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는 보수 인권은 진보…한동훈, 40% 무당층에 통할까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된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21일 이임 회견에서 “사심 없이 추진했던 정책들을 국회에서 더 잘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개월여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추진했던 정책들을 ‘정치인 한동훈’으로서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런 ‘한동훈표 정책’들이 내년 4월 총선에서 40%에 육박하는 무당층을 흡수하고, 60%에 달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부정평가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지가 관건이다. 한 전 장관이 “공공선 추구라는 큰 의미에서 정치는 20년째 하고 있다”고 밝혔듯 그의 정책들도 보수와 진보 색채를 모두 띠고 있어서다.
세월호, 제주4·3, 인혁당 배상 국가 책임 인정
전문가들도 한 전 장관에 대해 “보수 색채를 띤 인물이라고만은 볼 수 없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추진한 정책들을 살펴보면 진보적 성향도 곳곳에서 엿보인다는 거다. 대표적 사례가 국가배상 사건에서 국가의 책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며 과거사 해결에 나선 점이다. 지난해 11월 한 전 장관은 197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 1호 최초 위반자로 옥고를 치르다가 병보석 도중 의문사한 고 장준하 선생 유족에게 총 7억8000만원을 배상하도록 국가배상소송 상고를 포기했다. 유족의 최초 소송 제기 후 9년을 끌어온 사건이었다.
올해 1월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의 국가배상소송에서 국가 책임을 인정해 상고를 포기(868억원 배상 확정)했고, 9월엔 제주 4·3사건과 관련해 여전히 내란죄 누명을 쓰고 있는 수형인 20명을 직권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도록 했다. 작년 6월엔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에게 과다배상에 따른 지연이자를 면제했다.
이민청 추진도 원래 민주당이 내걸었던 정책
한 전 장관이 드라이브를 걸었던 ‘이민청 설립’ 역시 원래는 민주당의 정책이었다. 2019년 6월 백재현 전 의원 등 민주당 의원 11명은 “이민과 외국인 정책의 추진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며 출입국·외국인청 신설을 내용으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어 21대 총선 공약으로도 내세웠었다.
또 지난 9월 일정 능력과 요건을 충족하는 숙련 기능 인력(E-7-4) 비자 발급을 연간 2000명에서 3만5000명으로 대폭 확대하고 올해 1월부턴 과학·기술 우수인재 영주·귀화 패스트트랙을 시행하는 등 출입국·이민정책 면에서 전향적인 면모를 보였다. 다만 당초 민주당이 추진한 출입국·외국인청의 경우 ‘국내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 차원에서 접근했다면, 한 전 장관의 외국인 정책은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따른 인구정책, 경제성장률 하락에 대한 대응 및 산업계 인력난 해소책으로서 제시돼 “철학적 기반은 다르다”는 평가도 받는다.
엄경영 시대정신 연구소장은 한 전 장관에 대해 “외국인정책, 상법 분야 등에선 ‘합리적 실용주의’에 가깝다고 보인다”며 “그러나 빼놓을 수 없는 건 싱가포르의 리콴유 초대 총리와 같은 강한 법치주의 성향도 보인다는 것이다. 보수 정치인의 대표적 특징으로 종합하면 한 장관은 ‘중도 보수’ 성향 정도로 볼 수 있겠다”고 말했다.
“사형제 필요”…법치주의는 선명한 보수
실제로 한 전 장관은 재임 내내 엄벌주의를 기반으로 형사분야 법제를 바꿨다. “누가 ‘피해자 인권이 먼저냐 범죄자 인권이 먼저냐’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피해자 인권이 먼저라고 답할 것”(11월29일 범죄피해자 인권대회), “영구 격리해야 할 범죄자가 분명히 있다. 예방효과가 반드시 수반되는 사형제도나 가석방 없는 무기형이 필요하다”(11월1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 논란이 있을 때마다 강한 주장을 펼쳤다.
이런 발언들은 한국형 제시카법(고위험 성범죄자의 거주제한),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위한 소년법·형법 개정, 가석방 없는 무기형 신설, 사형집행시효 30년 시효 폐지, 국외도피범죄자 재판시효 정지 등 보수 성향의 정책 추진으로 구현됐다.
“왜 (검찰이) 깡패·마약·무고·위증 수사를 못 하게 되돌려야 하는지 그 이유를 묻고 싶다”(3월27일 법제사법위원회)며 민주당의 검수완박법으로 축소된 검사의 직접 수사권을 검수원복 시행령(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으로 확대한 것도 대표적인 법치주의 강조 사례로 꼽힌다. 취임 직후 추미애 전 장관 시절 해체한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부활시켰고, 올해 5월엔 강력부가 반부패부에 통합되며 늘어난 마약·조직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대검에 마약조직범죄부도 부활시켰다.
“진보 어젠다 선점 과제…김건희 특검도 법치주의 지켜야”
그러나 한 전 장관이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태도를 김건희 특검법 도입 등 ‘여권 리스크’에선 뒤집는다면 정치 무대에선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최근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독소조항(언론 브리핑 조항)을 먼저 언급한다든가 ‘함정 공작’과 같은 발언은 한 전 장관이 ‘윤석열 키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한계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앞으로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느냐에 따라 한 장관이 신선한 인물로 평가될지, 제2의 윤석열로 평가될지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한 전 장관의 비대위원장직 수락에 대해 “다음 총선을 ‘윤석열 대 이재명’이 아닌 ‘한동훈 대 이재명’으로 구도를 바꿔 치를 수 있다는 게 최고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한 전 장관의 향후 과제와 관련해 김 교수는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을 당시 가장 큰 대선 승리 요인은 김종인 당시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필두로 한나라당 간판을 버리고, 이명박 정권과 각을 세우며 경제민주화,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등 진보 어젠다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이라며 “젠더 이슈, 피해자 인권 등 국민의힘이 취약한 청년과 진보 어젠다를 한 전 장관이 선점할 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민정♥이병헌, 오늘 둘째 득녀…“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 | 중앙일보
- 옥탑방 ‘포르노 민폐남’의 죽음…동네 노인이 막걸리 부은 이유 | 중앙일보
- 영하 14도에도 도로 안 얼었다…이런 열선, 청담동엔 못 깐 사연 | 중앙일보
- 4418m 정상에서 “결혼하자”…‘7년간 한 텐트’ 이 부부 사는 법 | 중앙일보
- 안동 세번 놀래킨 '종지기 죽음'…성탄절, 만나야할 이 사람 | 중앙일보
- 與수장 직행한 한동훈…용산과 관계, 김건희 특검법이 시금석 | 중앙일보
- 송지은, 전신마비 유튜버 박위와 열애 "휠체어 데이트 안 불편해" | 중앙일보
- "청소할 사람이 없어요" 제주 5성급 호텔도 비명, 무슨 일 | 중앙일보
- 연 10조 '간병지옥' 칼빼든 정부…"방향 잘 잡았지만 너무 늦었다" [view] | 중앙일보
- "아이 둘, 월 200만원 받아요"…출산율 감소 전국 최저, 이 동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