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으로 엄마를 잃은 딸은 어떻게 겨울을 지날까

김은미 2023. 12. 22.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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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작가의 <겨울을 지나가다> 를 읽고

[김은미 기자]

▲ 책표지 '겨울을 지나가다' 책표지
ⓒ 작가정신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조해진은, 이후 신동엽문학상과 이효석문학상, 무영문학상, 통영문학상, 젊은작가상 등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따뜻하고 섬세한 필력으로 인정받은 작가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조해진의 소설집을 읽고 이야기를 짓고 문장을 쓰는 일이 때로 슬픈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서평을 남기기도 했다.

이달 출간된 소설 <겨울을 지나가다>를 읽은 에세이스트 김혼비는, '조해진의 소설을 읽는 것은 언젠가 크게 발을 헛디뎌 무너져 내렸을 때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힘을 비축해두는 일이고, 적대적인 얼굴을 하고 불쑥 나타난 타인 앞에 잠시 멈춰 그가 나쁜 건지 아픈 건지를 헤아려볼 수 있는 숨을 준비해두는 일이고,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 할 이 시대의 가장 약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들어두는 일'이라고 평했다.

나는 과거 우연히 방문했던 동네 책방에서 조해진 작가의 초기작 <한없이 멋진 꿈에>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바로 구입했던 적이 있다. 조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책 <단순한 진심> 북토크에서 직접 만나 그 이야기를 건넸더니 작가가 매우 쑥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작가의 모습은, 자신의 글처럼 단정하고 사려 깊고 따뜻했다.

슬픔보다는 희망으로 읽히는 

<겨울을 지나가다>는 책 띠지처럼 "작가 조해진이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읽힌다. 2015년 <여름을 지나가다>이후 8년 만에, 여름을 지나 겨울의 한복판에서 '깊은 애도'의 마음을 품고 독자들과 만났다. '엄마의 영원한 부재에 대한 공포이자 엄마가 떠난 뒤부터 반복될 내 외로움과 죄책감에 대한 공포(32쪽)'라는 두 겹의 공포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정연의 이야기가 깊은 슬픔으로 다가오기보다는 희망으로 읽힌다. 그 이유가 궁금한 독자들은 기꺼이 이 책을 펼칠 것이다.

소설 속 '정연'은 췌장암으로 엄마를 잃은 뒤 엄마에 대한 애도와 후회 사이에서 서성인다. 엄마가 기르던 강아지 정미를 키우며, 엄마가 살던 집에 머물다가, 엄마가 운영하던 식당에서 칼국수를 만들기 시작한 정연. 식당 창문에 적혀 있던 메모를 발견하고 엄마가 생전에 목공소에 정미의 집 제작을 의뢰했던 사실을 알게 된 정연은, 엄마 식당의 손님이기도 했던 '숨'이라는 이름의 목공소에서 만난 영준에게서 또 다른 형태의 위로를 받는다.

정미 식당의 칼국수는 '단순히 맛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고, 담백한 포만감이 있었다고, 먹고 나면 몸 안에 건강하게 더운 기운이 돌곤 했다고도.... (67쪽)'라고 엄마의 칼국수 맛을 예찬하는 영준 또한 지워지지 않는 아픔과 상처를 품고 있다는 걸 정연은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은 상실 이후의 시간을 함께 보듬어 나간다.

또한 엄마가 생전에 담근 김치가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정연의 동생 미연은 충격을 받고, 김치를 먹을 때면 씹는 속도를 줄이고 공들여 아주 천천히 씹으면서 미연만의 방식으로 엄마에 대한 애도를 표한다. 사소한 듯 보이는 그 장면이 독자들의 마음을 오랫동안 행간에 머물게 한다. 그리고 상실 뒤의 삶이든, 일상의 삶이든, 삶을 유지하고 버티게 해주는 것은 어떤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상실을 받아들일 준비

정연은 엄마 동네 주민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던 '란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자른다. 미용실 손님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식재료를 사고팔며 친밀한 만남을 이어갔던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보며, 걱정했던 것만큼 엄마의 삶이 외롭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에 정연은 안도한다. 그리고 정미 식당에서 칼국수와 곁들여 손님들에게 내어줄 겉절이를 담그기 위해 알배추 다섯 통을 주문하는 정연의 모습에서, 정연이 상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음을 엿볼 수 있어 독자들 또한 안도하게 한다.

조해진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이 어디에서건, 어느 날이건 독자들에게 괜찮은 '동행'이 되어주기를 희망한다고 이야기한다. 사려 깊은 마음가짐으로 써 내려간 이 소설은, "이토록 작은 사실들을 그러쥐고 작가는 그리고 우리는 다시 허름한 사랑을 시작합니다"라는 박준 작가의 추천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슬픔에서 길어낸 것이 아픔이나 고통이 아닌 결국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로 하여금 다시, '허름한 사랑'을 시작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슬픔이 만들어지는 계절을 지나가면서,
슬픔으로 짜여졌지만 정작 그 슬픔이 결핍된 옷을 입은 채
그리고 그 결핍이 이번 슬픔의 필연적인 정체성이란 걸 가까스로
깨달으며....(책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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