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돌멩이 하나 옮기는 실천부터

2023. 12. 22.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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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체력 ‘걷기의 말들’ 작가·생활체육인

'틀렸다' 포기하기 전에
가장 쉬운 것부터 해 보자
고정관념도 안 보이는 '적'

고향 창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대학 동기가 있다. 방학 전에 제자들에게 도움이 될 강연을 들려주고 싶었단다. 처음 포부와는 달리 작가를 섭외하기 영 어려웠나 보다. 그럴 만한 것이 일단 연말이니 스케줄 한가한 사람이 드물었다. 이른 아침에 창원까지 왕복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학교에서 책을 구입해 주긴 하지만 실제 강연료는 적은 모양이었다.

동기 모임에 나가 술을 마시다가 이런 저간의 사정을 얘기했다. 그중 한 명이 “이런! 등잔 밑이 어둡구나” 한탄했다. 우리 동기 중에 유명한 작가가 한 명 있는데 여태 몰랐냐며, 세차게 등을 내리쳤다. 그 술자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바로 내가 받았다. 밤이 늦은 터라 대충만 듣고, 무조건 시간을 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며칠 후 날아온 메일을 자세히 읽으면서 ‘아차!’ 싶었다. 제자들이 10대 중반인 여자 중학생이란다. 왜 내 멋대로 고등학생일 거라 지레짐작했을까. 15세라면 건강 쪽에는 손톱만큼도 관심 없을 사춘기 철부지들 아닌가. 중학생 청중은 난생처음이라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지, 아니 얌전히 앉아서 집중이나 해줄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어쩌랴, 이미 잡힌 일정을 무를 수도 없고. 동기는 당황스러운 내 속마음도 모른 채 신이 났다. 도서관에는 100명이 앉아 있을 테지만 내 목소리를 교실로 송출해서 아예 전교생이 듣게 할 예정이라고 전해 왔다. 이런, 점입가경일세. 고심 끝에 강연을 통해 요것만은 기억해 주길 바라는 핵심 메시지를 두 개로 정했다.

하나는, 시도해 보기 전에 ‘불가능하다’는 맘부터 먹지 말라는 당부. 가능하지 않다고 여기는 순간, 우리 뇌는 전혀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그냥 여기서 멈추라고, 포기하라고 경고 알람만 울려댈 뿐이다. 그럴 때 ‘어려운 일이겠지만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바꿔 먹는 연습이 필요하다. 산더미처럼 쌓인 돌무더기에서 그저 돌멩이 하나 옮기는 작은 실천이 시작이다.

처음 9㎞ 미시령 앞에 섰을 때 얼마나 까마득했나. 그 경사진 고개를 자전거로 넘는 일은 죽었다 깨도 못 할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그때 나는 마음을 바꿔 먹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지 못하면 끌고라도 가보자. 그건 어렵지만 해볼 만한 일이었으니까. 중간에 포기하면 어떠리, 밑져야 본전. 아니 한 만큼 이익이라고 믿으며 조금씩 전진했다.

다 틀렸다고 ‘포기’하기 전에 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부터 해보자. 지금 하고 있는 학교 공부에서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날 인생의 고개에서도 꼭 적용해 볼 만한 팁이다. 문을 열고 나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르는데, 겁내고 무서워서 주저앉아 있으면 되겠나. 우선 문에 달린 손잡이부터 잡아야지.

다른 하나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을 던져버리라는 당부. 특히 머리 쓰는 박사는 허약하고, 운동선수는 공부를 안 해도 상관없다는 잘못된 생각 말이다. 나 역시 고정관념의 희생자였다. 어려서부터 공부 좀 한답시고 쉬는 시간에도 잘 움직이지 않았다. 책상에 오래 앉아 버티기를 자랑했고, 잠도 엎드려서 대충 잤다. 몸이야 저절로 크는 거겠지, 방치하고 혹사했다. 그 결과 저질 체력의 소유자가 되었고, 마흔 살에 이르러 고혈압 병까지 얻었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여성 사이클 부문 금메달을 딴 안나 키젠 호퍼는 수학 박사다. 스위스 로잔공대에서 연구하는 틈틈이 운동 실력을 쌓았다. 또한 프로복싱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서려경의 본업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다. 뇌와 육체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둘 다 왕성하게 단련할 수 있다는 산증인들 아닌가.

중학생들이 과연 내 말에 귀를 기울일까, 우려했던 마음은 기우로 밝혀졌다. 200개의 초롱초롱한 눈빛은 내 당부에 또렷이 응답했다. 게다가 작가로서의 기쁨까지 안겨 줬다. 줄지어서 사인을 기다리며 앞다퉈 말했다.

“무지 떨려요. 작가님한테 사인받는 거 난생처음이거든요.”

마녀체력 ‘걷기의 말들’ 작가·생활체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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