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2023-자동차] 전기차 안팔리고 IRA 덮쳤어도… '자동차 강국' 우뚝
'역대급 실적' 현대차·기아, '경영 정상화' 서두는 KG모빌리티
유럽발 IRA 확산… 내년에도 위기 딛고 정면돌파
자동차업계에서의 2023년은 마치 3년에 걸쳐 일어날 법한 변화가 1년 안에 불어닥친 듯 다사다난한 해였다. 그렇지만 매서운 혹한기 속에서도 꽃을 활짝 만개시킨 기적적인 해 이기도 했다. 지난해 말 시작된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경기불황, 국내 전기차 판매 부진에도 보란듯 사상 최대 실적과 수출 기록을 써내면서다. 기존 미국, 유럽 국가에 따라붙던 '자동차 강국' 타이틀은 올해를 기점으로 한국에도 따라붙는 수식어로 자리매김했다.
▲ "안 할 수도 없고"… 믿었던 전기차의 배신
올해 자동차업계에서 가장 뜨거웠던 화두를 꼽으라면 단연 전기차의 '배신'이다. 빨라진 보급 속도에 국내 시장에 진출한 모든 제조사들이 앞다퉈 전기차를 출시했지만, 너무도 빨리 혹한기가 들이닥쳤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상반기면 동났을 전기차 보조금은 올해 정부의 전기차 사업이 종료될 때까지 60% 소진되는데 그쳤다. 올해 전기 승용차 보급대수는 11월 기준 10만 4854대로, 당초 정부가 올해 보급 목표로 내걸었던 21만 5000대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정부가 지난 9월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한시적으로 확대해봤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제조사 역시도 쌓인 재고를 털어내기 위해 연말 파격 할인을 내걸었지만, 효과는 소폭에 그쳤다.
전기차 판매 부진이 이어지면서 하이브리드차는 반사이익을 크게 거뒀다. 올해 1~11월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25만7087대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53.4% 늘었다. 올해 판매된 신차 중 하이브리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17.5%로 전기차(9.2%)의 두 배에 달한다.
전세계 자동차 제조사들이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가야할 길이지만, 업계에서는 전기차 관망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제조사들도 주요 전기차 생산을 중단·감산하거나 할인에 나서고 있어 당분간 시장 분위기를 살필 것으로 보인다.
▲ 악재 뚫고 '최다 판매·최대 실적' 경신… 현대차·기아의 놀라운 성장
지난해 연간 최대 실적을 달성했던 현대차·기아가 올해 가장 많이 맞닥뜨린 단어는 아마 '위기'였을 것이다. 지난해 말 시행된 IRA로 미국에선 보조금 한 푼 없이 전기차를 팔아야했고, 글로벌 경기는 끝을 모르고 상황이 악화됐다. 코로나19 당시 반도체 수급난으로 쌓였던 대기 물량을 올해 털어내고 나면 급격한 피크아웃(고점 후 하락세)이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도 이어졌다.
하지만 현대차를 둘러싼 위기는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돌아보면 기회가 된 모양새다. 지난해 발빠르게 IRA에 대응하지 못해 올 초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이 하락했지만, IRA 예외 조항인 리스 판매를 빠르게 늘리면서 결국 전기차 판매량을 지난해보다 확대해냈다. 보조금을 적용받은 테슬라 등 미국 업체의 성장세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추락을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선방했다는 평가다.
이 가운데 미국 내 연간 판매 최다 기록을 경신하면서 현대차는 글로벌 브랜드력이 높아졌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하게 됐다. 전기차에선 어려움을 겪었더라도 높아진 브랜드력을 바탕으로 내연기관 차량이 미국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린 것이다. 올해 1~11월 현대차·기아의 미국 시장 누적 판매량은 151만579대로, 미국 내 종전 최다 판매 기록인 2021년(148만9118대)을 뛰어 넘었다.
북미 시장을 포함해 유럽, 인도 등에서 판매가 늘면서 올해 현대차·기아는 11년 만에 나란히 '300억 달러 수출탑'과 '200억 달러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통계를 종합해보면,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1~10월 각각 94만 5062대, 86만 7136대를 수출했다. 합산 수출 대수는 총 181만 2198대로, 올해 200만대를 가뿐히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위기를 딛고 역대 판매기록을 갈아치운 현대차·기아는 올해 연간 합산 영업이익 27조원을 바라보고 있다. 현대차는 사상 최초 연간 영업익 15조, 기아는 10조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양사의 합산 영업이익이 20조를 넘는건 이번이 처음인데, 이미 3분기 만에 20조원을 뛰어넘었다.
