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전문가 글 페이스북 무단 게시… 저작인격권 침해" 첫 인정

최석진 2023. 12. 2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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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된 타인의 글을 무단으로 자신의 SNS에 퍼 나르며 출처를 표시하지 않은 경우 원저작자의 저작인격권 침해가 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최근 확정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저작권법위반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고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A씨는 2015년∼2018년 기계항공공학 박사인 B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과 연재글 등을 모두 47회에 걸쳐 마치 자신이 쓴 글인 것처럼 페이스북에 게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기계항공공학 박사인 B씨는 미국 모 대학의 연구원, 국내 대기업 수석연구권 출신으로 모 기업의 기술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B씨는 2011년 2월부터 2014년 1월까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음악, 미술, 역사, 문학, 공학 등 여러 분야의 주제에 대해 기계항공공학 박사로서의 식견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여 수필 형식의 게시글 50여개 이상을 창작해 게시했다.

또 2017년 1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모 학회에서 발행·운영하는 잡지의 전문가 연재란에 '유체역학의 의미와 기여', '뉴턴의 업적소개' 등 총 24개의 글을 창작해 연재했다.

B씨와 페이스북 친구관계를 맺고 있던 A씨는 B씨가 올린 게시글을 복사해 소장하고 있었고, 연재글의 경우 B씨에게 직접 부탁해 건네받아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A씨는 B씨가 2014년 페이스북 계정을 닫자 2015년 3월부터 2018년 8월까지 3년 6개월 동안 게시글 42개, 연재글 3개를 그 내용을 부가하거나 구성을 변경해 마치 자신의 저작물인 것처럼 게시했다.

이처럼 A씨가 올린 글에 대해서는 A씨의 페이스북 친구들이 '항상 박식하신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단하신 필력과 입체적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해박한 지식과 쉽고 재밌게 풀어나가는 이야기에 심취하게 됩니다' 등의 칭찬 댓글을 달았고, 이에 대해 A씨는 '과분한 칭찬입니다', '쑥스럽습니다' 등의 답글을 달기도 했다.

검찰은 A씨에게 모두 3개의 저작권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B씨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복제 및 공중송신해 B씨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한 혐의(저작권법 제136조 1항 1호) ▲저작자 아닌 자를 저작자로 표시해 공표한 혐의(저작권법 제137조 1항 1호)와 ▲저작인격권 침해(저작권법 제136조 2항 1호) 등이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건 '저작인격권 또는 실연자의 인격권을 침해하여 저작자 또는 실연자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는 저작인격권 침해 혐의 인정 여부였다.

1심은 A씨의 지적재산권 침해 혐의와 저작자 허위 공표 혐의 유죄를 인정,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문리적으로 해석하면 위 조항의 구성요건적 행위는 '저작인격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이다"라며 "따라서 위 조항에 따른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저작인격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별도로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저작인격권을 침해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합리적 근거를 찾아볼 수 없고, 저작인격권을 침해하는 글이 그 안에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데도 단순히 파급력이 높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공개됐다는 사정만으로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그리고 재판부는 "A씨의 행위가 저작인격권 침해를 넘어서 저작자인 B씨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라며 "따라서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2심의 판단은 달랐다.

1심 재판부가 저작권법 제136조 2항 1호 위반죄, 즉 저작인격권 침해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별도로 피해자의 명예훼손이 인정돼야 한다고 본 반면, 2심 재판부는 실제 명예가 훼손돼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먼저 재판부는 "저작권법 제136조 2항 1호에서 규정한 저작권법위반죄는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저작인격권 침해행위만 있으면 성립하고 그로 인해 저작자의 명예가 실제로 훼손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A씨가 무단으로 퍼 나른 글에 달린 칭찬글과 그에 대한 A씨의 답글을 언급하며 "B씨에게는 기계항공공학 박사로서의 식견과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글을 쓴다는 사회적 평판이 있다 할 것이고, A씨가 무단으로 B씨의 글을 자신의 저작물인 것처럼 게시하고 좋은 글을 쓴다는 사회적 평판을 받게 됨으로 인해, B씨는 표절 의혹을 받고 이를 해명해야 하는 등 B씨에 대한 사회적 평판이 훼손될 위험에 처하게 됐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재판부는 "A씨가 무단으로 페이스북에 B씨의 게시글과 연재글 등 저작물을 그 내용을 부가하거나 구성을 변경해 마치 자신의 저작물인 것처럼 게시한 행위는 B씨의 저작물에 대한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 등 저작인격권 침해행위에 해당하고, 이러한 A씨의 저작인격권 침해행위로 인해 저작자인 B씨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보이므로 저작권법 제136조 2항 1호에서 정한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저작권법위반죄는 성립한다 할 것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결국 2심 재판부는 A씨의 3가지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1·2심 재판부는 A씨가 영리를 목적으로 범행을 저지르지는 않았던 점, 사건이 불거진 뒤 A씨가 사과문을 게시하고 기존 게시물들을 삭제한 뒤 페이스북 계정을 탈퇴하는 등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한 점, B씨를 위해 1000만원을 공탁한 점 등을 유리한 양형 사유로 참작했다.

대법원도 이 같은 2심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A씨)이 피해자(B씨)의 게시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옮기면서 글의 내용을 더하거나 변경한 내용 중에는 피고인의 주관에 따른 사회비판적인 인식 등이 드러나거나 잘못된 상식에 기한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의 게시글을 읽은 사람이 피해자에게 피고인의 게시글과 피해자의 글이 너무 비슷하다는 취지의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성명표시권을 침해해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들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마치 피고인의 글처럼 인식될 수 있어, 피해자로서는 피해자가 해당 글의 진정한 저작자가 맞는지 나아가 기존에 피해자가 페이스북 게시글 창작 등을 통해 얻은 사회적 평판이 과연 정당하게 형성된 것인지 의심의 대상이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편 피고인이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해 페이스북에 게시한 피해자의 글로 인해, 그 저작자를 피해자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피고인의 게시글에 나타난 피고인의 주관이나 오류가 원래부터 피해자 글에 존재했던 것으로 오해될 수 있고, 이에 따라 저작자인 피해자의 전문성이나 식견 등에 대한 신망이 저하될 위험도 없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재판부는 "결국 피고인은 피해자의 저작인격권인 성명표시권과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해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될 위험이 있는 상태를 야기함으로써 저작자인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저작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인해 저작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될 위험이 있으면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저작권법위반죄가 성립하고, 저작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할 위험이 있는지는 객관적인 제반 사정에 비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한 첫 대법원 판결"이라고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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