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날리면' 특종 기자의 취재 기록
[조창완 기자]
한 직업에 대한 통칭이 이렇게 비하되는 경우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당대 한국의 기자는 '기레기'(쓰레기와 기자를 합성한 신조어)와 '기더기'(구더기와 기자를 합성한 신조어) 등 모욕적인 비칭을 받았다.
▲ 이기주 기자의 <기자유감> 이기주 기자는 대통령실 취재담과 기자 생활을 공유하며, 기자 사회의 현상을 이야기한다 |
ⓒ 메디치 |
MBC 이기주 기자가 쓴 <기자 유감>은 가장 생생한 우리 언론 현장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책이다. 이기주 기자는 2022년 7월 5일 '1호기 속 수상한 민간인'이라는 기사에서 '민간인 신분의 신모씨'가 대통령 수행단에 포함되어 있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그해 9월 21일 미국을 방문한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고 나오면서 한 말을 보도해 다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바이든 날리면'으로 통칭되는 이 보도로 대통령실은 해당 보도자인 이기주는 물론 MBC와 날을 세웠고, 이후 도어스테핑 과정에서 충돌로 이어졌다. 결국 이 충돌을 이유로 도어스테핑도 없어졌고, 이 기자도 기자들의 복잡한 분위기 속에 대통령실 기자실을 나왔다.
시간으로 보면 이 사건들로부터 막 1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제법 큰 사건들이었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문제들이 워낙에 많아서 이제는 이 사건이 그다지 특이하게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대통령실에서 나오는 기사들은 그다지 특이점이 없다. 즉 대통령실은 전혀 바뀌지 않았고, 기자들의 비판의 칼날은 갈수록 무뎌지는 느낌이다.
책을 들고 생각보다 두껍지 않아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많지 않겠구나 생각했지만 내용은 천금만금을 든 듯 무거웠다. 기자 세계는 물론이고 MBC 내부에 대한 내 생각들도 복잡하게 했다.
이기주 기자의 첫 일은 대기업의 해외영업 담당이었다. 평범한 3년차 직장인으로 살던 2008년 6월 그는 광화문에서 누군가가 경찰의 곤봉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기자로 전직한다. 그래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5월부터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촛불시위가 시작되던 때였다.
31살에 늦깍기로 언론에 도전한 그는 한국경제TV로 언론계에 발을 디디고, 2013년 2월 MBC에 경력기자로 입사한다. 이 시기는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정권이 바뀌던 시기로 전 해부터 시작된 MBC 파업과 관련이 있다. 당연히 이 시기에 들어온 경력기자들에게는 부역세력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질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 기자에게는 '잉여적 기자', 경력기자는 '도구적 기자'라는 개념이 부여된다. 다만 저자는 담담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한다. 이 낙인을 무시한 채 기자라는 일을 하려는 그에게 "첩의 자식답게 행동해. 너를 마음에 안들어 하는 사람이 많으니까"라는 말과 함께 '도구적 기자'의 정체성을 지키라는 묘한 압력이 온다.
하지만 그는 담담히 자신의 길을 간다. 책에는 쓰지 않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장 '청와대 기자 그렇게 하는 것 아니다'는 그가 윤석열 대통령을 후보 시절부터 대면하는 과정을 썼다. 기자는 당시 정치인으로 상당히 어색하던 윤 후보의 모습이 의도적으로 부족하게 행동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남산예장공원에서 '질문에 대답도 제대로 못하면서 앞으로 어쩌려고 저러나' 하고 코웃음 쳤던 기자들은 그가 당시 대답을 못한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안 한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뻔해 보이는 얘기 같지만 실제로 그랬다"라고 말한다. 이는 결국 기자들이 윤석열 후보의 허허실실 전술에 속았다고 본 것이다.
청나라 시인 정판교의 글에 '똑똑하기도 어렵지만, 똑똑하면서 어리석은 척하기는 더 어렵다'(聰明難 糊塗更難)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당시 기자협회의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후보를 대통령으로 예측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모습은 23일 있었던 한동훈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모습으로도 읽힌다. 저자는 한순간에 정권이 검찰 출신으로 넘어가는 시절을 보면서 히틀러가 집권하던 1930년대 독일 정치를 떠올린다.
책의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2022년 9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과정에서 일어난 '바이든 날리면' 사건이다. 저자는 이 취재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자신의 독단이 아니라 기자가 이런 중대한 사안을 보도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체크하면서 진행했다는 것을 기록한다. 당연히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이 보도가 국익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등을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도의 영향력이 큰 만큼 결과도 컸다. MBC는 대통령 전용기 탑승 제외 등의 조치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 언론판의 상황을 볼 수 있는 일들이 진행된다.
동료 기자들이 자신이 당하는 부당한 대우를 같이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면하고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기자로서 열패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과정을 통해 우리 언론의 상황을 알 수 있다.
3장 '기자 왜 하는 것일까'는 그가 생각하는 기자라는 직업 정신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31살에 기자에 입문해 15년이 지났으니, 마흔 중반의 나이다. 그는 자신이 취재했던 경험들을 담담히 이야기하면서, 기자가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말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영국 출신 프리랜서 언론인 라파엘 라시드가 쓴 '한국언론을 믿을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글을 말해서 나도 읽어봤다. 그가 말하는 내용은 팩트 체크의 누락, 사실의 과장, 표절, 사실을 가장한 추측성 기사, 언론 윤리의 부재인데,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2000년 즈음 기자가 된 이유를 묻는 이유에 정치로 가기 위해서라는 답을 한 신입기자가 있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직업 윤리상 기자는 정치인과는 결을 달리 하기 때문에 나중에 설혹 갈지라도 그 마수(?)를 드러내지 않은 것이 상식인데, 그 마수를 너무 쉽게 드러낸 것이다. 사실 김영삼 정부부터 기자 출신 정치인이 늘었으니 충분히 예상할 만한 일이다.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한 기자가 다시 자신의 기자관을 말한다. 충분히 들어 볼 만하다.
"기자는 이름을 걸고 하는 직업이다. 언론이라는 큰 틀에 가려 개인이 드러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기사는 언론이 쓰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기자 개인이 쓰는 것이다. 기자의 이름을 숨긴 신문 사설도 결국에는 기자 개인이 써낸 결과물이다. 그래서 공권력이 아닌 기자 개인이 어떻게 진실을 밝힐 수 있었는지 취재 과정을 공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기자가 정당하고 당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날 길을 걷다 곤봉과 방패를 목격한 우연한 계기로 기자가 됐다. 그동안 실망과 좌절도 많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자의 힘을 의심하지 않는다. 언론 탄압과 줄 세우기가 극심해지는 상황에서도 묵묵히 권력 감시의 현장을 지키는 기자들, 그리고 힘든 여건에도 발주 기사가 아닌 발굴 기사로 거대 기득권과 싸우는 용기 있는 기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 싸움 끝에 무엇보다 큰 기득권인 기자 권력의 벽도 함께 해체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에필로그에서)
덧붙이는 글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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