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활동 기록, 전부 다 폐기될지도 모릅니다 [그 정보가 알고 싶다]
[정보공개센터]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
ⓒ 권우성 |
이런 기록의 중요성 때문에 국민을 대행하고 있는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경우 2007년 시행된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그리고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2000년부터 시행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아래 공공기록물법)에 따라서 업무 간 생산하거나 접수해 보유한 기록들을 엄격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국회의원 의정활동기록 관련 법규 없어서 관리 안 돼
그러면 국민을 대의하는 국회와 국회의원의 경우는 어떨까? 국회와 국회의 각 기관은 국가기관에 포함되어 공공기록물법의 적용을 받는다. 그리고 공공기록물법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국회는 '국회기록물관리규칙'을 별도로 두고 있다. 이 규칙의 적용을 받는 국회 소속기관으로는 국회사무처, 국회도서관, 국회예산정책처, 국회입법조사처가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국민들의 삶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300명의 국회의원(실)은 공공기록물법과 국회기록물관리규칙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고, 국민의 세금으로 지급되는 세비를 받아 생계를 유지하고,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공무수행을 하는 한, 국회의원의 의정활동 기록물은 어떤 예외적인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결국 '공공기록물'이다.
즉 현재는 국회의원이 공식적으로 국회 소속기관에 제출하는 최소한의 기록을 제외하면 그보다 훨씬 많은 온갖 종류의 국회의원 의정활동기록들이 공공기록물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 제19대와 제20대 국회의원실 의정활동기록물 수집현황 국회기록보존소에 따르면 제19대와 제20대 의원실 중 국회기록보존소로 의정활동기록을 기증 이관한 의원실은 제19대에 20개 의원실, 제20대에 14개 의원실에 지나지 않는다. |
ⓒ 정보공개센터 |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금까지 수많은 의정활동기록들이 국회의원의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되거나 의원 본인과 보좌관 및 비서관들에 의해 사유화되는게 일반적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민의 알권리가 더 확대되는 것이 가로막히고 의회정치 발전을 지체시키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작용들은 자연스럽게 의정활동기록을 수집해 공개함으로 국민의 알권리와 의회정치 발전을 도모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국회기록보존소가, 체계적인 기록 이관이 아닌 의원들의 자율적인 '기록 기증'에 과도하게 의존하도록 만들고 있다.
국회의원 의정활동기록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2018년 현경대 전 의원(11대, 12대, 14대, 15대, 16대)과 이종찬 전 의원(11대, 12대, 13대, 14대)은 각각 자신들이 보유하던 의정활동기록물들을 국회기록보존소에 기증해 기증된 기록물의 전시회를 개최했다.
▲ 이종찬 전 의원(현 광복회장)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3년 운암 김성숙 학술심포지엄'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대통령직 인수위 위원장, 국가정보원장 등을 지낸 이종찬 전 의원은 평생 보관해 왔던 의정활동 관련 자료 6500여 점을 국회도서관에 모두 기증했다. 여기에는 1985년 '학원안정법' 시안, 1986년 '국회 프락치 사건' 조사철, 1987년 '6·29 민주화 선언' 직전 노태우 대표에게 전달한 메모와 선언문 수기본 등 격동의 한국 현대사 주요사건들에 관련된 기록들과 지금까지 다른 사료들에서 발견된 적 없었던 비사(祕史)도 다수 포함하고 있었다.
이듬해인 2019년에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김 중 한 명으로 현대사의 굵직한 정치가였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기록물 기증이 이루어졌다. 김 전 총리의 장녀 김예리 여사는 김 전 총리 사망 1주기를 맞아 국회도서관과 기증협약을 맺고 김 전 총리가 남긴 기록물 일체를 기증했다.
여기에는 김 전 총리 정치활동의 원동력이 되었던 옛 청구동 자택 서재에 보관된 책 약 7000여 권과 각종 기록물과 사진, 비디오 등 수천 점이 포함되었다. 김 전 총리가 보관하던 기록물 역시 지금까지 학계나 언론 등에 공개된 적이 없는 자료들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처럼 국회의원 의정활동기록물들은 그 자체로 당대의 역사이며 동시에 후대의 국민의 삶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보들이다. 이런 중요한 기록들이 앞의 사례들처럼 우연한 계기로 기증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국민들에게 공개되지 않고 빛을 보지 못한채 소실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의정활동기록 제도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개회사 중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
ⓒ 박주민 의원실 |
지난 15일 때마침 국회에서는 (재)바보의나눔 후원으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정보공개센터)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공동주최한 '국회의원 의정활동기록 제도화를 위한 국회토론회'가 개최되었다.
▲ 의정활동기록 제도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발제 중인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 |
ⓒ 정보공개센터 |
또한 서 대표는 국회의원과 의원실 직원들이 체계적인 의정활동기록 관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행정부의 공공기록물법과 같이 의정활동기록의 개념과 범위 그리고 체계적인 관리 기준들의 법적 근거를 포함하는 '국회기록물법'의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국회기록보존소로 넘겨도 정말 괜찮아?" - A 의원실 보좌관
김장환 연구관은 의원실 입장에서 "기록이 남겨짐으로써 갖게 되는 (정치적)위험요소 때문에 (의정활동기록)법제화에 반대할 것 같다"는 우려를 이야기 하기도 했다. 의원실에서 제도화에 동의하기 위해서는 "기록이 남겨지고, 기록보존소로 이관됨으로써 철저히 비밀이 보장되고, 기록보존소 역시 정치적으로 이용당하지 않도록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역시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 의정활동기록 제도화 토론으로 참여한 이종호 오마이뉴스 데이터저널리즘 기자 |
ⓒ 정보공개센터 |
이종호 <오마이뉴스> 데이터저널리즘 기자는 국회와 국회의원실의 정보를 활용하고 감시하는 입장에서 "국회의원의 이해충돌을 감시하기 위해 피감기관에서 자료 목록 공개"가 중요하다며, "(행정부)피감기관에 따로 정보공개 청구하면 일부 공개가 가능할 수 있지만 반복적으로 큰 행정인력이 소요된다"라고 말했다. 의정활동기록 제도화의 필요성을 설명한 것이다.
또한 "의정활동기록의 제도화는 정치인 검증의 중요한 수단과 전환점이 될 수 있다"라며 "의정활동기록의 체계적인 관리 체계에 의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위해서 의원별 참여 정도를 지수화해서 의원평가나 공천 점수 등에 반영하면 효과적"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1948년 제헌 국회 이래로 얼마나 많은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기록들이 소실되었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이제라도 의회정치의 발전을 위해 이런 손실을 막아야 한다. 당장 얼마 남지 않은 21대 국회부터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정보공개센터는 이번 토론회를 시작으로 내년 5월 총선 이후에도 22대 국회에서도 의정활동기록 제도화 논의를 지속하고, 국회의원 및 국회 기관들과 협력해 국회기록물에 관련한 법률 등 입법을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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