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토 부부부터 임스 부부까지! 시대를 초월한 아티스트의 놀라운 거실 #더리빙룸
이경진 2023. 12. 22. 00:58
시대를 초월한 아티스트들의 집. 그 중심엔 고유의 존재감을 발산하는 거실이 있다.
「 RIIHITIE HOUSE by ALVAR & AINO AALTO 」
알바 & 아이노 알토 부부에게 자연과의 중첩은 더 나은 삶을 위한 핵심이었다. 헬싱키 문키니에미(Munkkiniemi)의 리히티에(Riihitie)는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조용한 동네로, 주변 환경을 디자인의 출발점으로 삼는 알바 & 아이노 알토 부부는 녹음이 우거진 이곳에 가족의 집이자 사무실을 설계했다. 북유럽의 자연과 섬세한 균형을 이루는 집의 내부에 들어서면 곧장 리빙룸이 펼쳐진다. 아르텍의 독창적인 가구와 걸작 조명으로 가득한 거실에는 디자인에 대한 두 사람의 접근법이 완벽하게 요약돼 있다. 형태와 기능을 결합한 단순함과 부드러움, 편안함을 갖춘 자작나무 가구들이 하모니를 이룬다. 폴 헤닝센의 종이 프로토타입 램프, 그들이 사랑한 벌집 펜던트 조명이 커피 테이블 중앙에 드리워져 있고, 알토의 ‘400 탱크’ 체어가 배치돼 있다. 차분하고 단순하지만 알토 부부의 합리주의와 디자인 미학에 무한한 영감을 준 터전.
「 CASE STUDY HOUSE NO. 8 by CHARLES & RAY EAMES 」
철강, 유리, 금속, 치장 벽토와 기타 재료를 결합해 부품 키트처럼 조립된 찰스 & 레이 임스 부부의 집. 1949년 LA 퍼시픽팰리세이즈 지역에 지어진 상징적인 구조물은 디자인과 삶에 대한 임스 부부의 총체적 접근방식과 세계관을 담아낸다. 두 사람에게 일과 놀이, 삶과 자연이 공존하는 집에서 가장 상징적인 공간은 17피트 높이의 거실. 생활공간과 작업공간, 친목을 위한 사회공간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설계됐다. ‘일 속의 삶, 삶 속의 일’이라는 그들의 철학을 구체화한 살아 있는 실험실 역할을 했다. 이사무 노구치의 램프와 토넷 체어, 아메리카 원주민의 목조각 등 다양한 오브제와 문화·예술적 잡동사니가 가득해 찰스와 레이 임스의 활기찬 성격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엿볼 수 있다. 임스 부부는 1949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이 집으로 이사해 평생을 살았다.
「 UMBRELLA HOUSE by KAZUO SHINOHARA 」
20세기 후반 일본의 주요 건축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시노하라 카즈오는 1960년대의 기능과 효율을 추구한 일본 건축에 대한 비판으로 ‘집은 예술’이라는 선언을 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바로 1961년 3인 가족을 위해 지은 ‘엄브렐러 하우스’다. 이 집은 도로 공사로 철거될 위기에 놓였는데, 비트라가 인수해 2022년 비트라 캠퍼스에 구현했다. 일본의 전통 종이우산을 닮은 지붕 아래 공간은 크게 거실과 다다미방으로 나뉜다. 우산살을 연상케 하는 지붕 구조 아래, 엄격한 비율로 짜인 격자창이 있는 거실은 절제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인테리어에도 특히 공을 들였다는 것. 디자이너 시라이시 카츠히코와 협업해 공간에 맞는 가구를 제작했는데, 준공 후 1년이 지나서 가구가 완성될 정도였다. 디자인의 역할은 사회적 목표를 위한 생산이 아니라 사람들을 매혹하는 창조에 있다는 시노하라의 말을 실감하게 된다.
「 CASA DE VIDRO by LINA BO BARDI 」
울창한 열대우림에 둘러싸인 집, 카사 데 비드로. 상파울루에 있는 이곳은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의 안식처였다. 정치적 이유로 33세에 남편과 이탈리아에서 브라질로 이주한 그녀는 1951년 숲속에 집을 짓고 40년간 거주했다. 건물은 얇은 강철 기둥으로 떠받쳐진 채 유리벽에 둘러싸여 있다. 그 덕에 거실은 숲을 향해 개방돼 있고, 자연은 고스란히 인테리어의 일부가 됐다. 리나는 건축가인 동시에 가구 디자이너이자 매거진 〈Habitat〉 편집장이었으며, 남편 피에르토 마리아 바르디는 저명한 미술평론가이자 컬렉터였다. 두 사람은 리나가 디자인한 의자와 선반, 평생에 걸쳐 수집한 골동품과 오브제, 서적으로 거실을 채웠다. 사진은 바르디 사후 개관한 바르디 연구소(Instituto Bardi)가 거실을 일부 재현한 모습. 어지럽게 놓인 물건 사이에서 부부의 왕성한 호기심이 느껴진다.
「 ABIQUIU´ HOME by GEORGIA O’KEEFFE 」
아름다움과 단순함은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을 지배하는 두 가지 특성이다. 뉴멕시코 아비키우에 있는 그녀의 집 역시 마찬가지다. 진흙 벽돌로 이뤄진 집은 아비키우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 형식으로, 특히 오키프를 매료시킨 것은 안뜰의 벽이었다. 폐허였던 건물을 오르다가 그녀는 예쁜 우물이 있는 테라스를 발견했다. 긴 벽과 한쪽에 문이 있는 적당한 크기의 테라스는 오키프가 평소 갖고 싶었던 것. 오키프는 이곳에 풍부한 자연 채광이 들어오게 하고, 20세기 중반의 현대식 가구로 모던함을 더했다. 거실 바닥에 자갈을 깔고 자신이 수집한 돌과 뼈로 장식한 뒤 두 그루의 상록수와 오래된 그루터기로 한 점의 정물화를 만들어냈다.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과 공간이 한 몸을 이루는 집은 넓은 출입문을 통해 너른 테라스로 연결되고, 거실에서는 커다란 통창으로 미루나무가 우거진 계곡과 강이 내려다보인다. 그녀의 그림에 많은 영감을 준 풍경이다.
「 ISABELLE D’ORNANO’S Apartment in paris 」
프랑스 스킨케어 브랜드 시슬리(Sisley)의 공동창업자 이자벨 드 오르나노는 파리 레프트 뱅크 오르세 거리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를 중세시대 궁전처럼 변모시켰다. 베르사유에서 영감을 받은 녹색과 금색의 부아세리(Boiserie; 벽 장식), 끝없이 뻗어나갈 것 같은 카펫, 각종 예술품과 개성 넘치는 오브제 등 사방을 수놓은 장식은 저마다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하나의 콜라주처럼 어우러진다. 집에는 수십 년간 그만의 방식으로 정의해 온 아름다움이 산재해 있으며, 독보적 맥시멀리즘이 돋보인다. 단지 화려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랜드 살롱 한쪽에 놓인 딸의 초상화에서 알 수 있듯 이곳엔 가족에 대한 이자벨의 애정과 사소한 취향이 오랜 시간 새겨져 왔다. 오른쪽 벽에 붙은 ‘페이스(faith)’는 유리 아티스트 로브 윈(Rob Wynne)에게 의뢰한 장식으로, 단어가 지닌 강력한 메시지를 선호하는 이자벨의 취향이 반영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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