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보고싶어, 1인 러닝머신 시위…"왜 헤이그협약 안 지키나" [존 시치가 소리내다]

2023. 12. 2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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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존 시치는 두 아이에 대한 친권 소송에서 승소했는데도 대법원 예규 때문에 친모로부터 아이들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을 호소하고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두 명의 아이를 둔 미국인 아빠인 저는 2022년 10월부터 서울에서 러닝머신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여러 소송을 했고, 모든 재판에서 이겼지만 제 아이들을 돌려받지 못한 답답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부모 중 한 명이 다른 나라로 아이를 탈취해 가면 1년 이내에 본국으로 아동을 반환하라는 것이 헤이그 아동반환협약(이하 헤이그협약)입니다. 미국 국무부는 2022년과 2023년 연속 대한민국을 헤이그협약 미이행국가로 등재하였습니다. 아동반환판결을 받아도 집행현장에서 아이가 싫다고 하면 데려갈 수 없도록 규정한 대법원 예규 때문입니다.


올해도 한국은 헤이그협약 미이행국가


12월 7일 대법원이 ‘헤이그협약에 따른 아동반환청구사건의 집행에 관한 예규안’을 공고했습니다(2024년 4월 1일 시행 예정). 헤이그 협약에 따른 아동반환집행에서 ‘아동 의사에 반하여 집행할 수 없다’는 기존 대법원 예규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 점은 다행이지만, 여전히 현실적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결함을 안고 있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의 유일한 친권자이지만 만나서 안아주는 것도, 생일 축하를 하는 것도 엄마 허락을 받아야만 합니다. 법원에서 “아이들을 돌려주라”는 판결이 확정되었고, 아이들을 돌려줄 때까지 하루 50만원씩 배상하라고 했지만 자기 이름의 재산이 없는 엄마에게 아무런 제재가 되지 못합니다. 아이 엄마는 아이들을 돌려주지 않아 30일 동안 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엄마가 구치소에 수감된 날 아이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돌려받기 위해 경찰에 연락했습니다. 경찰은 아이들 위치를 저에게 알려줄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모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법을 따른 저를 돕지 않고 판사의 명령을 위반한 엄마 쪽 의사를 더 존중했습니다.

러닝머신 시위하는 미국 아빠 존 시치(본명 시치 잔 빈센트)가 지난 4월 19일 오전 경기남부경찰청 앞에서 아이들을 되돌려달라며 무동력 러닝머신을 걷고 있다. 손성배 기자

서울가정법원 결정으로 지난 7월에 약 3시간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그동안 엄마는 아이들이 아빠를 두려워한다고 말했는데, 엄마가 없는 상태에서 아이들은 저와 웃고 달리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엄마 요청으로 즐겁게 노는 아이들 모습을 사진, 동영상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후 한 번 더 예정된 면접교섭은 하지 못했습니다. 저랑 웃고 뛰어놀았던 아이들이 2차 면접교섭 날 저를 만나기도 전에 “아빠 무섭다, 아빠 만나지 않겠다”는 말만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외국인인 제가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법이 바뀔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꼭 목소리 내고 싶습니다. 부모 따돌림으로 고통받는 대한민국 부모들과 함께 내는 목소리입니다.


재판 이겼는데 집행 막는 대법원 예규


유아 인도재판을 할 때 판사는 어느 부모가 양육권자로 더 적절한지, 양육환경은 어떤지 종합적으로 조사하여 한쪽 부모를 양육권자로 정합니다. 재판하는 데 몇 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판에 지고도 이기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유아 인도 집행에 적용되는 기존 대법원 예규를 활용하면 됩니다.

대법원 예규는 패소한 부모에게 대법원 확정판결보다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그 무기를 사용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상대방 부모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아빠가 너희를 버렸다, 너희가 가면 엄마가 슬퍼서 살 수 없다.” 등의 이야기를 반복해주면 됩니다. 아이들은 그런 상황에서 ‘내가 뭐라고 말하고 행동해야 할까?’ 를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집행관은 현장에 가서 딱 한 마디 묻습니다. “엄마랑 살고 싶어, 아빠랑 살고 싶어?” 집행관이 대법관보다 강력한 권한을 갖는 것이 맞는지 의문입니다.

대법원 전경. 뉴스1

기존 대법원 예규는 일방 부모가 다른 부모를 따돌림하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부모 따돌림은 그 자체로 아동에 대한 정서적 학대이고 결국 대법원 예규가 아이들에 대한 정서적 학대의 합법적 도구가 된 것입니다.

이번에 발표된 예규안은 헤이그협약 사건에 한정해서 적용됩니다. 그러나 집행 현장에서 아동에게 부모를 선택하도록 질문하지 않는 것은 헤이그 사건뿐 아니라, 부모 따돌림으로 자녀를 만나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민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법원 예규안은 아동 반환 집행 시 아동심리 등을 전공한 집행보조자가 참석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아동과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전문가가 불과 몇 시간 안에 세뇌된 아동 마음을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참고로 헤이그협약 지침은 아동 보호를 위하여 아동심리 전문가가 사건 초기부터 반환 완료 시까지 사건 전반에 참여할 것을 권장합니다.


아동심리 전문가가 사건 초기부터 참여해야


‘집행관은 아동에 대하여 강제력을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한 예규안 제4조 4항이 가장 충격적입니다. 제 사건에서 법원은 엄마가 아이들에게 100m 이내로 접근하지 말고 아빠가 아이들을 보호하라는 임시보호명령을 내렸습니다. 경찰과 함께 유치원을 방문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아이들이 울면서 아빠가 무섭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없는 상태에서 저랑 웃고 떠들던 아이들이었는데 다시 저를 보고 울면서 무섭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경찰은 “아이들이 가지 않겠다고 하는데 안아서 데려가는 것도 강제력이다”라면서 우는 아이를 안아서 데려가면 정서적 학대에 해당한다고 하였습니다.

가지 않겠다고 우는 아이를 안는 것이 강제력이고, 그 강제력을 사용할 수 없다면 새로 발표된 예규안은 집행현장에서 어떤 효력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강제력’이라는 애매한 단어는 대한민국 공권력이 유아인도 집행현장에서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애매한 상황과 닮았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1인 시위를 하기 위해 러닝머신을 뛰던 날 한 젊은 군인이 다가와, 자신은 부모의 이혼으로 부모 중 한 명과 떨어져 살게 되었지만 여전히 다른 부모님을 간절히 만나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 위하여 한국에 온 이래 저는 외국 부모의 아이들뿐 아니라, 많은 한국 부모와 아이들이 부모 따돌림으로 고통받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국가가 아이들의 권리, 특히 진정으로 두 부모를 알고 사랑할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소중함을 외치는 정부의 어떠한 정책과 발언도 위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1인 시위를 통해 한국 정부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했지만 다른 한편 새로운 예규를 만들어 저처럼 고통 받는 사람들의 간절한 부탁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한국 정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대법원 예규안은 제도 개선의 첫걸음이겠지만 여전히 많은 개선이 필요하며, 법무부와 국회도 제도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국가가 자신이 가진 공권력을 효과적으로 행사하여 아이들이 부모 모두로부터 사랑받고 안전한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합니다.

존 시치(John Sichi) 미국인·전 소프트웨어 개발자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소리내다〉는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소통 공간입니다. 윗글에 대한 다른 목소리도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th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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