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회장과 세 모녀의 LG 경영권 다툼…솔로몬재판 '진짜엄마'의 심정으로 [데스크 칼럼]
세 모녀 뉴욕타임스 인터뷰…LG 글로벌 이미지에도 타격
역지사지의 마음으로…세 모녀 소송 취하해야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두 여인에게 주라."
솔로몬왕은 어미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에게 아기를 칼로 잘라 반씩 나눠 가지라고 했다. 한 명은 좋다고 했지만 다른 여인은 포기할 테니 아이를 살려달라며 울부짖었다.
이번 주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뉴스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낸 김영식 여사와 여동생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 씨의 뉴욕타임스 인터뷰였다. 법정을 통해 시시비기가 가려질테지만,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는 LG로선 기업 이미지에 흠집을 남겼다. 세 모녀가 국내 언론이 아닌 굳이 해외 언론을 선택해 인터뷰한 것을 보면 LG가 가부장적 권위주의 기업이란 점을 말하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세 모녀는 올 초 구 회장을 상대로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구 회장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상속 범위를 넘어 재산을 상속받았고 이에 따라 상속재산을 다시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다. 2018년 작고한 구본무 전 회장은 LG 주식 11.28%를 비롯해 총 2조원 규모의 재산을 남겼다. 구 회장을 비롯한 구 전 회장의 유족들은 2018년 11월 각각 LG 지분을 비롯한 재산을 상속인 합의에 따라 나눠 받았다. LG에 따르면 김 여사 등 상속인 4명은 여러 차례 협의를 통해 LG 주식 등 경영권 관련 재산은 구 회장이, LG 주식 일부와 개인 재산(금융투자 상품·부동산·미술품 등)은 세 모녀가 받는 것으로 의견을 정리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구 회장은 LG 지분 8.76%, 장녀인 구 대표와 차녀 구 씨는 각각 2.01%, 0.51%를 받았다. 세 모녀는 또 구 전 회장의 서울 용산구 한남동 단독주택 등 5000억원 규모의 재산을 물려받았다.
세 모녀의 주장은 이렇다. 구 회장이 LG 지분 8.76%를 포함해 더 많은 유산을 상속하는 대신 상속세를 혼자 부담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지만, 실제로는 세 모녀가 가진 LG 주식을 담보로 받은 대출로 상속세를 냈다는 것이다. 유족 4명이 내야 할 상속세는 모두 9900억원에 달한다. 결국 세 모녀는 별도의 유언이 없었던 만큼 구 전 회장의 상속분을 법정 상속 비율에 따라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정 상속 비율에 따르면 배우자인 김 여사가 1.5, 나머지 자녀들이 1 대 1 대 1의 비율로 재산을 분할해야 한다.
이들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구 전 회장의 지분은 김 여사에게 3.75%, 구 회장과 두 자매가 각각 2.51% 받게 된다. 양측 간 지분율 차이가 역전되면서 경영권을 위협할 수준이 된다. 이미 재판과정에서 세 모녀는 '경영권 참여' 의도를 나타낸 바 있다. 이들의 대화가 담긴 녹취록에 따르면 김 여사는 "지분을 찾아오지 않는 이상 주주간담회에 낄 수 없다"며 "경영권 참여를 위해 지분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한데 불편하다. 이 같은 후계 구도는 구 전 회장 유언에 앞서 구자경 LG 명예회장을 비롯한 LG그룹 구씨가의 가족회의에서 최종 결정된 일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구 회장은 구 전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2004년 구 전 회장의 양자로 입적했다. 구 회장은 LG그룹 총수 일가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구 전 회장의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구 전 회장의 배우자인 김 여사, 딸인 구 대표와 구 씨와는 원래 큰어머니, 사촌 관계인 셈이다. 뉴욕타임스가 이번 소송을 "큰아들이 권력과 부를 장악하고 다른 여성 가족 구성원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LG의 가부장적 전통에 도전하는 소송"이라 했지만, 자칫 잘못하면 평생 쌓아 올린 업적과 명성을 단기간에 날려버리는 계기가 되는 게 후계자 승계다.
그래서 처지를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고 싶다. 만약 90년대 중반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친아들이 살아 경영권을 물려받았어도 김 여사와 여동생들은 'LG의 가부장적 전통에 도전'했을까. 또 친아들, 친오빠를 상대로 지금과 같은 유산 소송을 벌였을까. 세 모녀가 해외 언론을 통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헌법과 법률에 따라 보호받는 우리의 권리가 무시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고 호소했을까. 그간의 LG가의 전통을 볼 때 아마 그럴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세 모녀의 소송은 '내 새끼만 귀한' 자기희생적, 일방적 모성으로 대표되는 가부장적 질서의 또 다른 모습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궁금하기도 하다. 물론 상황을 가정해서 하는 상상은 의미가 없다. 그만큼 성별과 가족 문제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어려운 분야다. 세 모녀의 주장은 재판을 통해 가려질 것이다.
다만 세 모녀가 증거 자료로 제출한 녹취록에 따르면 구 회장은 김 여사에게 LG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힐 수 있으니 유산을 두고 분쟁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사실 이 대화가 이번 소송의 출발점이 됐으면 어땠을까 싶다. DNA 대신 왕의 지혜로 진정한 부모가 누군지 가린 솔로몬 재판에서 보듯, 누가 LG를 진정으로 아끼는지로 판가름할 수 있다면 말이다.
지금 세계 경제는 컵에 물이 가득 차 있어서 한 방울만 더해지면 물이 흘러넘치듯, 아주 미세한 충격만 있어도 큰 변화가 일어나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지나고 있다. 산업의 지형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기업의 부침도 더욱 가팔라지는 양상이다. 시장 자체가 사라지는 패러다임 변화에는 1등 기업도 살아남을 수 없다. 구광모 회장에겐 1분 1초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바램이지만, 눈앞의 이해득실보다 국가와 미래 세대를 위해 구광모 회장이 LG 경영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세 모녀가 그만 놔줬으면 한다. 솔로몬재판에 '진짜엄마'의 심정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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