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넘어야 할 다섯 고개
대통령실과 당과의 관계 정립 등 숙제
보수 이미지 넘어 중도 확장성 도모해야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을 ‘한동훈 체제’로 치르게 됐다. 26일 오전 전국위원회에서 비대면 ARS 투표를 통해 최종 의결 절차를 밟으면 한동훈 전 장관은 공식적으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된다. 그의 앞에는 꽃길만 있는 게 아니다. 험난한 고개들이 있다. 총선을 100여 일 앞두고 긴급 투입된 한 전 장관 앞에는 어떤 과제들이 놓여 있을까.
대통령실과의 관계 정립이 최우선 과제
한 전 장관으로서는 일단 당과 대통령실과의 관계 정립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모든 공직자와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서 협력하는 관계라고 생각한다"며 "지금까지 공직생활을 하면서 공공선을 추구한다는 한 가지 기준으로 살아왔고, 그 과정에서 누구를 맹종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의 관계 역시 ‘국민’과 ‘공공선’을 위한 협력 관계로, 사적인 관계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말이 아니라 가시적으로 윤 대통령 최측근 이미지를 극복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한 전 장관이 윤 대통령에게 ‘쓴소리’도 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전 장관은 대통령하고 신뢰 관계가 두텁다. 애정이 짙은 쓴소리로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있어 잘 통할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쓴소리가 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가시적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가장 급선무는 윤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에 대한 특검법 처리 문제다. 야당은 오는 28일 본회의에서 김 여사 특검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관련 특검법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까지 거쳤기에 특검법이 본회의 문턱을 넘는 것을 여당이 막을 수 없다. 이 사안에서 여당이 어떤 태도 등을 보일지가 주목된다.
일단 한 전 장관은 이 문제와 관련해 '싸움'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특검법은) 정의당이 특검을 추천하고 결정하게 돼 있지 않으냐. 그리고 수사 상황을 생중계하게 돼 있는 독소조항까지 들어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총선에서 민주당이 원하는 선전·선동을 하기 좋게 딱 시점을 특정해서 만들어진 악법"이라며 "그런 부분이 국회 절차 내에서 고려돼야 한다"라고도 했다. 일단 특검법의 내용과 특검 시기가 총선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다만 국민 대다수 여론에 반해 특검법을 거부하기도, 그렇다고 수용하기도 어려운 국민의힘 입장에서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개혁 공천 등 총선 승리 방정식 찾아내는 것도 관건
총선 승리를 위해 긴급 징집된 한 전 장관의 최우선 목표는 승리일 수밖에 없다. 다만 이 과정에서 승리의 방정식을 찾아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일단 총선 정비와 관련해 급한 불은 크게 탈당이 임박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등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가 남아 있다. 이준석 전 대표는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만나긴 만날 수 있다"면서도 "만나도 할 말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기대가 없다"고 언급했다. 이외에도 윤석열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유승민 전 의원과 어떤 관계를 형성할지도 관심사다.
개혁 공천도 과제다. 한 전 장관은 당장 공천관리위원장 등 인선 등에 나서야 한다. 인선 방향에 따라 공천 방향도 엿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희생’ 등을 내세우며 지도부, 중진, 친윤(친윤석열) 의원들의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요구했다. 혁신안을 얼마나 현실화 할 수 있을지, 개혁 공천을 이뤄낼 수 있을지도 주목할 부분이다. 70년대생 비대위원장이 탄생하다 보니 세대교체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는데, 이를 어떻게 충족할지도 관건이다.
다만 한 전 장관이 ‘보수층’의 열광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은 양날의 칼이다. 지지세를 확장해야 하는 국민의힘으로서는 중도층, 청년층 등에서 지지세가 확장될 수 있는지가 총선 승리의 가늠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장관이 ‘보수의 아이콘’이 된 순간, 국민의힘의 중도 확장 전략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싸움꾼' 이미지 넘어서는 모습 보여야
대야 관계 설정도 주목해야 할 변수다. 한 전 장관은 장관 재임 시절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과의 설전을 불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령 체포동의안에 있어 한 전 장관은 형식적인 이유 설명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범죄사실을 소개하는 등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야당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집권당의 사령탑을 맡으면서, 장관 재임 시절과 같은 ‘설전’을 이어갈지는 지켜봐야 한다.
일단 야당은 한 전 장관과의 일전에 대비하고 있다. ‘한 전 장관이 비대위원장을 맡으면 좋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던 민주당은 일단 공식적으론 비판과 환영 입장이 동시에 나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영등포구 대림동의 ‘큰숲 경로당’에서 배식 봉사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비대위원장 취임을 축하한다"며 "집권당 책임자로서 주어진 책임과 임무를 잘 수행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통상 후임자를 지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한 뒤 이임하는 것이 수순"이라며 "이런 절차들을 모두 무시하고 사임하겠다니 법무행정의 공백은 하등 상관없다는 말이냐"고 꼬집기도 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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