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적 침략 막아낸 이 곳, 호남을 수호하다

완도신문 정지승 2023. 12. 2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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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가리포진 객사 청해관

[완도신문 정지승]

  가리포진 객사 청해관
ⓒ 완도신문
전남 완도의 옛길을 걷다 마주한 가리포진 객사 청해관. 이곳은 통영 세병관, 여수 진남관과 함께 현존하는 유서 깊은 수군 진의 유적이다. 완도군립도서관에 자리하고 있는 청해관은 전형적인 한국의 단층 건물로 완도군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다. 

청해관은 1722년 가리포진 124대 첨사 이형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1869년 가리포진 204대 첨사 이위소가 중수했고, 삼문에는 가리포진 196대 첨사 홍선이 쓴 호남제일번(湖南第一藩)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뜻하지 않게 현판은 지난 1990년대 중반에 도난당해 옛 자료를 토대로 복원됐다고 한다. 

전국에 호남제일이라는 이름이 여러 곳에 붙어있다. 그 중에 호남제일루는 보물 제281호인 남원 광한루, 호남제일정은 보물 제289호인 정읍 피향정, 호남제일성은 보물 제308호인 풍남문이 있고, 호남평야의 첫 관문인 전주에는 호남제일문과 호남제일관인 만마관도 있다. 

그런데 청해관이 호남제일번이라, 그 뜻이 매우 심오하다. 이곳에 서면 괜스레 마음이 경건해진다.

호남제일이라고 이름 붙은 유적지는 왜적의 침략을 막아내는 요새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곳이 많다. 
 
 호남제일 이름 붙여진 이유
ⓒ 완도신문
 
 가리포진의 역사와 딱 맞는 호남제일번
ⓒ 완도신문
여기에서 번의 뜻은 지키다, 수호하다는 의미가 짙다. 그래서 호남제일번은 가리포진의 역사와도 딱 맞는 이름인 것 같다.

전국에는 호남제일번을 사용했던 곳이 하나 더 있다. 전주의 만마관이다. 1868년 간행된 김조순의 문집 풍고집에는 만마산성 신축기가 소개되는데, 여기에서도 호남제일번(湖南第一藩)과 호남제일관(湖南第一關)을 사용한 만마관이 나온다. 만마관은 그 지역의 요새였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도관마을 중턱인 협곡을 끼고 성을 축조했다. 그곳을 만마도관이라 불렀는데, 완산승경 가운데 하나다. 높이가 70-80 미터에 이르는 산성과 관문을 갖춘 난공불락의 요새지였다.

옛날에는 좌우로 산이 걸쳐 있는 협곡이었다. 요새가 들어서기에 가장 적합한 곳으로 전쟁이 났을 때 이곳을 막으면 적군이 더 이상 쳐들어올 수 없는 지형이었기 때문이다. 

만마관은 전주부성인 전라감영의 남쪽을 지켰던 축성이었고, 남원과 나주, 광주를 포함해 멀리는 제주도까지 전주를 거쳐 한양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했다.

현재 역사적 가치 차원에서 지자체와 정부차원에서 공모사업으로 복원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며, 전주의 랜드마크로 재탄생되어 천년고도의 역사적 자긍심과 관광객 유치에 큰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전주의 만마관이 육지에서 왜적을 물리친 요새였다면 완도군 가리포진의 청해관은 해상에서 왜적을 물리친 요새로써의 의미가 크다. 

청해관 뒤쪽과 건너편에 보이는 망산은 우리나라 수군의 요충지로써 이순신과의 인연이 깊다. 완도군도 역사적 자긍심 회복을 위해 성터 복원을 추진 중에 있다.

청해관은 객사로서의 역할을 했다. 객사는 궐패를 모셔놓고 관아를 방문하는 관리나 사신들이 머물던 곳으로 관아에 있던 시설물 중에서 서열이 가장 높다. 

조선 초기에 객사는 주로 평안도와 경상도에 집중됐고, 성종 때 사림파를 등용하여 전국적으로 번져갔다. 향촌에 성리학을 전파하려고 객사의 중심 건물인 정청에 궐패를 안치해 삭망월 등에 망궐례를 행하기 시작했으며, 임진왜란을 거쳐 18세기에 들어서 그 행사가 일반화됐다. 

수령과 관원들이 초하루와 보름, 명절, 그리고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전패를 북쪽에 안치하고 그 앞에서 임금이 있는 방향을 향해 절하는 망궐례를 행했다.

청해관은 일제강점기 소학교로 쓰이다가 광복 후 지역의 교육기관과 향토방위군 교련장, 완도교육구청 청사로 사용하는 등 완도군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난 2019년 9월 24일 완도문화원이 주관하여 헌다의례로 망궐례를 재현하면서 이순신과 명나라 장수 진린의 추모의례도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가리포진의 객사에서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마다 궐패를 모시고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며 예를 올렸던 곳이기에 우리 지역의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가 매우 크다. 또한 우리 지역 고유의 발전 계승해야 할 전통문화 가운데 하나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그들만의 전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자신들의 문화를 계승하고 더 발전시키려고 연구한다. 자신들의 문화를 허투루 여기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 이유로 완도군을 더 효과적으로 관광자원화 하려면 지역의 문화유산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더불어, 시대의 흐름에 맞는 문화콘텐츠 개발에 지역사회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다. 

완도군은 가는 곳마다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선조들이 물려준 소중한 유산을 잘 알리는 일은 우리의 정체성을 갖게 하는 중요한 의식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문화예술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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