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는 원래 맥주 소속이었다... 크리스마스 빛낼 맥주들 [윤한샘의 맥주실록]
[윤한샘 기자]
춥다. 추워도 너무 춥다. 얼마 전까지 따뜻한 겨울을 걱정하며 온난화 문제를 털어놓던 게 민망할 정도다. 물론 이 추위도 기상이변에서 비롯된 것이라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런 날씨에 맥주를 권하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알코올로 몸을 덥히고 싶은 이들에게 위스키나 소주 아닌 맥주가 씨알이 먹힐 리 없다. 하지만 만약 내일이 크리스마스라면, 반짝이는 조명 아래 은은한 캐럴이 들린다면, 그렇다면 영하 10도에 맥주를 논한 어색한 분위기를 다소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산타는 원래 맥주 소속이었다. 콜라 브랜드에서 영입하며 유니폼이 빨간색으로 바뀌었지만 오래전부터 산타클로스 즉, 성 니콜라우스는 맥주와 함께했다. 사람들은 12월 6일, 그의 축일을 기념하는 맥주를 만들어 부츠 모양의 잔에 한가득 마시곤 했다.
▲ 에겐베르크 사미클라우스 비어 |
ⓒ www.schloss-eggenberg.at |
▲ 델리리움 크리스마스 |
ⓒ 윤한샘 |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 맥주는 벨기에 맥주들이다. 이 맥주들은 특정한 스타일에 한정되지 않는다. 스텔라 아르투아처럼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황금색 라거도 있고, 짙은 갈색에 8% 알코올, 거기에 초콜릿 향과 달짝지근한 맛을 가진 델리리움 크리스마스 같은 크리스마스 에일도 있다.
▲ 세인트 버나두스 크리스마스 에일 |
ⓒ www.sintbernardus.be |
▲ 시에라 네바다 셀레브레이션 |
ⓒ 윤한샘 |
▲ 크리스마스 모닝 |
ⓒ 윤한샘 |
크리스마스에 맥주가 어울리는 건, 다양성 때문이다. 무알코올부터 30도가 넘는 알코올은 물론, 황금색에서 진한 흑색까지 맥주는 향미와 색에서 넓은 범위를 담아낸다. 게다가 생강, 시나몬, 과일, 초콜릿 같은 부재료들은 크리스마스를 다채롭게 변주할 수 있다. 다른 술에 비해 유독 맥주가 크리스마스에 도드라지는 이유다.
같은 이유로 크리스마스 맥주라는 타이틀은 없지만 그에 못지않게 시즌 피날레를 장식하는 맥주도 존재한다. 비록 라벨에서 산타 모자를 쓴 수도사나 초록색 트리를 볼 수 없어도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빛나게 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를 위해 태어나진 않았지만 이 시즌에 어울리는 맥주, 어른들을 위한 맥주 산타의 선물 꾸러미를 풀어보자.
▲ 로덴바흐 알렉산더 |
ⓒ rodenbach.be |
로덴바흐는 플랜더스 레드 에일의 원조 브랜드다. 벨기에 플랜더스 서쪽에서 태어난 플랜더스 레드 에일은 푸더, 즉 커다란 배럴에서 야생균과 효모를 만나 풍성한 과일 향과 부드러운 신맛을 품고 있다. 로덴바흐 맥주는 블랜딩을 통해 다채롭게 변한다. 그중 유난히 깊은 보라색 라벨을 두르고 있는 로덴바흐 알렉산더가 첫 번째 주인공이다.
로덴바흐 알렉산더는 공동 창립자 이름이다. 그는 벨기에 독립을 위해 투쟁한 시각장애인 정치인이었다. 1986년 로덴바흐는 알렉산더 탄생 200주 년 헌정 맥주로 천연 체리 과즙이 들어간 특별 버전을 만들었다. 잔을 꽉 채우는 진한 크림슨 색은 발랄한 체리 향과 허울없이 어울린다. 산뜻한 산미는 보조를 맞추며 어깨에 내린 추위를 털어낸다.
5.6% 알코올은 식전에 즐겨도 적당하고 과일이나 프레시 치즈, 시폰 케이크와 곁들여도 제격이다. 밝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맞추는데도 더할 나위가 없다. 일반 맥주잔보다 와인 글라스에 담으면 반짝이는 조명도 함께 마실 수 있다.
