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목 선택권' 생긴 아들... 하지만 특수교사는 '허허' 웃었다 [류승연의 특수교육 A to Z]
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막막하고 힘들지만 이 삶을 사는 기쁨 또한 있기 마련이지요. 장애 진단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특수교육대상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하나씩 짚어가 봅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웃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 <기자말>
[류승연 기자]
▲ 고교학점제에서는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이 생기게 된다. |
ⓒ unsplash |
중학교 2학년인 딸 학교(사립 중학교)에서 고교학점제에 대한 안내를 받고 한숨을 쉬었어요. 이건 또 뭘까. 입시제도가 또 바뀐 걸까.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 2025년부터 시행이라 하더군요. 아직 1년 남았으니 내년에 천천히 알아보자며 슬그머니 뒤로 미뤄 놨습니다.
그런데 쌍둥이인 아들이 다니는 학교(특수학교)에서 연락이 왔어요. 고교학점제에 대한 부모 교육을 실시한대요. 특수학교에서도 고교학점제를 시행한다고? 하긴 우리나라 특수교육은 비장애 일반교육과 같은 교육과정으로 운영되고 있으니까요.
딸에게 언뜻 듣기론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수업을 듣고 이수학점을 따야만 졸업하는 제도가 고교학점제라고 했어요. 특수교육에 고교학점제가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궁금증을 안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학생선택과목 신설
고교학점제란 기초학력과 기본학력을 바탕으로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이수 과정에 도달한 목표에 대해 학점을 취득·누적하여, 졸업을 인정받는 교육과정 이수 운영제도입니다. 한 마디로 학생에게 과목 선택권을 주겠다는 겁니다. 마치 대학처럼요.
그런데 대학에도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전공필수 과목이 있잖아요. 고교학점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공필수 과목처럼 학교가 지정한 과목이 있고 학생이 고를 수 있는 선택과목이 있어요.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이 생기는 것, 이게 고교학점제의 핵심입니다.
이를 위해선 기존 교과가 아닌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맞으면서도 특수교사가 가르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새로운 교과가 구성돼야 해요. 예를 들어 일부 학생의 적성과 진로가 방송댄스 쪽인데 춤을 잘 추는 선생님이 없으면 방송댄스 과목은 개설되지 못하는 겁니다.
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에서는 재활, 여가활용, 정보통신활용, 생활영어, 보건의 5과목을 개설했더라고요. 내년에 고1이 되는 현 중3부터 고교학점제를 단계적으로 적용한대요.
현 중3 학생들은 내년부터 5과목 중 한 과목을 신청해 해당 시간이 되면 각자가 신청한 교실로 이동해 수업을 받고 다시 원반(1학년 1반 등 소속된 원래 반)으로 돌아올 거예요.
개설된 과목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마음이 놓였어요. 중도 장애가 있는 제 아들도 흥미를 갖고 능히 할만한 과목이 있었거든요. 향후 과목 변화가 없다면 저는 아마 재활, 여가활용, 보건의 3과목을 신청해 아들이 고등학교 3년 동안 한 과목씩 이수할 수 있도록 할 것 같아요.
아들 친구 중에는 영어를 사용하는 학생도 있어요. 특수교육 과정에는 영어가 없기 때문에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유튜브나 영화 등을 보며 한두 마디씩 따라하다가 배웠다 하더라고요. 기존엔 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지만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이 친구는 학교에서 생활영어를 배울 수 있을 거예요.
▲ 고교학점제 누리집 화면. |
ⓒ 고교학점제 누리집 갈무리 |
비장애인 딸의 학교생활은 대학입시가 중심에 있기에 고교학점제라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된다고 했을 때 부담이 느껴졌어요.
하지만 특수교육대상자, 그중에서도 특수학교에 재학 중인 아들에겐 고교학점제가 꽤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고교학점제라는 제도를 통해 몇 시간이라도 기능별 주제학습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거든요.
장애 정도가 중한 학생들이 많이 입학하는 특수학교에 가면 학생 맞춤형 특수교육을 잘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특수학교이기에 학생 맞춤형 특수교육을 받기가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교사 1명이 발달장애 학생 6명을 데리고 매시간 촘촘한 교과 진도에 맞춘 수업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학생 수준별로 반 편성을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 학생들도 더 많은 수업에 더 높은 참여율을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하지만 이렇게 반 편성이 되면 문제가 발생하더라고요. 일단 중증 장애 학생이 모인 반은 구성원 전체가 많이 힘들어질 거예요. 또 학생들 사이에서도 우열반 개념이 생기며 또래 안에서의 차별과 집단 배제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고요.
