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교육에서 존엄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완도신문 김남철]
위기의 시대라고 한다. 어디를 둘러봐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들이 없다. 기후위기, 교육 위기, 저출산과 지역 소멸 위기 등등. 어디 제대로인 것이 없다. 모두들 걱정하고 우려를 하지만 대안 마련과 모색은 없다. 생명과 안전, 인권과 평화, 공정과 상식의 사회를 책임져야 할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도대체 왜 내로남불, 아시타비, 각자도생의 사회로 치닫고 있는데도 정부는 무한 경쟁의 사회로 내모는가 묻고 싶다.
무엇보다 말 많고 탈 많은 교육정책을 책임지는 교육부가 2028 대입제도 개편 시안을 발표했다. 교육부가 발표한 시안은 한국 대입제도의 고질적인 병폐를 더욱 심화시킬 개악이다.
교육부는 공정성, 안정성, 변별력 등의 이유를 내세워 수능 상대평가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방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의 위기는 이런 한가한 명분을 운운할 때가 아니다. 극단적인 저출생으로 한국사회는 소멸의 길을 가고 있으며, 저출생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대입 경쟁의 과열로, 사회구성원들이 감내해야 하는 부담과 고통은 엄청나다. 그 사이에 사교육비는 극한 없는 상승을 보여주고 있다.
대입에서 무한 경쟁을 부르는 핵심 원인은 수능 상대평가다. 표준 점수 1점 차이로 대입의 당락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학부모는 사교육비 지출에 무모하게 내몰리고 있다. 학생들은 입시경쟁의 지옥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비율이 높아가고 있다.
또한 변별력을 위한 수능 상대평가와 형식적 공정성을 위한다는 선다형 시험이 창의성, 비판성, 융합적 사고 능력 등 학생들에게 필요한 미래 역량을 고사시키며 생각없는 기능인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마찬가지로 교육부의 내신 평가 방안도 후퇴한 방안이다. 학생들의 교실 안의 소모적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절대평가 5등급제 도입을 천명했음에도 모든 과목의 5등급제의 상대평가를 병기하도록 해 결국 경쟁은 그대로 남고 절대평가는 허울에 그치게 됐다.
당연히 다수의 대학은 상대평가를 대입 전형에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진로 과목을 3단계로 절대평가하고 있는 기존의 제도보다 후퇴했다. 2022 교육과정을 도입하면서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따른 과목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고교학점제도 사실상 무력화될 우려가 크다.
결국, 교육부 방안은 수능 중심의 입시경쟁을 더욱 강화하고, 내신 경쟁의 완화에도 실패한 정책으로 누더기가 되어 버렸다.
수능은 9등급 상대평가를 유지하고 내신은 5등급 상대평가로 전환해, 수능의 변별력이 내신의 변별력을 압도함으로써 대입전형에서 수능의 중요성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는 수능 대비 사교육 폭발의 신호탄이 될 것이며, 내신 준비보다는 수능 준비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자사고, 외고 등의 인기를 부추겨 일반고 황폐화를 가져올 것이다. 사교육비 지출 능력과 특목고-자사고 학비를 부담할 수 있는 경제력을 지닌 상류층의 입시경쟁력을 강화해 교육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교육정책과 교육제도를 설계하고,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교육 관료의 일방적인 정책 결정을 견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그동안 전국교육감시도협의회와 백여 개가 넘는 교육-시민 단체에서 교육부의 대입제도 개편 시안의 문제점을 상세하게 지적하고 절대평가를 중심으로 여러 대안을 제출했다.
그럼에도 국가교육위원회는 공론장을 개설해 교육주체와 교육 관련 단체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하고 수렴하는 과정을 시도하지 않았다. 국가교육위원회가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교육부의 들러리 역할을 자처한다면 스스로 자기의 존립 근거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무능과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뜻있는 시민들은 국가교육위원회가 수능-내신 절대평가 전환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대입제도 방안을 마련하여 교육부에 제안할 것을 바라고 있다. 대입제도의 올바른 개편은 교육 문제의 해결은 물론 한국사회의 위기 해결에도 중차대한 문제이다.
교육위기의 시대에 교육정책은 경쟁교육에서 존엄교육으로 전면 전환돼야 한다. 경쟁과 갈등은 위기를 더욱 가속화하게 될 것이다. 이제 근본적인 교육철학과 정책이 상생과 공감하는 인간의 존엄교육으로 시급히 전환할 때이다. 그래야 새로운 변화와 희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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