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추방되다 [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

김선흥 2023. 12. 2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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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 청나라의 흉계

[김선흥 기자]

한국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아버님은 내가 조선을 떠나 해군으로 복귀할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신규 순양함에 자리 하나를 얻으려면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관실에서 맥주내기 주사위나 던지며 빈둥거라면서 언제 상륙하나 하고 목을 빼는 해병 생활은 여기에서 이렇게 어렵게 지내는 것보다 더 나을 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조금 참게나, 자넨 언젠가 제독이 될 거니까'라고 말하면 조금도 즐겁지 않습니다."

1887년 3월 1일 딘스모어Dinsmore  신임 공사가 부임했습니다. 마음이 따뜻하고 솔직한 인상을 주는 그는 날더러 같이 일하자고 하였습니다. 해외 경험이 없는 그를 나는 열성껏 도왔습니다. 우리는 동지가 되었습니다. 

한편 고종은 내가 조선군대를 훈련시키는 교관으로 복무할 수 있도록 주택 한 채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나는 미국에서 정식 군사교관이 올 때까지 조선 군대를 훈련시킬 생각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의 허가가 필요했습니다.

나는 조선 정부가 미국 측에 정식 요청해 달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그런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습니다. 청나라 원세개가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가장 고약한 일은 외교부서의 수장이 제 나라 왕이 아니라 청나라 원세개의 신하 노릇을 자임하고 있는 점이었습니다. 왕은 나를 붙들려 하고 원세개와 그 신하들은 나를 추방시키려는 싸움이 치열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나는 실로 오랜만에 삶의 환희를 느꼈습니다. 몸 상태가 완연히 좋아졌습니다. 공사관 직책 이전 옛날의 나 자신으로 되돌아간 같았습니다. 아름다운 봄 날씨에 느긋히 독서를 즐겼습니다.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마음의 평정이 되돌아 왔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너무 짧았습니다.          

원세개는 고종이 나를 끌어들이고 주택까지 마련해 주자 길길이 날뛰었습니다. 그는 포크를 내쫒지 않으면 자기가 떠나겠다며 왕을 협박했습니다. 외교 부서의 수장은 원세개의 지시에 따라 공사관에 공한을 보내왔습니다. 공한은 내가 조선에 위해한 내용을 상하이 신문에 공표했다고 재차 비난하면서 조선 정부가 나의 소환을 미 정부에 요청하기 전에 내가 스스로 당장 떠나는 게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한편 워싱턴 주재 중국 공사는 미 정부에 포크를 소환하지 않으면 양국 관계에 좋지 않을 거라고 협박했습니다. 나를 제거하기 위하여 청나라는 전방위적 압박을 가했던 것입니다. 나에 대한 암살 기도도 있었습니다. 

5.8 외교부 수장은 두 번째 공한을 공사관에 보내왔습니다. 포크를 즉시 추방시켜야 하며 만일 그렇지 않으면 공사관이 곤경에 빠질 거라고 위협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공한이 국왕의 뜻과 상반될 뿐만 아니라 어쩜 국왕 몰래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만일 내가 청나라의 뜻대로 조선을 떠난다면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통치권을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조선의 자주독립을 규정한 한미수호조약을 미국이 스스로 저버림으로써 조선을 배신하는 일이 됩니다. 

"아버님, 어머님......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은 국무성이 저의 기밀 보고서를 공표한 데서 비롯된 것이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국무성은 결과적으로 저를 이역만리에 표류하도록 내팽개쳐 놓았습니다. 저의 보고서에 부정적으로 서술된 이 나라의 권문세족들 뿐 아니라 일부 백성들조차도 저를 극도로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보고서가 그들의 어두운 면을 다루었던 것은 그들의 잘못을 알리려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정부로 하여금 조선의 특이한 정세에 대하여 분명하고 바른 이해를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지요. 저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을  뿐입니다. 사정이 그러한데 우리 정부가 저를 내팽개친다면 말이 안 되겠지요.

만일 지금 제가 조선을 떠난다면 그건 잔인한 청나라 사람 하나(원세개)가 미국 관리 한 명을 짐짝처럼 치워버리는 걸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소문이 퍼지고 신문에 보도가 될 거고 저에 대한 나쁜 이야기만 나돌겠지요.

또 제가 떠나게 되면 청나라는 더욱 기고만장하여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습니다. 주군과 나라에 충성하는 나의 조선 친구들에게도 아마 재앙이 닥칠 겁니다.  저는 이곳에 남고 싶어 안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고국의 명예를 더럽히면서 그리고 조선에 해를 끼치면서 조선과 절연하는 일 만큼은 피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1887.5.9 편지

나와 딘스모어 공사는 본국 정부에 구구절한 메시지를 보내 청나라의 압력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습니다. 친지들에게도 그런 취지의 메시지를 전파했습니다. 우리는 정부의 합당한 회신을 기다렸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학수고대했습니다. 마침내 회신이 온 것은 6월 18일이었습니다. "귀관을 공사관에서 해임한다." 나는 허물어져 내렸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6. 18일 요코하마의 제독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귀관을 공사관에서 해임하며 제물포항의 마리온호 선상 근무를 명함" 이것이 저희 정부에 의한 문건 공개 사건의 결말이랍니다. 우리 정부는 이처럼 저를 해임시킴으로써 청나라의 원세개가 조선의 주인임을, 나아가 청나라가 줄을 당기면 그에 따라 미국 정부가 춤을 춘다는 증거를 천하에 공개하는 꼴이 되었지요. 조만간 제가 떠나게 되리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우리 정부가 저를 이토록 돌연히 퇴출시키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지요." - 1887.6.28 편지

민영익이 6월 15일 중국에서 조선으로 돌아왔는데 다음날 나를 만나러 왔습니다. 우리는 거의 세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그는 날더러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조선에 남아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원세개가 왕을 시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민영익으로부터 청나라의 흉계를 알게 된 왕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럴수록 그들은 나를 필요로 했습니다. 

딘스모어 공사는 6.22일 본국에 다시 전보를 쳤습니다. 국왕과 민영익이 포크의 조선 주재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나의 해임을 재고해 달라는 호소였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대답은 해임을 재확인해 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끝났습니다. 

나는 추방자 신세가 되어 한양을 떠나야 했습니다. 제물포에 정박해 있는 마리온 호를 홀로 찾아가야 했을 때 느껴야 했던 그 비통함이라니… 나는 며칠 동안 먹지도 못했고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저는 너무 비참한 심정이어서 사흘 동안 먹지도 자지도 못했습니다. 함장은 저를 조선에서 추방하라는 청나라의 요구에 미국 정부가 순응하는 것을 신기해 하더군요. 지난해 8월 그는 대리공사인 저를 위해 열 한 발의 예포를 쏘게 했지요. 그런데 이제 저는 일개 소위로서 함선에 복귀한 겁니다. 장교복 한 벌도 없는 수치스럽고 초라한 모습으로." - 1887.6.28 편지

마리온 호는 6.30일 아침 5시에 조선 바다를 떠나 나가사키로 향했습니다. 조선 왕국에 첫 발을 디딘 지 꼭 3년 1개월 만이었습니다. 희붐한 미명 속에서 멀어져 가는 조선 땅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조선이여, 이제 안녕......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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