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은 '오판'하고 있다

이충재 2023. 12. 22.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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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비대위원장' 최후의 카드 꺼낸 대통령... 대통령에게 쓴소리 할 생각 없는 한동훈

[이충재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방혁신위원회 3차 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왼쪽은 김관진 국방혁신위 부위원장.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불출마 대신 대표직 사퇴를 선택한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에게 격노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김 대표를 '바지사장'으로 두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앉혀 실권을 행사토록 하는 총선 구상이 엉클어져서일 것이다. 윤 대통령으로선 총선 승리를 향한 첫 스텝부터 꼬인 셈이다.

예기치 않는 난관에 부닥친 윤 대통령이 비상책으로 꺼낸 게 '한동훈 비대위원장' 카드다. 결심이 서는 것과 동시에 김기현 사퇴 후 난립하던 후보군은 일거에 한동훈 추대론으로 정리됐다. 당 전체가 원해서라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 요 며칠간 요식적인 절차가 진행됐고, 한 장관은 마침내 비대위원장을 '수락'했다. 얼떨결의 조기등판이다.  

윤 대통령이 총선을 자신의 얼굴로 치르려면 공천권 장악이 우선이다. 얼마 전 공개된 대선후보 시절 통화 녹취록에서 윤 대통령이 "여차하면 뽀개버리겠다"고 말한 대상은 국민의힘 당뿐 아니라 의원들이다. 기득권에 찌든 이들을 도려내고 새 인물을 꽂으면 총선 승리는 따논 당상이라고 윤 대통령은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을 실행에 옮기기에는 가장 믿을만한 한동훈을 앉히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점점 죄어오는 윤 대통령 부부의 '사법 리스크'도 그에겐 골치거리다. 권력이 약해지면 굽신거리던 이들도 등을 돌리는게 정치의 비정함이다. 박근혜 탄핵 발의안에 수십 명의 여당 의원이 찬성했던 장면을 윤 대통령은 떠올렸을지 모른다. 이를 막아줄 사람은 검사 시절 형님, 동생하며 동고동락한 한동훈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김건희 호위무사' 자처한 한동훈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9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하기 위해 국회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남소연
 
윤 대통령의 이런 기대를 한 전 장관은 저버리지 않았다.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 같은 기자회견에서 그는 김건희 특검법은 '악법',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은 '몰카 공작'이라고 규정했다. 대놓고 김 여사의 호위무사를 자처한 셈이다. 여당 대표 될 사람이 여론은 무시하고 노골적으로 대통령 편을 든 것이다.

당내에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찬성한 이들은 "대통령과 가깝기 때문에 더 쓴소리를 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한 전 장관의 발언은 이런 기대가 부질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수십 년을 상하관계에서 살아온 한동훈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대통령에게 한 몸이 되겠다는 사람에게 직언을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윤 대통령이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바라는 것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대결 구도일 것이다. 선거 국면을 '범죄자'와 '정의로운 검사' 프레임으로 만들면 정권심판론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행동대장을 시켜 반대편의 적장을 상대케 하고 자신은 빠지는 전략이다. 그러나 중대한 오류가 있다. 국민의 시선은 윤 대통령을 향해 있지 한동훈이나 이재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은 윤 대통령이 달라지라는 거였다. 퇴행적 국정운영 기조를 바꾸고 오만과 독선적 태도에서 벗어나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자신은 변화하지 않고 대리자를 내세워 바뀌는 시늉만 하고 있다. 이를 모를 거라고 생각한다면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것이다.

한 전 장관도 착각에 빠져있다. 윤 대통령을 뒷배로, 하던대로 민주당만 공격하면 지지를 받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치 초짜의 무능이 드러나면 당내에서 발톱을 세우고 달려드는 건 시간문제다. 비슷한 예가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다. 한 전 장관과 같은 검사 출신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그는 한때 여론조사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혔다. 하지만 금세 밑천이 드러나 21대 총선에서 패배한 뒤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윤 대통령과 한 전 장관의 현재 모습은 모든 것을 건 도박사를 보는 듯하다. 총선에서 이기면 '대박'이고 지면 파멸을 불사하는 형국이다. 구속 아니면 무혐의라는 일도양단식의 검사 기질이 도드라진다. 나라의 미래가 달린 선거를 자신들의 운을 시험하는 기회로 삼는게 가당키나 한가. 100여 일 후면 이들의 운명이 판가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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