이나 고통을 전달한 사진이 일회성 이미지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강렬하고 날카로운 기억으로 남아 사회적 유산이 된 사례다.

물론 이는 예민하게 고통에 감응한 한강이라는 탁월한 감각의 소유자이기에 가능한 정제된 승화였다. 역설적이게도 그때 그 사진들을 나와 내 가족과 상관없는 타인의 고통으로 별 충격 없이 밀어낸 사람들 또한 상당히 존재했다.

극단적으로 중앙 중심적 뉴스

이미지 전달에 있어 저자가 보인 많은 문제의식 중, 지방 의제가 식민화 되는 지점을 짚은 '지역에서 유독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이유'가 인상적이었다. 지방도 사람 사는 곳이고 당연히 문화, 정치, 경제, 행정 이슈가 늘 있다.

하지만 보도되는 뉴스는 폭우나 폭설 등 자연재해나 화재 또는 잔인한 살인 사건 등 사건 사고로 각인될 여지가 다분한 정보가 대부분이다. 지방에 사건 사고만 있을 리 만무하지만, 이렇게 걸러진 뉴스에 익숙해지다 보면, 사람의 인식은 그곳을 그런 곳으로 연상하게 된다.

부정적 이슈가 지방의 인상이 되는가 하면 또 이런 식이 있다. 추수 때면 익어가는 곡식을 담은 논밭이나 탐스러운 과일이 익어가는 지역 영상이 송출된다. 또는 어느 지역에 가면 OO축제가 있다는 식으로 잠시 들러 즐길 곳으로 보도한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지방은 농사나 생태가 살아있는 곳으로 자연화하거나 쉼과 여유가 있는 곳으로 낭만화한다.

이런 보도는 지방을 사람들이 갈등을 빚으면서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중앙의 기호에 맞게 주조한 이미지로 남게 만든다. 지역의 삶과 사람을 지운다. 중앙에만 정지 경제 문화 등의 이슈가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며 지역을 게토화하면서 어떻게 지역 소멸의 고민을 논할 수 있겠는가가 저자의 토로다. 저자의 문제의식을 내가 사는 지역으로 이전해 보겠다.

내가 사는 파주에는 오래된 성매매 집결지가 있다. 미군 기지촌의 유산이다. 올해 초 파주 시장이 무조건 폐쇄를 강경하게 밀어붙이면서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집결지 내 건물주나 업주는 차치하고라도 그곳에 사는 여성들에겐 실로 심각한 문제다.

이곳에서 숙식을 의존하며 생활해 온 가난하고 나이 든 종사자들이 다른 곳에 정착해 새로운 삶을 일군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종사자들을 외면하는 파주시가 지난 11월 22일 행정대집행을 한다며 밀고 들어왔다. 맨몸으로 쫓겨나는 종사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나를 포함한 연대자들이 그날 그곳에 있었다.

그날 현장을 찍으려는 매체들의 카메라가 여기저기 보였다. 대부분 이름을 알 만한 곳이었다. 분주히 찍어가더니 이후 보도된 내용은 뜬금없었다. 현장에는 종사자들과 연대자들 120여 명이 있었고 업주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보도는 행정대집행에 업주들 반발이 크다는 엉뚱한 보도가 주를 이루었다. 이는 오보다. 이곳의 이슈는 업주와 상관없다. 종사자 여성들을 맨몸으로 내쫓지 말고 이주대책을 세워달라는 거다.

그런데 중앙에서 지역(파주는 수도권임에도 불구하고) 이슈를 다루는 방식은 이렇게 구태적이고 자극적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기자는 사진과 영상, 글을 통해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을 나란하게 독해해 주어야" 하지만 그런 시도나 노력은 없었다.

중앙으로 식민화된 경향은 매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민도 그렇다. 중앙의 뉴스에는 빠삭하면서 정작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정보나 뉴스는 모르고 살아간다. 지역 뉴스를 확인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모두 중앙, 서울의 일에만 관심 있다.

이렇게 중앙 집중된 마음을 가지고 내가 사는 지역을 어떻게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시키겠는가. 결국 언론의 오독을 "다시 독해하고 어떻게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것은 공동체의 몫"이지만, 중앙에 식민화된 의식은 문제 자체를 보지 못한다.

저자는 광주에서 상경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졸업 후 광주 언론사에서 10년간 일했다(지금은 미국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로 유학 온 청년들은 보통 어떻게든 서울에 악착같이 살아남겠다는 투지를 불태우지만 저자는 홀연히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일하며 겪은 저자의 기록은 중앙의 식민지인 낙후되고 소외된 지역의 기록이 아니다. 삶의 터전을 보살피는 사람들에 관한 기록이며 이들을 중심으로 뻗어 나간 사람들과 지역의 역사다. 지역 소멸이 걱정이라고 다들 말은 하지만 정말로 그런지 모르겠다. 일독 후 고민의 나눔이 시작됐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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