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버드 공동 사용? AC밀란-인터 밀란도 헤어진다는데…
(엑스포츠뉴스 김정현 기자) 수원월드컵경기장(빅버드)을 두 구단이 사용하는 방안이 다시 점화됐다. 최순호 수원FC 단장의 입에서 수원월드컵경기장 공동 사용 논쟁이 불거졌다.
이를 두고 축구계에선 좋은 구장을 함께 사용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한다는 반응도 내비치고 있으나, 유럽에서도 공동 연고지를 쓰는 팀들끼리 서로 독자적인 구장을 갖고 경영하는 흐름과 맞지 않는 발상이라는 지적도 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수원종합운동장을 사용 중인 수원FC는 노후한 시설과 열악한 관람 환경 등으로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1971년 완공해 올해로 52주년을 맞은 주 경기장은 현재 1만1808명의 좌석을 갖추고 있고 최대 15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종합운동장이다.
경기장 내 육상 트랙이 있어 축구 경기를 관람하기에 썩 좋은 환경은 아니다. 다만 홈 서포터즈들이 앉는 가변 석을 북측 골대 뒤편에 놔 더 좋은 시야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수원종합운동장을 찾는 원정 팬들은 꼼짝 없이 선수들이 작게 보이는 시야로 선수들을 응원해야 했다. 원정팀 관중석에는 휠체어 관람석도 없다.
화장실에는 '쪼그려 앉는' 변기가 여전히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등 관람객을 위한 경기장 내부 편의시설도 열악하다. 볼 보이 대기실, 원정팀 라커룸 등 각종 경기 운영시설 역시 '아시아 빅리그'의 1부 리그라고 보기 힘든 수준이다.
수원종합운동장을 여자축구 수원FC 위민과 공유하면서 수원FC는 훈련 장소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수원FC는 수원의 홈구장인 수원월드컵경기장을 '한 지붕 두 가족'처럼 쓰는 대안을 타진한다. 절차상 걸림돌은 없다. 수원월드컵경기장 운영 주체는 수원 구단이 아닌, 경기수원월드컵경기장 관리재단이다. 재단 지분은 경기도가 60%, 수원시가 40%를 갖고 있다. 재단 규정에 따르면 누구나 재단에 대관 신청을 할 수 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은 매년 재단으로부터 대여해 사용하는 방식인 가운데, 1년 대관료는 10억원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상황에서 수원FC는 다음 시즌부터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K리그1 수원FC 홈 경기와 K리그2 수원 홈 경기를 병행할 수 있도록 본격적인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장 한국프로축구연맹이 2024시즌 일정을 발표하는 내년 1월 하순이 되기 전 홈구장 변경 승인을 완료해야 한다.
경기도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과 수원 구단, 한국프로축구연맹 등을 비롯해 양 팀 팬과 각종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수원FC는 해가 지나기 전 관련 절차에 착수한다는 입장이다.
수원FC의 빅버드 사용 방안은 지난 1월 최 단장 취임 때도 불거졌던 사안이다 이재준 수원시장이 “홈구장으로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수원 삼성과 함께 사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수원 역시 재단을 통해 경기장을 대여하는 상황이라 수원FC의 K리그1 경기와 수원의 K리그2 경기가 겹치지 않는다면 수원FC의 대관에는 물리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구단이 홈 경기장 변경을 신청한다면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실사를 통해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수원FC가 수원종합운동장을 떠나는 건 오히려 불리한 측면도 있다. 수원종합운동장의 입지 자체가 수원월드컵경기장보다 좋다는 점이 첫 번째다.
수원종합운동장은 특히 KT 위즈 야구단 수혜를 어느 정도 보고 있다. 야구 경기가 하절기 매주 3일 정도 열리기 때문에 유동 인구를 고려해 야구장과 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 주변으로 총 7개의 버스 정류장이 있다. 4개에 불과한 버스 정류장을 가진 수원월드컵경기장과는 다르다.
