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쓰고 투자하고, 칼가방 들고 식당가고…제 아버지 구자학 회장입니다[이 책 어때]

서믿음 2023. 12. 22.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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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라"
군인정신으로 자녀 교육
"치약 하나로 나라 못 큰다"
대규모 화장품 사업 밀어붙여
20년 전 '소스의 시대' 준비
아워홈 키운 혜안 담아

최초는 두렵지 않다 | 구지은 지음 | 아워홈 | 180쪽 | 2만2000원

고(故) 구자학 아워홈 명예회장은 최초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LG그룹 창업주의 아들이자 삼성가의 사위인 자못 화려한 배경을 지녔지만, 후광에 기대기보다 도전에 집중해 숱한 ‘최초’의 기록을 낳았다. 그의 업적은 비단 처음이란 상징적 의미에 갇히지 않는다. 그가 만든 국내 최초 잇몸질환 예방 치약 ‘페리오’의 아성은 지금도 여전하며, 주변의 만류에도 강하게 추진해 만든 화장품 ‘드봉’은 지금의 LG생활건강을 있게 했다. 70세가 되던 해 2000억원 규모의 LG유통 식품사업부를 들고나와 세운 아워홈은 2009년 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책 ‘최초는 두렵지 않다’는 구 명예회장의 1주기를 맞아 딸 구지은 아워홈 회장이 돌아본 아버지에 관한 기록이다. 아버지이자, 사업가 면모를 두루 아우르며 인간 구자학을 소개한다.

고(故) 구자학 회장

구 명예회장은 경남 진주의 지수면(당시 진양군)에서 LG가의 6남4녀 가운데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지수면은 LG 창업주 구인회와 삼성 창업주 이병철이 함께 보통(초등)학교를 다닌 곳이다. 이는 훗날 구 명예회장이 삼성가 사위가 되는 인연으로 이어졌다. 이병철 회장이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아들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똑똑한 딸을 맺어주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구 명예회장은 병역의무를 중시하는 LG 가풍에 따라 해군사관학교에 입학, 한국전쟁에도 참전해 충무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딸 구 회장은 그런 군인정신의 엄격함이 자녀 교육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었다고 증언한다. "의무 교육까지는 시켜줄 테니 다음에는 너희가 알아서 살라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책은 구 명예회장의 이력을 시기별로 소개한다. 삼성물산 소유였던 한일은행 행원에서 출발한 구 명예회장은 울산비료, 제일제당, 동양TV를 거쳐 이후 30년간 호텔신라, 중앙개발(삼성물산), 럭키(LG화학), 금성사(LG전자), 금성일렉트론(LG반도체), LG건설(GS건설)을 이끌었다. 미디어, 호텔, 레저, 화학, 반도체, 전자, 건설 분야를 다양하게 포괄했다.

구 명예회장은 한번 하겠다고 생각한 일에는 대단한 집념을 보였다. 럭키 사장을 맡았을 당시 10명의 이사 전원이 화장품 사업을 반대하자 "모두 나보고 화장품 사업을 하지 말라고 하니 화장품 사업은 안 하기로 했다. 그러나 피부보호제 사업은 하기로 했다"며 화장품 사업을 밀어붙였다. 화장품을 피부보호제라고 말만 바꾼 것인데, "치약 하나로는 기업도 클 수 없고, 나라도 클 수 없다"는 그의 신념은 훗날 LG생활건강을 탄생시켰다.

구 명예회장은 투자 스케일이 크기로 유명했다. 화장품 사업을 시작하면서 충북 청주에 설립한 공장의 생산 규모는 당시 내수 시장의 60%에 달할 정도였다. 이후 그의 행보에는 늘 "미쳤다"는 주변 반응이 따라붙었고, 본인 역시 "사표를 써놓고 투자 제안을 했다"고 할 정도였다. 1986년 금성사 사장에 취임했을 때는 백색가전을 만드는 창원공장 규모를 두 배로 확장했다. 현재 창원공장은 현재 LG가전이 세계 1위를 하는 교두보가 됐다는 평을 받는다.

주변에서 우려할 때마다 구 명예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기술이나 물건이 쓸 데가 있으면 반드시 팔 데가 있다." 물론 실패의 순간이 없지 않았다. 1989년 금성일렉트론 회장을 맡아 뛰어든 반도체 사업은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반도체 빅딜’로 해체돼 지금의 SK하이닉스가 됐다.

70세가 돼서는 본인이 진짜 하고 싶은 일에 뛰어들었다. 미식가였던 그는 LG유통의 식품사업부를 가지고 분리 독립해 아워홈을 설립했다. 당시 매출 2000억원 규모로 구 명예회장 스케일에 비해 작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9년 만인 2009년 매출 1조원, 2020년 1조8000억원 규모로 키워냈다.

아워홈은 구 명예회장에게 그야말로 ‘덕업일치’였다. ‘가봤냐, 써봤냐, 해봤냐, 먹어봤냐’를 강조한 그는 평일 점심은 항상 구내식당에서, 주말 점심은 항상 밖에서 먹기를 고수했다. 이때 맞춤 제작한 칼들이 담긴 작은 ‘칼가방’을 지녔는데, 스테이크 육즙이 흐르지 않도록 톱니 칼을 사용할 정도로 디테일을 챙겼다고 한다. 그런 세심함으로 키운 사업의 일면들이 책에 담겼다.

윗사람이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지론을 지키기 위해 항상 배움에도 힘썼다. 이를테면 임직원들에게 냉동 생선을 맹물이 아니라 바닷물과 같은 농도의 염수에 해동하면 생선 살이 탄력을 잃지 않는다며 과학적 접근을 강조하는 식이다. 저자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소스의 시대’를 미리 내다보고 B2B소스와 가정간편식을 만들고, 전국에 10여개의 물류센터를 마련한 혜안의 내막도 소개한다.

책에 담긴 많은 이야기는 저자가 아버지의 상가(喪家)에서 들은 이야기다. 생전에 허식을 질색하셨던 아버지가 보시면 "쓸데없다" 하시겠지만 그럼에도 더 많은 기록을 챙겼다면 의미 있는 한국 경제사 기록이 됐을 것이라는 아쉬움에 책을 내게 됐다고 저자는 설명했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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