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 고단한 일상에 아기 예수 기억하며 미소짓기를
성탄절 전야 온 가족이 모인다. 오후 7시쯤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고 예수님 탄생을 다룬 성경 본문들을 읽으며 그 사이에 찬송을 부른다. 부친이 계실 때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 어머니는 감리교 권사, 본인은 성결교 목사, 남동생은 예장통합 장로, 여동생은 예장합동 권사, 그 밑 동생은 침례교 목사 등등 가족 구성원 자체가 에큐메니컬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증손주까지 4대가 모여서 찬양하는데 엄숙한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젊은이는 비바체, 노인은 라르고다. 반주 없이 부르니 노래가 똑같이 끝나질 않는다. 성악가 수준의 실력파부터 노인의 쉰 목소리, 변성기 아이들의 기묘한 음까지 섞여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이 광경을 묘사한 수필을 통해 저자는 책의 제목을 ‘ㅎㅎㅎ ㅋㅋㅋ’(연두에디션)로 정했다. 세대 구분을 넘어 아기 예수를 기억하며 함께 웃고 즐기는 가족의 풍경이다.
강일구(79) 호서대 총장이 최근 일상의 고단함을 신앙과 유머로 잔잔하게 돌아보는 수필집을 펴냈다. 다음세대를 다분히 의식해 웃음의 의성어 기호를 활용한 제목을 채택, 박장대소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강 총장은 2년 전에도 ‘개치네쒜’(동연) 제목의 에세이집을 냈다. 욕설 같아 보이지만 엄연한 표준어다. 영미권에선 옆 사람이 재채기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God Bless you)”이라고 속삭인다.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할 당시 재채기가 이 병의 징조인가 싶어 죽지 말고 살라고 쾌유를 기원하며 되뇌던 전통에서 유래한다. 외국에만 있는 줄 알았던 재채기 후 덧말이 우리말에는 ‘개치네쒜’임을 발견한 이야기다. ‘에취’ 후엔 ‘개치네쒜’다. 지난 15일 충남 아산 호서대 본관에서 강 총장과 마주 앉아 100분 넘게 수필집을 낸 이유를 들었다.
“젊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은 겁니다. 무게를 잡고 내가 뭘 잘한다 이런 게 아니고, 그저 여러분을 훈훈하게 기분 좋게 하면서 스스로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내 주변의 좋은 걸 유치하지 않고 우아하게 얘기해서 종교성을 너무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전하고 싶습니다. 예민하게 읽어보면 이런 신앙적 측면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팔순을 앞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력 있는 강 총장은 성결교 목회자이자 신학자다. 한양대 공대를 졸업하고 서울신대를 거쳐 미국 유니언신학교에 이어 드루대에서 ‘레오 1세의 신학으로 본 에큐메니컬 모델’ 제목의 박사 논문을 썼다. 한국교회사학회 한국교부학회 회장직을 역임했다. 그의 부친은 호서대 설립자인 강석규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다. 서울 대성중고교와 호서대,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 등을 설립하며 70년 넘게 교직에 머물던 인물이다.
강 총장은 책에서 자신의 아픔도 가감 없이 드러낸다. 2016년 선대부터 이어진 학교 재정 문제로 모든 책임을 지고 법정 구속돼 2년간 수감생활을 한 현실을 두고, 감옥을 ‘법무부 별장’으로 표현하는 등 담담하게 회고한다. 교수님 박사님 총장님 호칭에서 비인격적인 ‘OOO번’으로 불리고, 하루 일당 몇백원을 받으며 쇼핑백 봉투를 만드는 노역에 투입될 때는 ‘강 사장’으로 불리던 일화를 들려준다. 강 총장은 법정에서 자신에게 재정 문제를 떠넘긴 교수들을 용서하고 지금도 대학에서 같이 지내고 있다. 그는 “쉽진 않았지만, 용서의 종교인 기독교를 삶으로 나타내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런 그를 향해 지인들은 ‘호야호야 77’(동연)이란 책을 헌정했다. 역시 암호 같은 제목의 책인데, ‘호야호야(好也好也)’는 강 총장이 전화 받을 때 하는 중국어 비슷한 말로, 여보세요 뜻의 일본어 ‘모시모시’와 비슷하다. 77은 그의 나이 77세에 77명이 강일구의 인생에 대해 회고의 글을 보내왔다는 의미다. 남들은 자서전을 쓸 때 그는 다른 사람들이 대신 인생을 회고해 준 타서전을 출간한 것이다.
클래식을 재즈화한 음악을 좋아하는 강 총장은 ‘바흐, 신학을 작곡하다’(동연)도 펴낸 바 있다. 강 총장은 “바흐를 보면서 음악과 신학의 창조적 융합의 힘을 느낀다”면서 “모던 재즈를 이해하기 위해 옛 바흐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이런 게 바로 근원으로 돌아가는 아드 폰테스(ad fontes)임을 느낀다”고 밝혔다.
아산=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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