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단독취재 | LNG 화물창 거액 배상 판결에 항소 선택… 선박업계·정치권 “시간만 끄는 폭탄돌리기”

2023. 12. 2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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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 ‘1880억 항소장’ 내고 끙끙 앓는 내막

항소해도 상황 반전 가능성 낮아… 가스공사 “그래도 소송이 실익”
소송 담당 간부 4년 새 6명 바뀌어… “부임하면 빠져나갈 궁리만”

한국가스공사는 지난 11월 ‘한국형 LNG 화물창(KC-1)’ 결함 소송에서 1880억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에 항소했다. / 사진:한국가스공사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가스공사의 부실 설계로 빚어진 소송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가스공사가 ‘한국형 LNG 화물창(KC-1)’ 결함 소송에서 1880억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에 항소한 건 2023년 11월. 예견된 수순이었지만, 공사 안팎에서는 ‘폭탄돌리기’라는 말이 나온다. 국회에서도 “가스공사의 항소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일 뿐 특별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고 지적한다. 월간중앙 취재 결과 소송과 관련한 주요 결정을 내리는 보직자가 4년 새 6명이나 바뀌었는가 하면 실무부서 중심의 ‘합의파’ 의견이 묵살된 정황이 포착됐다. 과연 가스공사 내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KC-1 기술 개발 프로젝트는 지난 2004년 국책과제로 시작됐다. 국내 조선사가 전 세계 LNG 선박의 약 70%를 수주하고 있음에도, 프랑스 GTT사가 초저온 LNG를 선적하는 화물창 기술을 독점해 1척당 선가의 5%(약 100억원)를 기술료로 지급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외 기업으로 유출되는 국부는 매해 1조원이 넘는다.

이에 우리 정부는 기술 독립화에 나섰다. 그해 가스공사와 국내 조선 3사(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는 LNG 화물창 기술 확보를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연구과제에 참여, 10여 년 만에 KC-1을 공동 개발해 국내·외 선급의 검증 및 인증을 받았다. 육상용 LNG 저장탱크 기술을 보유한 가스공사가 설계하고 조선 3사가 선박을 건조해 SK해운이 가스공사와 LNG 운송 계약을 맺어 선박을 운영하는 형태였다. 가스공사의 목표는 국산 화물창 기술을 국적선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법원 “설계부터 감리까지 맡은 가스공사 책임”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지난 10월 2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15년 설계에 착수해 2018년 2척의 선박(SK세레니티·SK스피카)이 완성됐지만, 첫 운항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SK세레니티가 미국 사빈패스 터미널에서 가스를 실어 경남 통영으로 향하던 중 화물창 외벽 일부에 ‘콜드스팟(결빙)’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콜드스팟은 영하 162도의 LNG 냉기가 선체 바깥으로 새어나가 선체 외벽이 기준치 온도 이하로 내려가는 현상으로, 반복될 경우 자칫 침몰 또는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SK세레니티와 SK스피카는 운항이 중단돼 6년째 경남 거제도 앞바다에 정박해 있다.

800억원 이상을 들여 몇 차례 수리했음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가스공사·삼성중공업·SK해운은 2019년 소송에 들어간다. 삼성중공업은 가스공사에 선박 수리비 801억원, SK해운은 가스공사에 미 운항 손실료 1158억원을 청구했다. 반면 가스공사는 SK해운에 대체선 투입으로 인한 손실액 1697억원을 청구했다.

법원은 삼성중공업과 SK해운의 청구는 받아들였지만, 가스공사 청구는 기각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법원은 “SK해운이 대체선 투입 의무와 선박 감항성(안전한 항해를 위한 인적·물적 준비) 유지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서도 “콜드스팟 발생 책임이 설계자인 가스공사에 있으므로 SK해운의 손해배상을 면제한다”고 판결했다.

그로부터 4년여가 지난 2023년 10월, 드디어 1심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가스공사는 삼성중공업에 726억원, SK해운에 1154억원을 각각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배상액은 총 1880억원으로 삼성중공업이 청구한 수리비 801억원 대비 약 90%, SK해운이 청구한 금액 1158억원 대비 약 99%였다.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가스공사가 설계부터 감리까지 했기 때문에 소송과 관련한 대부분의 책임이 가스공사에 있다고 판단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패소 이후 가스공사 내부는 ‘합의파’와 ‘항소파’로 갈라졌다. 월간중앙 취재를 종합하면, 실무부서인 ‘KC-1 대책부’ 중심의 합의파는 “1심 판결 결과가 가스공사에 너무도 불리하게 나왔기 때문에 항소해도 상황이 반전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며 “합의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반면 계약부서인 ‘LNG 수송부’ 등 소위 항소파는 “항소는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맞섰고, 결국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이 항소파의 손을 들어줬다고 한다.

가스공사 안팎에서는 ‘폭탄돌리기’를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역대 수소신사업본부장은 부임과 동시에 빠져나갈 궁리만 해왔다”며 “본부장이 계속 바뀌다 보니 기술적 이해도가 가장 높은 KC-1 대책부 등 실무부서의 목소리가 가스공사 내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KC-1 대책부는 수소신사업본부에 속해 있다.

