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뭔가를 사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해

김은경 2023. 12. 22.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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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차 라이프스타일 잡지 편집자 박찬용의 책 <좋은 물건 고르는 법> 을 읽고

[김은경 기자]

한 해를 마무리하며 집 안 청소를 했다. 잡다한 주변이 문득 눈에 거슬려 시작한 일인데 결과가 영 시원찮다. 오후 5시쯤 시작해 새벽 1시가 넘어야 끝났는데 물론 청소하기 전보다는 낫지만 물건이 잡다하게 많다는 느낌은 여전하다. 분명 정리한다고 했는데 왜 여전히 거기 있는 거냐, 너.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책으로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일본의 이나가키 에미코 작가가 자신의 오래된 맨션에서 한국의 한 시사주간지와 인터뷰한 기사를 읽은 적 있다.

인터뷰 사진을 위해 침대에 꼿꼿이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 퍽 인상적이었는데, 그녀는 퇴사한 뒤 도쿄의 10평 원룸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냉장고나 세탁기 등의 가전제품도 두지 않고 최소한의 물건으로. 

침대, 6단 서랍장, 무쇠냄비, 몇 권의 책이 든 장식장 그리고 전등… 인터뷰 공간인 그녀의 집 구석구석을 찍은 몇 컷의 사진만으로도 살림살이를 꼽아볼 수 있을 만큼 단출하다.

그의 미니멀 라이프와 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기사를 읽으며 먹고 사는 방식, 소유와 공유, 편리와 불편, 소비와 풍요로움과 환경과 물건에 관해 생각했고 자연히 나의 '잘 살고 싶은 삶'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물건이 없으니까 오히려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을 친한 후배에게 전하며 멋있다, 따라 하고 싶다, 나도 가능하겠냐며 온갖 감탄과 감동을 쏟아냈다. 그런데 그런 대화 끝에 내가 한 말은 좀 어처구니없었다.

"좀 뜬금없지만… 저 작가 침대가 탐나." 

헤드보드가 없는 아주 단순한 디자인의 침대였는데 약간 기울기가 있는 프레임 위로 엄청 두꺼워 말도 못 하게 푹신해 보이는 매트리스, 그리고 완벽하게 몸을 감싸줄 것이 분명해 보이는 포근한 침구까지, 그야말로 내 눈에는 꿈의 침대처럼 보였다.

헌 옷으로 앞치마를 만들고 도시가스도 연결하지 않고 휴대용 버너를 사용해 음식을 하고 '개인 차원의 탈원전'을 위해 전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그녀의 생활방식에 존경과 동경이 절로 일어나 잘사는 것보다 '잘 살고' 싶다며 '나도 미니멀리스트 할래!' 외친 마당에 또 하나의 물건을 욕망하는 나라니.    
 
▲ 박찬용, 『좋은 물건 고르는 법』(2023, 유유) 현명한 소비생활을 위하여 『좋은 물건 고르는 법』
ⓒ 김은경
 
늘상 딱 필요한 몇 가지 물건만으로 이루어진 깔끔한 공간을 꿈꾸지만 현실은 늘 잡다한 물건에 둘러싸여 산다. 아마 치워도, 치워도 주변이 어수선하고 복잡하다는 사람이라면 맨날 하는 고민일 것도 같다.

그래서 늘 물건을 줄이고 싶은 마음과 내게 딱 맞는 좋은 물건 하나를 위해 또 다른 물건을 사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혼란한 상태인 거다. 내가 가진 물건을 통해 드러날 나의 취향과 색깔을 분명히 하고 싶기도 하고, 혹은 다른 존재로 오해받기 싫은 마음도 조금 있는 것 같다.  

15년차 라이프스타일 잡지 편집자가 '현명한 소비생활을 위하여' 풀어놓은 <좋은 물건 고르는 법>은 그래서 궁금했다. 박찬용 피처 디렉터라니, 온갖 좋은 물건을 다 알고 있을 것 같은 저자다.

"무엇이 나에게 제대로 된 것인지 고르지 못한다면 평생 남의 선택에 휘둘리게 된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도 "무엇이 나에게 제대로 된 것인지" 고를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나는 옷이나 물건을 고르는 방법을 통해서도 삶을 고르거나 세상을 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복잡하게 느낄 수도 있으나 옷을 비롯한 자신의 물건을 고르고 써 보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다." - <좋은 물건 고르는 법> 28쪽

후디, 백팩, 스니커즈, 야구모자, 의자… 이 책에서 다룬 열한 가지 물건과 관련한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물건을 고르고 쓰고 향유할 때 무엇에 가치를 두는 사람일까, 새삼 짚어보았다. 가격, 품질, 브랜드 스토리, 디자인 등등…
그 중 나는 무엇에 가치를 둘지 고민하는 것이 곧 내 "삶을 고르거나 세상을 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과정인 것 같다. 그러다보면 "난 춥지도 덥지도 않게 적당한 밸런스 느낌을 알지"('후디에 반바지' 중) 하는 가수 이효리의 노랫말처럼 그런 '나만의 밸런스 느낌'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 물건과 나 사이에는 적지 않은 시간과 나름의 추억이 쌓였고, 손에 잡히진 않아도 어딘가에 있는 그 기억이 그 물건을 볼 때면 자연히 떠오른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물건은 내 물건이다." - <좋은 물건 고르는 법> 93쪽

내 손때가 묻은, 내 생활에 길들어 반들반들해진 물건이 멋스럽고 우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좋은 물건으로 고르고 싶은 욕심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적지 않은 시간과 나름의 추억"이 쌓인 좋은 '내 물건'을 향한 욕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늘 궁금해할, 현명한 소비생활을 위한 <좋은 물건 고르는 법>을 소개한다.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갖춰 둘 것은 갖춰두고 싶은 이 연말연시에, 혹은 '늘상' 사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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