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판도라 상자' 건드리는 윤 대통령, 치명적 문제들
[이태경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도심 주택공급 간담회 발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중랑구의 소규모주택정비 관리지역인 모아타운 사업지에서 열린 지역주민들과의 도심 주택공급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 대통령실 |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중랑구를 방문해 재건축 및 재개발 사업의 착수기준을 위험성이 아닌 노후성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말을 한 후 국토부가 득달같이 지은 지 30년이 경과한 주택의 경우 안전진단을 거치지 않고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부동산경기부양에 올인하는 윤 정부의 행태는 일관되지만, 30년 이상 주택에 대해 안전진단을 생략하고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정은 시장불안, 자원파괴, 환경오염 등의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내장하고 있다.
재건축, 재개발 손쉽게 해주겠단 게 대통령이 할 소린가?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오전 서울 중랑구 중화2동 '모아타운(소규모 노후 저층 주택 정비사업)' 사업 현장에서 열린 주민간담회에 참석해서 "재건축과 재개발을 추진하려면 먼저 기존 주택에 대한 안전진단부터 받아서 이를 통해서 그 위험성을 인정받아야 사업을 시작할 수가 있는데, 이렇게 되다보니까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이 위험해지기를 바라는 그런 웃지 못 할 상황이 또 일어나고 있다"며 "앞으로는 재개발 재건축의 착수 기준을 (위험성에서) 노후성으로 완전히 바꿔야 될 것 같다"며 안전진단 규제완화를 언급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오늘 제가 방문한 모아타운과 같이 소규모 도시정비 사업은 국가의 지원을 더욱 강화하겠다. 재정 지원과 이주비 융자를 확대해서 국민들의 거주 환경을 속도감 있게 개선하겠다"며 "정부는 국민이 각종 규제를 합리화해서 근본적인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새 집을 찾아서 도시 외곽으로 갈 것이 아니라 직장 가까운 도시 내에 집을 구해서 살 수 있도록 생활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덧붙였다.
본디 부동산 경기 부양에 적극적인 정부들은 예외 없이 재건축 및 재개발 관련된 시장정상화 조치들을 형해화시키곤했다. 부동산 경기 부양에 있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능가하는 윤 정부가 재건축 및 재개발 관련 시장정상화 조치들을 무력화시키지 않을 리 없다. 윤 정부는 이미 재건축 등과 관련해 위험성보단 노후성에 방점을 찍는 식으로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했으며, 제대로 시행된 적도 없는 재건축부담금도 대거 줄여줬다.
놀라운 건 윤 정부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재건축 및 재개발 관련한 기존의 부양책만으론 성에 차지 않는지 아예 '위험성'이 아닌 '노후성'으로 착수기준을 바꿔야 한다며 기염(?)을 토했다. 사전배경 지식 없이 윤 대통령의 발언을 들으면 이게 개발업자가 한 얘긴지, 지역민원 해결에 나선 선거출마자가 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 윤석열 대통령 "재개발·재건축 착수기준, 위험성에서 노후성으로 바꿔야" 윤석열 대통령이 재개발·재건축 착수기준에 '위험성'이 아닌 '노후성'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발언한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아트 센터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단지 모습. |
ⓒ 연합뉴스 |
윤 대통령의 '노후성' 중심발언이 나오자 마자 정부가 빛의 속도로 움직였다. 22일 국토교통부는 "도심 내 원활한 주택 공급을 위해 지난 21일 간담회에서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을 반영할 수 있는 재개발·재건축 절차 합리화, 규제 완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향후 이를 구체화한 방안을 내년 1월 중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하려는 대책의 골자는 30년 이상 된 노후주택은 안전진단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재건축 절차에 착수하는 방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 재건축을 하려면 우선 안전진단에서 하위등급인 D∼E등급을 받아야 재건축 추진위원회와 조합을 만들 수 있는데 국토부는 이 안전진단을 생략하고 준공된 지 30년만 넘으면 재건축 착수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업계에서는 현재 서울지역 아파트 약 185만가구 가운데 30년 이상 된 아파트는 37만가구(20%) 수준으로, 제도가 개편되면 서울 아파트 5채 중 1채 정도가 혜택 범위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하는 모양이다.
치명적 문제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윤 대통령과 국토부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밀고 있는 30년 이상 주택의 재건축 추진사업의 배후에는 무엇보다 얼마 남지 않은 총선이 자리하고 있음을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격전지인 서울만 해도 아파트 가운데 20%가량이 30년 초과 주택이니 이들의 표심을 겨냥한다는 분석은 합리적일 것이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혼연일체가 되어 추진 중인 30년 이상 주택의 재건축 추진사업이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내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이 사업은 시장불안의 불씨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부동산 시장이 지금과 같이 침체한 상황에서는 설사 30년 초과 주택의 재건축이 안전진단 없이 가능하다고 해도 재건축 사업들이 활발하게 추진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경기가 회복되고 무엇보다 시장금리가 낮아지며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조건들이 충족돼 사업성이 있다는 컨센서스가 형성되면, 30년 이상 초과 주택들이 앞다퉈 재건축을 추진하려고 덤벼들 것이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이 투기판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에도 재건축 관련 규제 완화가 시장에 투기수요를 견인하는 방아쇠 노릇을 한 적이 있다.
자원 파괴라는 점에서도 윤 정부가 추진 중인 30년 초과 주택 재건축 추진 사업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30년 초과 주택 재건축 추진 사업은 돈을 더 벌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멀쩡한 집을 부수고 다시 짓게 해주겠다는 얘기인데, 주택이 내구성 소비재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무슨 낭비이자 자원 파괴라는 말인가?
환경오염의 문제도 있다. 멀쩡한 집을, 그것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집을 때려 부순다는 말은 천문학적 쓰레기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친환경 저탄소라는 불가역적 트렌드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발상이 아닐 수 없는데, 대한민국이 '기후악당'의 수괴 노릇이라도 하겠다는 결심인지 모르겠다.
▲ 윤석열 대통령 "재개발·재건축 착수기준, 위험성에서 노후성으로 바꿔야" 윤석열 대통령이 재개발·재건축 착수기준에 '위험성'이 아닌 '노후성'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발언한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아트 센터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단지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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