월간중앙이 단독 입수한 ‘수소신사업본부장 인사 내역과 사유서’(아래 도표 참조)를 보면, 본부가 신설된 2020년 1월 1일부터 현재까지 본부장(직무대리 포함)은 5차례 바뀌었다. 4년 새 6명이 부임한 것이다. 부임 기간이 1년을 넘긴 본부장이 한 명도 없을 정도다. 사유도 전임 본부장 퇴직·직제개편 등 당위적 사유가 아닌, 전임 본부장 보직 전환에 따른 신규 보임이 대부분이다.


실무부서 ‘합의파’ 의견 무시하고 ‘항소’ 결론


한국형 LNG 화물창 기술을 적용한 ‘SK스피카’호. 화물창 외벽에 결빙이 생기는 등 결함이 발생해 법적 분쟁을 겪고 있다. / 사진:한국가스공사
LNG 수송부가 속한 ‘마케팅본부장’과 대비된다. ‘마케팅본부장 인사 내역과 사유서’를 보면, 같은 기간 마케팅본부장은 2차례 바뀐 게 전부며 사유도 ‘전임자 명예퇴직에 따른 신규보임’, ‘신임 사장 취임에 따른 신규보임’ 등 당위적 사유였다.

이에 업계에서는 수소신사업본부장의 잦은 보직 전환이 가스공사 패소의 원인이라는 분석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피하려다 보니 소송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하지만 가스공사는 “KC-1 개발은 2004년에 시작돼 2017년부터 관련 소송이 진행되는 등 오랜 기간 진행된 사건”이라며 “경영진 인사와 관련 없다”고 밝혔다. 이어 “검토 결과, 항소 실익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어떤 실익인지는 재판 중이라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또 항소 전 실무부서가 “항소보다는 합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계약부서는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한 사실이 있는지 묻자 “사실무근”이라고 짧게 답했다.

가스공사가 제대로 된 전략을 마련하고 항소에 나선 것인지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이 대부분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한 여당 의원실 보좌관은 “가스공사의 항소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라며 “특별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라고 했다. 이어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패소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식의 전략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기류 때문인지 10월 24일 열린 국회 산자위 국정감사는 가스공사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도 소송 준비와 관련해 최 사장을 질타했다.

권명호 국민의힘 의원: “판결에 대해서 이제 가닥을 잡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최 사장: “아직 정식 판결문 전문이 오지 않아서 그게 도착하면 자세히, 상세한 분석을 해서…”

권 의원: “아니, (10월) 11일 날 판결이 났는데…”

최 사장: “판결이 났는데, 그 상세한 원본을 우리가 아직 보지를 못해서…”

권 의원: “11월 2일까지 항소 여부를 법원에 제출해야 되는데 아직까지 (판결문을) 받지도 않았단 말입니까?”

최 사장: “예,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도착하고 2주 후니까 2주 안으로…”

하지만 이후 질의 시간에 가스공사가 이미 판결문을 수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최 사장은 “국감을 준비하느라 판결문이 공사에 도달한 사실을 몰랐다”며 “판결문을 지금 세밀히 분석하는 중이다. 국가적으로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해명했다.

정치권과 관련 업계에서는 조속한 해결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지부진한 소송으로 우리나라가 LNG 운반선 시장 점유에서 뒤처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LNG 운반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우리 조선사가 상대적 기술력에서 앞서 있는 만큼 조속히 갈등을 해결해 기술 국산화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선주사인 SK해운은 장시간 보수작업 끝에 해수 온도 6도 이상에서 운항이 가능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음에도, 안전성 문제로 선박 운항을 거부하고 있다. 해당 선박을 그대로 놀려두면 손실만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가스공사는 손실 발생의 책임을 SK해운 쪽에 떠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월간중앙이 입수한 항소 전 가스공사의 국정감사 설명 자료의 내용이다.

“4차 시험선적에서 해수 온도 6도 이상의 해역에서는 운항이 가능해 대체항로 운항을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SK해운이 운항 재개에 협조하지 않아 결국 관련사 간 비용을 증가시키고 있다.”

이에 가스공사가 시베리아와 같은 항로가 아닌, 해수 온도 6도 이상에 맞는 중동 쪽 항로로 운항하도록 SK해운을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설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장기간 소송은 LNG 화물창 상용화 걸림돌”


5월 10일 오전 울산시 동구 HD현대중공업에서 LNG 벙커링선 ‘블루웨일호’ 명명식이 열리고 있다. 전기추진 하이브리드 선박인 블루웨일호는 한국형 LNG 화물창을 적용했다. / 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장기간의 소송이 KC-2 보급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앞서 가스공사는 LNG 화물창 2세대 기술 ‘KC-2’ 개발을 완료하고, 이 기술을 적용한 LNG 운반선 ‘블루웨일호’ 운항을 시작했다. 업계는 소송전이 마무리돼야 KC-2 상용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가스공사가 KC-1과 KC-2 화주인 만큼, KC-1에 대한 반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해외 화주와 선주들이 국산 화물창 기술을 요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스공사는 그간 법원과 국회 등에 “프로젝트를 시작한 의도가 좋았다”는 점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공기업으로서 국익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결과에 이른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과연 가스공사는 국익을 위해 향후 어떤 결단을 내릴까?

-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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