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 빅테크와 엔터의 불편한 동거…'스트리밍 전쟁' 최후의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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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왕국'의 최고경영자(CEO) 밥 체이펙(Bob Chapek)은 부하 2만8000명을 잘랐다.
2021년 여름, 고통스러운 스트리밍 전환기 과정에서 워너미디어를 힘들게 이끌어온 CEO 제이슨 킬라(Jason Kilar)는 돌연 실직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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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왕국’의 최고경영자(CEO) 밥 체이펙(Bob Chapek)은 부하 2만8000명을 잘랐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위기 때문이었다. CEO로 일을 시작한 지 3일 만에 전체 비즈니스에서 TV네트워크를 제외한 80% 가량을 폐쇄했다. 인력을 감축했지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앞길은 여전히 막막했다. 그가 찾은 출구는 ‘스트리밍’이었다. 5년 동안 수익이 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던 이 사업 부문은 회사 전체를 먹여 살리고 있었다. 영화·TV·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막대한 자원을 스트리밍 사업부문인 디즈니플러스에 투입했다. 체이펙은 "일부 조직 덕분에 전체 보트가 가라앉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팬데믹과 함께 미디어 트렌드는 과거 ‘본방 사수와 영화관 데이트’에서, 몰아보기와 거실·안방으로 넘어갔다. 흐름을 주도한 건 넷플릭스다. 디즈니가 스트리밍으로 기사회생한 업체라면, 넷플릭스는 스트리밍으로 새 시장을 만들고 신흥 왕조를 세운 기업이다. 다만 넷플릭스 역시 언제까지고 웃을 수는 없다. 디즈니는 역전의 기회를 노리고, 유통공룡 아마존도 콘텐츠 시장을 노린다. 아이튠즈의 신화를 재현하려는 애플, HBO의 자산을 이어받은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 컴캐스트의 지원을 받는 NBC유니버설이 유력한 경쟁자로 가세했다. 넷플릭스가 성장의 한계에 다다랐다는 평가가 나오며, 스트리밍 시장은 1년 후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스트리밍 이후의 세계’의 저자들은 치열한 미디어·콘텐츠 시장을 단순히 승자와 패자로 나누지 않는다.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와 엔터테인먼트라는 두 이질적 산업이 빚어내는 불협화음, 금융위기와 팬데믹, 경영진의 오판과 실책 등이 유기적으로 혼합돼 만들어내는 흐름을 유유히 쫓아간다. 제목을 읽고 기대하던, 스트리밍 이후의 ‘그 세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진 않는다. 힌트를 줄 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과거에서 벗어나기란 지독히도 어려운 일이란 점이다. 스트리밍 플랫폼 로쿠(Roku) 창립자 겸 CEO 앤서니 우드는 "언젠가 모든 게 스트리밍될 것이라는 사실이 제게는 너무나 분명해 보였어요. 케이블 패키지는 구독이 끊기고 모든 게 사라질 게 확실했죠. 시간문제였을 뿐이에요. 다른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인데, 업계 관계자들이 믿으려 들지 않았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어요"라고 말했다.
2021년 여름, 고통스러운 스트리밍 전환기 과정에서 워너미디어를 힘들게 이끌어온 CEO 제이슨 킬라(Jason Kilar)는 돌연 실직 위기에 처했다. 그는 ‘팝콘 프로젝트’를 창안한 인물이었다. 모든 영화를 극장과 스트리밍 플랫폼 HBO Max에서 동시 개봉하는 정책이었다. 초대형 영화투자배급사에선 기대하기 어렵던, 내부적으로도 반발이 컸던 과감한 결단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그는 ‘할리우드 관계자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뒤통수 사건’의 주인공이 됐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혁신의 상징, 스티브 잡스를 상기한다. 잡스는 애플 본사를 둘러싸고 있는 인피니트 루프를 수없이 걸으며 시도 때도 없이 회의를 소집하곤 했다. "도발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자는 실리콘밸리에서는 불멸의 존재가 되지만, 할리우드에서는 가차 없이 추방된다." 그러면서 스트리밍의 미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오징어게임’을 꼽았다. "시청자들은 지역의 경계를 뛰어넘는 내러티브,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찾기 시작한 걸로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오징어게임이 스트리밍된 플랫폼은 넷플릭스다.
스트리밍 이후의 세계 / 데이드 헤이스 외1명 / 이정민 옮김 / 알키 / 2만5000원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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