▲ 쌍용차 지워낸 한 해… KG모빌리티, 경영정상화 '잰걸음'
구조조정과 노사갈등, 법정관리가 이어지며 퇴색된 쌍용차의 명성을 살리기 위해 지난해 KG그룹이 선택한 묘수는 '사명 변경'이었다. 이미 과거에 갇혀버린 명성을 그리워하기보다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쌍용차는 'KG모빌리티'로 2023년을 시작했다.
시작은 쉽지 않았다. 전국 대리점부터 판매하는 차량까지 쌍용차의 흔적을 지워내야했기 때문이다. 오랜기간 쌍용차를 지켜봤던 소비자들도 'KG모빌리티'라는 생소한 이름에 혼란스러워했다. 우려가 이어지자 곽재선 KG모빌리티 회장은 쌍용차의 흔적을 단번에 지워내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변경시키겠다는 '페이드아웃' 전략을 내걸기도 했다.
하지만 곽 회장의 전략과는 달리 KG모빌리티는 올해 안에 쌍용차의 흔적을 모두 지워내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숨가쁘게 달렸다. 올 3월 진행된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아직 출시 시기 조차 확정되지 않은 개발 단계 모델의 실물을 무려 3대나 선보이면서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KG모빌리티의 부스는 서울모빌리티쇼에서 가장 주목받은 부스로 평가받았다.
이후 KG모빌리티는 약속대로 올 하반기 전기차 모델 '토레스 EVX'를 정식 출시하며 소비자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올해 국내 전기차 시장이 긍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출시 시기를 내년으로 늦추지 않았단 점은 KG모빌리티의 뚝심이 잘 드러나는 행보다. 4000만원대의 저렴한 가격은 국내 전기차 시장에 새 국면을 가져왔고, 인도가 시작된 지난 11월엔 KG모빌리티의 국내 전체 판매량 중 가장 많이 팔린 모델로 올라섰다.
과거 폐업위기에 내몰려 꿈도 못꿨던 해외 시장에도 발빠르게 눈을 돌리면서 수출 실적도 날개를 달았다. KG모빌리티의 올해(1~11월) 수출량은4만9802대로, 창립 이래 올해 첫 10억달러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 유럽발 IRA 확산… 내년에도 위기 딛고 정면돌파
올해 한파 속에서도 꽃을 피워내며 한국의 제조업 위상을 드높였지만, 내년 역시도 녹록지 않다. 미국 IRA로 시작된 전세계 각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점점 심화되고 있어서다. 해외 판매 실적이 나날이 높아지는 우리 기업들로서는 자칫 중요한 시기에 발이 묶일 수 있는 위기다.
미국에 이어 내년에는 유럽에서 위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첫 시작은 프랑스다. 프랑스 정부는 이른바 '프랑스판 IRA'로 불리는 녹색산업법을 내년 1월부터 시행한다. 개편안에 따르면 한국, 중국, 일본 등 프랑스와 거리가 먼 국가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대해서는 낮은 보조금이 지원된다.
이에 따라 프랑스 정부가 발표한 보조금 개편 적용 대상 차량에는 비(非)유럽산 전기차가 대거 제외됐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완성차 업체들의 차종이 보조금 적용 명단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한국 업체는 현대차 코나만 전기차 보조금을 계속 받을 수 있게 됐다.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기아의 니로 EV, 쏘울 EV는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됐다.
프랑스에 이어 독일 정부도 예고 없이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고 나섰다. 독일 정부는 지난 17일(현지시간)부터 전기차 보조금 신청을 받지 않고 있다. 당초 내년 말까지 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이었으나 1년 가량 빨리 중단된 것이다.
국내 기업 입장에선 프랑스 시장 비중이 높지 않아 타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프랑스, 독일을 시작으로 유럽 주요 국가는 물론 EU판 IRA로 확산될 수 있어서다. 유럽은 미국과 국내 시장에 이어 현대차·기아의 3번째로 비중이 높은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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