▲ 몽트비어 라운드미드나잇 12 |
ⓒ 윤한샘 |
몇 년 전부터 몽트비어는 자신의 정체성을 가득 채운 맥주들을 출시했다. 딸기, 복숭아, 샤인머스캣 같은 지역 농산물을 넣은 맥주부터 와인이나 버번 배럴에 숙성한 맥주까지 속초의 진정성을 맥주에 녹여내고 있다.
2020년 처음 출시된 라운드 미드나잇은 오래전부터 속초를 지켜온 자신들에게 헌정한 맥주다. 9% 스코티시 위헤비 에일을 포트와인 배럴에 숙성한 버전부터 버번 배럴 숙성 임페리얼 스타우트까지 국내 크래프트 맥주에서 보기 드문 도전을 하고 있다.
라운드 미드나잇 12는 버번 배럴에 1년 이상 숙성한 임페리얼 스타우트다. 진한 다크 초콜릿과 카카오, 구운 견과류와 섬세한 바닐라 그리고 오크 향까지 맥아의 다채롭고 복합적인 향을 가득 품고 있다. 상대적으로 알코올은 크게 느껴지지 않고 쓴맛도 절제되어 마시기 편하다.
코르크가 달린 샴페인 병은 특별한 날을 위한 맥주라는 반증이다. 요즘같이 추운 날, 막 구운 쿠키나 꾸덕한 다크 초콜릿 케이크와 먹는다면 세상과 단절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색다른 크리스마스를 원한다면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라운드 미드나잇 12를 넣은 임페리얼 스타우트 아포가토도 좋다. 안 해봤다면 강력 추천.
람빅과 바질의 환상적 만남, 스폰탄 바질
강력한 놈들이 만났다.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스폰탄 바질은 자연발효를 뜻하는 스폰태니어스(Spontaneous)와 허브 바질의 합성어다. 이 맥주는 벨기에 정통 람빅 양조장 린데만스와 덴마크 크래프트 양조장 미켈러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탄생한 역작이다. 람빅과 생 바질의 만남은 우리가 생각하는 향의 범주를 초월한다.
맥주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바질은 람빅에서 빛을 발한다. 람빅 특유의 꿈꿈한 페놀 향은 놀랍게도 바질의 풀 뉘앙스와 극적으로 어울린다. 생 바질을 갈아 만든 주스에 새콤한 홍초를 넣고 세이지와 타임을 살짝 묵힌 느낌이다. 놀랍게도 이 어색한 향미의 조합이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스폰탄 바질은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당신의 비밀 무기가 될 수 있다. 750ml 병에 아로새긴 초록 무늬는 크리스마스트리와 진배없다. 만약 저녁 메뉴로 스파게티를 고려 중이라면 지루한 와인보다 이 맥주를 준비해 보자. 입 안에 남은 오일과 치즈의 느끼함은 깔끔하게 사라지고 비강에 남아 있는 바질 향의 여운이 기분을 은은하게 한다. 바질을 얹은 알리오올리오와 카르보나라,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스파게티, 모두 멋진 궁합을 보여준다.
▲ 바네하임 더 라거 |
ⓒ 바네하임 |
2004년부터 한국 크래프트 씬을 지켜온 바네하임은 섬세하고 기품 있는 맥주를 19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더 라거는 국내 어떤 양조장보다 저온 장기 숙성을 거쳐 부드러움을 갖추고 있다. 끓임 단계에 첨가한 무궁화는 다른 라거에서 느낄 수 없는 꽃의 단맛을 선사한다.
더 라거는 병에서 이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풍긴다. 매트 재질은 우아할뿐더러 빛에서 유발되는 향의 변질을 완벽히 차단한다. 5% 알코올에 섬세하게 묻어오는 청량함이 생각 외로 가볍지 않다. 단맛은 멋진 바디감으로 변해 옅은 꿀물을 먹는 듯한 느낌이다. 크리스마스이브, 친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는 따뜻한 시간에 완벽한 맥주.
크리스마스 성인이 성 니콜라우스인 이유는 그가 소외된 이웃을 돕고 사회적 약자를 돌봤기 때문이다. 날도 춥고 마음도 추운 올해 겨울은 어느 때보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이 많아 보인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2000년 전 주위를 먼저 돌아본 성인의 삶을 곱씹으며 보내면 어떨까. 그리고 맥주는 실천하는 삶에 용기와 응원을 위한 작은 선물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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