그래서 다음으로 생각해 본 게 주요 과목에 대한 주제 중심 교환수업이었어요. 딸 학교에선 중학교 3학년인 내년에 영어 과목에 한해 교환수업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영어 성적에 따라 반이 나뉘게 되는 거예요. 교육적 성취 정도가 비슷한 학생들끼리 모여 수준에 맞는 심화교육을 받음으로써 전체 학생의 교육 성취를 높이겠다는 취지에서죠.
발달장애 학생의 인지 발달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입니다. 인지발달에 따른 차이가 가장 두드러지는 게 국어나 수학 등 주요 과목을 공부할 때고요. 그래서 주요 과목 시간만이라도 인지 발달에 따라 동학년 안에서 반을 재구성해 수업을 들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고교학점제가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겠더라고요. 예를 들어 무발화(말을 하지 않는)인 제 아들은 아직 한국어도 못하기에 생활영어반을 선택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반면 특수학교 안에서도 엘리트에 속하는 아들 친구는 굳이 재활 수업을 선택해 활동에 필요한 기초기능을 배울 필요가 없을 것이고요.
고교학점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기능별 주제수업, 학생 맞춤별 특수교육이 가능해진 겁니다. 비록 몇 시간에 불과하지만 말입니다.
예상되는 문제, 남은 과제
일단 특수학교에 아들을 보내고 있는 엄마 입장에선 고교학점제가 반갑습니다. 언젠가 시스템이 정착되면 굳이 고교학점제에 속한 선택과목만이 아니라 다른 과목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이동, 교환수업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거든요.
하지만 고교학점제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있습니다. 일단 지금 시스템은 교사에게만 모든 책임이 다 떠넘겨진 듯 보였어요. 당장 과목을 신설해야 하는데, 신설하는 과목의 필수조건이 교사가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니까요.
신설된 과목의 전문가를 교육청에서 따로 파견해 주거나 협력 교수하는 방식도 아니고 기존 교사들이 알아서 새로운 과목을 창조해 가르치라는 것이니 교사 입장에선 부담이 가중될 수 있겠다고 느꼈어요.
또 교실 문제도 있어요. 고교학점제가 학생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을 선택한다는 취지라면, 기존 교실에 학생 구성만 달리하는 형식으론 수박 겉핥기가 될 수밖에 없거든요.
제과제빵 과목이 개설됐는데 빵을 구울 수 있는 특별실이 없어서 교실에서 TV로 빵 굽는 방법을 알려주는 영상만 보고 있으면 그건 고교학점제 시행 취지가 무색해질 거니까요.
고교학점제의 완전한 정착을 위해선 활동이 보장될 수 있는 특별실이 새롭게 지어져야 합니다. 당연히 이를 위한 교육청 지원이 있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지원이 있어도 각 특수학교마다 특별실을 만들, 남는 공간이 없습니다. 어떡해야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수학교는 그나마 괜찮아요. 적어도 학교 안에서 학생끼리 교실을 바꿔가며 고교학점제 비슷한 흉내라도 낼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통합교육 특수학급입니다.
통합교육 중인 특수학급 학생 수는 학교당 6명이에요. 2개 특수학급이 개설돼 있으면 12명이고요. 수는 적지만 이 학생들도 저마다 진로와 적성이 다른데, 이 학생들을 위해선 어떻게 선택과목을 만들고 그 과목을 이수하게 하지요? 비장애 학생의 선택과목 안에 끼어들어 가는 건가요? 아무런 지원도 없이요?
현재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사로 재직 중인 지인에게 연락했어요. 허허 웃더라고요. 주변 몇 개 학교의 특수학급이 모여 공동 과목을 신설해 이동수업을 하거나, 거점학교에 공간을 만들어 수업하는 방식이 거론되긴 하지만 아직 뾰족한 수도 없고 그냥 허허 웃을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비장애 학생이라면 다른 학교에 가서 수업받고 오는 게 즐거울 수도 있을 거예요. 발달장애 학생 중에도 외출하는 기분으로 즐기는 학생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장애 특성으로 인해 새로운 환경 변화에 불안감을 느끼는 학생도 분명 있을 것이고, 장거리 이동에 대한 여러 가지 고려(이동수단, 인력 배치)도 해야 할 겁니다.
충분히 예상되는 이 모든 문제와 과제에 대한 교육부와 교육청의 지원이 촘촘하게 이뤄지길 바랍니다. 별다른 지원도 없이 툭 하고 던져만 놓고 현장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면 그래선 안 되는 거잖아요.
아들과 딸이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1년이 남았습니다. 1년 동안 어떤 지원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지켜보겠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