수원FC 팬덤을 고려해도 수원종합운동장이 안성맞춤이라는 평가 역시 나온다. 수원FC가 2023시즌 관중 증가를 이뤘으나 홈 19경기 기준 평균 관중이 5188명이다. 수원 평균 관중 기록인 1만1798명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4만3168석이 있는 수원월드컵경기장에 평균 관중 5000명 대의 수원FC가 경기를 치른다면 경기장에 남는 썰렁함이 클 수밖에 없다. 오히려 수원종합운동장에서 보다 응집력 있는 응원 분위기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마케팅 측면에서도 여러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홈구장을 함께 사용하는 곳으로 이탈리아의 두 명문, AC밀란과 인터 밀란이 꼽히지만 두 구단 역시 최근 각자도생을 꿈꾸는 중이다. 지난 2021년 12월만 해도 양 구단은 새로운 구장 프로젝트인 '더 카테드랄'을 밀라노 시 의회에 함께 제출했다.
하지만 AC밀란에 새로운 미국 자본인 레드버드가 구단주로 오면서 인터 밀란과의 관계가 틀어졌고 중국 쑤닝 그룹이 보유한 인터 밀란이 오히려 산 시로를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지난 2월 발표했다. 관계가 틀어지면 같은 구장조차 쓰지 않는 사례가 AC밀란-인터 밀란에서도 드러났다.
이에 앞서 토리노공설운동장을 함께 쓰던 유벤투스와 토리노 구단도 결국 갈라섰다. 유벤투스가 독자적인 홈구장을 지어 떠났다. 마케팅 측면에서 서로의 홈구장을 갖는 것이 윈윈이라는 판단 아래서다. 뮌헨 알리안츠 아레나도 2006년 완공 땐 바이에른 뮌헨, TSV1860 뮌헨이 같이 썼으나 지금은 바이에른 뮌헨만 쓴다. 1860 뮌헨이 하부리그를 전전하면서 오히려 7만을 수용하는 거대한 구장이 임대나 관중 수용에서 버겁게 느껴진 게 컸다.
수원과 수원FC의 관계는 좋고 나쁘고 할 것은 없지만, 충분한 협의와 수원의 협조가 필요하다.
하지만 수원 측의 입장은 단호하다. 수원 관계자는 "수원FC 구단으로부터 공식 제안이 온 적도 없고, 논의한 바도 없다"며 "스폰서, 팬덤, 구단 정체성을 고려할 때 빅버드 공유는 수원의 생존권과도 직결된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일단 최 단장도 갑자기 불거진 논란에 주춤하는 상태다. 그는 21일 K리그 40주년 기념 전시회 'K리그 : 더 유니버스' 시사회 후 인터뷰에서 수원월드컵경기장 사용과 관련된 질문에 "그 문제는 지금부터는 얘기 안 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이야기를 많이 했다. 우연히 어떤 기자분이 연락이 와서 그 이야기를 질문했고 내가 생각했던 걸 그대로 이야기했다. 그게 많은 관심이 있는지 몰랐다. 내가 인터뷰한 언론사가 10개 정도 된다. 이 정도에서 더 이상 얘기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라고 다시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축구수도를 자부하는 수원에 있는 두 구단이 같은 경기장을 쓰는 논의는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결정권은 수원시가 쥐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기도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 대주주는 경기도지만 수원시가 특정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비치면 관철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수원FC가 수원월드컵경기장으로 간다고 해서 득을 볼지는 미지수다. 수원FC 팬들도 수원종합운동장이 '캐슬 파크'라는 애칭까지 갖고 있는 등 수원FC 홈구장 이미지가 큰데 빅버드로 가는 것에 대해 물음표를 보내는 중이다.
사진=엑스포츠뉴스DB, 한국프로축구연맹, 연합뉴스
김정현 기자 sbjhk8031@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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