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수장 직행한 한동훈…용산과 관계, 김건희 특검법이 시금석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총선을 3개월여 앞둔 21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됐다. 김기현 전 대표의 사퇴에 따른 조기 등판이다. 한 장관이 보수진영 위기를 돌파하고 총선을 승리로 이끈다면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로 입지를 확실히 굳힐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길은 처음엔 다 길이 아니었다”는 그의 말처럼, 한 장관의 앞길엔 험난한 고비가 산적해 있다는 전망이다.
오는 26일 국민의힘 전국위원회 의결을 거쳐 들어설 ‘한동훈 비대위’의 첫 과제로는 더불어민주당이 연내 국회 본회의 처리를 공언한 ‘김건희 특검법’이 꼽힌다. 여권에선 이를 “반헌법적 악법” “정략적 마녀사냥”으로 규정했지만, 일각에선 한 장관이 특검 추천 권한ㆍ수사상황 브리핑·모호한 수사범위 등 독소조항 수정을 전제로 민주당과 전격 협상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미 여권에선 “총선 후 특검을 시행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김건희 특검법을 대하는 태도는 한동훈 비대위가 당정관계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와 직결된다. 한 장관은 검찰 재직 당시 ‘윤석열 사단’의 대표 검사로 불리는 등 윤석열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대검 중수부 근무 인연을 시작으로 ‘서울중앙지검장-3차장검사’, ‘검찰총장-반부패부장’으로 발을 맞췄다. 윤 대통령 당선 이후 법무부 장관으로 직행하며 ‘윤석열 정부 황태자’로 불렸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한 장관이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제대로 당심을 전달할 수 있느냐가 한동훈 비대위 성공의 전제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야당은 물론이고 당내에서조차 “용산 직할체제”(홍준표 대구시장), “윤석열 아바타”(김웅 의원)란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이를 불식시켜야 한동훈 비대위의 순항은 물론, 여권의 위기 돌파가 가능하단 진단이다.
반면에 당내에선 여권 위기의 본질로 꼽히는 수직적 당정관계가 당심을 제대로 용산에 전달 못 하는 데서 기인한 만큼 “(대통령실과의) 소통의 질이 훨씬 좋아질 것”(윤재옥 원내대표)이란 기대가 있다. 수평적 당정관계라는 명분을 내세워 당정 간에 극단적 충돌을 일으키기보다 적절한 조정 상황을 도출해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한 장관이 '김건희 특검법'의 거부권을 윤 대통령에게 촉구하면서 대신 특별감찰관 임명, 제2부속실 설치 등을 건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 안팎에선 한동훈 비대위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들어선 ‘박근혜 비대위’를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 혁신을 주도하면서 당시 낮은 지지율을 보이던 임기 말 이명박 정부를 미래권력이 사실상 대체하는 효과로 위기를 돌파했다. 다만 윤 대통령이 아직 임기 반환점도 돌지 않은 상황에서 한 장관이 주목을 받을수록 윤석열 정부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 수 있다는 점은 여권의 딜레마로 꼽힌다.
비대위 및 공천관리위원회 구성은 한 장관의 정치 지향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요 관전 포인트다. 윤 대통령의 대선 승리 기반이었던 수도권ㆍ중도층ㆍ청년층의 지지가 속속 이탈하는 가운데, 이를 만회할 수 있는 인선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한 장관은 “국민을 위해서 열정적으로 헌신할 수 있는 실력 있는 분을 모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한 장관은 기존 정치권과 거리가 있는 정치 전문가, 여성, 청년층 등 다양한 방면의 인재를 물색 중이라고 한다.
비대위원장이 공관위원장 선임은 물론 공천의 최종 결재권자인 만큼 한 장관의 ‘개혁 공천’ 의지도 주목된다. 당 관계자는 “한 장관이 정치권에 빚이 없는 만큼 당 체질을 바꿀 수 있는 개혁 공천의 적임자”로 평가했다. 다만 “‘친윤’ 핵심이 물러난 자리에 검찰 출신 등 ‘찐윤’이 온다”는 당내 흉흉한 소문을 불식시키는 동시에 공천 잡음을 최소화하는 것 역시 한 장관 앞에 놓인 주요 과제로 꼽힌다.
신당 창당을 공언한 이준석 전 대표 등 당내 비주류와 매끄럽지 않게 물러난 김기현 전 대표 등을 품을 수 있느냐도 한 장관 정치력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날 한 장관은 ’이준석 등을 만날 것이냐’는 질문에 “(누구든) 당연히 가리지 않고 만날 것”이라면서도 “특정한 사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정치 경험 부족 및 야당에 대한 도발적 태도 등은 한 장관 개인이 해소해야 할 숙제로 꼽힌다. 배철호 한국정치평론가협회 부회장은 “기존의 관찰자나 제3자의 시각으론 정치 한복판의 조정자로 대처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당무나 정치 문법을 얼마나 빨리 습득하느냐도 정치 경험이 없는 한 장관의 과제”라고 말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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