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 간직한 흉측한 괴물… '경성크리처' 넷플릭스 구원투수 될까
흉칙하게 생긴 괴물의 목에 괴물로 변하기 전 인간이었을 때 소중히 여겼던 목걸이가 걸려 있다. 일본군이 쏜 총에 맞아 고통을 호소하는 그의 비명이 처연하고 구슬프게 들린다.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을 아직 잃지 않은 괴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괴이한 모습의 생명체를 과연 괴물이라 할 수 있을까.
22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경성크리처’에 나오는 크리처(괴물)의 모습이다. 1945년 일제 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한 ‘경성크리처’는 시대극과 크리처물이 결합된 장르의 작품이다. 해방 직전 생존이 전부였던 두 청춘이 일본 제국주의의 탐욕으로 탄생한 괴물과 맞서는 과정을 그렸다. 크리처는 납치된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한 일제의 마루타 생체 실험으로 탄생한 존재다. 조선에 대한 일제의 탄압과 수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연출을 맡은 정동윤 감독은 서울 용산의 한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참고하긴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저희만의 크리처를 만들어냈다”며 “우리 크리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슬픈 정서가 녹아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크리처에 일제강점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빼앗긴 조선인의 한(恨)을 녹인 점이 기존의 한국형 크리처와의 차별점이라는 뜻이다.
정 감독은 “작가와 함께 크리처의 기원이 되는 기생충부터 거슬러 올라가 크리처의 히스토리를 완성했다”며 “크리처가 품은 나름의 사연을 외형과 행동, 표정에서도 최대한 드러나게 하기 위해 시각특수효과(VFX)팀과 함께 많이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은 1945년 경성, 미군의 도쿄 대공습 이후 일본의 조선인 탄압이 더욱 거세지던 때를 배경으로 한다. 항일 전단을 돌리던 조선인 청년들은 체포돼 일본군으로 징집되거나 갖은 고문을 당한다. 힘없는 조선인들은 전세가 기울어져 더욱 독기가 오른 일본의 만행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그런 와중에도 경성 최고의 전당포 금옥당의 대주인 장태상(박서준)의 삶은 화려하기만 하다. 그는 “나라님도 뺏긴 나라를 내가 어떻게 찾느냐”며 독립운동에 전혀 관심이 없다. 오로지 먹고살 궁리에만 몰두하며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그런 장태상의 안온한 삶도 어두운 시대의 풍파 앞에서 위태로워진다. 경무국 실세 이시카와(김도현)가 실종된 자신의 애첩인 기생 명자(지우)를 찾아내지 못하면 모든 걸 빼앗겠다고 협박하면서다. 이에 장태상은 10년 전 실종된 어머니를 찾아 만주에서 경성으로 건너온 토두꾼(실종자들을 찾는 사람) 윤채옥(한소희)과 그의 부친 윤중원(조한철)의 손을 잡게 된다. 명자의 행방을 쫓다 일본 고위직들만 다닌다는 군 관할의 옹성병원에 잠입하게 되고, 그곳 지하에서 일본군이 탄생시킨 괴물과 맞닥뜨리고, 처절한 사투를 벌이게 된다.
시즌1에만 30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대작 드라마답게 크리처를 포함해 화려한 경성 거리, 총과 칼을 넘나드는 다양한 액션신 등 볼거리가 쏠쏠하다. 화려함과 웅장함을 표현하기 위해 드라마의 주 무대인 금옥당과 월광바는 4500평 부지에 오픈 세트를 만들었다.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정동윤 감독,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강은경 작가의 만남으로 제작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 박서준, 한소희 등 톱스타들이 캐스팅되며 기대감이 더욱 높아졌다.
'경성크리처'는 괴수물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꽤 무거운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시대극이다. 전쟁병기로 사용하기 위해 생체실험을 통해 조선인을 흉칙한 괴물로 만들어내는 일제의 잔혹함에 진저리를 치게 된다.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괴물은 일본군과 조선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살상을 한다.
일제강점기를 그린 작품들이 대개 그렇듯, '경성크리처'에도 엄혹한 시대를 각자의 소신과 처신으로 버텨내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자신의 안위에만 골몰하는 냉소적인 태상, 단 한명의 동포라도 구하려 애쓰는 채옥, 일본에 부역해 동포를 생체실험하는 조선인 병원장, 고문에 굴복해 동료를 배신하는 독립운동가 등이다. 작품은 결국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향해 달려간다. 인간성을 간직한 괴물, 그런 괴물을 만든 인간. 누가 진짜 괴물인가.
물론 단점도 있다. 크리처물임에도 크리처가 늦게 등장하는 탓에 극의 전개가 다소 늘어지는 느낌이 든다. 장태상과 윤채옥의 운명적 첫 만남에서 어디선가 익숙하게 보던 장면이 연상되는 등 스토리가 예측 가능하게 전개되는 점 또한 아쉽다.
총 10부작인 ‘경성크리처’는 22일 파트1을 통해 7부를 먼저 공개하고, 다음 달 5일에 파트2로 나머지 3부를 공개할 예정이다. 이 작품은 올해 넷플릭스의 마지막 오리지널 시리즈로, 넷플릭스가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올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지난 3월 공개한 ‘더 글로리’를 제외하곤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위트홈’ 시즌2, ‘D.P.’ 시즌 2가 전작의 호평과 화제성을 이어가지 못했고, ‘도적: 칼의 소리’와 ‘택배기사’ 등 혹평을 받은 작품도 있었다. '경성크리처'가 이같은 부진을 털어낼 넷플릭스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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