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마판타즈마의 여정이 아르텍 스툴60에 닿았다
Q : 2009년 스튜디오를 설립한 이래 리서치 기반의 디자인 듀오로 독특한 입지를 다져왔다. 방대한 연구와 리서치 프로젝트를 커리어의 우선순위에 둔 이유는
A : 우리는 변화하려는 의지가 강했고, 호기심이 많았다. 디자인 신의 초점이 스타일링이나 피상적 부분에 맞춰져 있어 20세기에 머문 느낌이 들었는데, 우린 그런 방향을 추구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도 예쁜 물건을 좋아한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자원이 부족하고, 지구온난화도 심각해지고, 여전히 물이 부족한 나라도 존재하는 지금 인간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만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지금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Q : 포르마판타스마의 초기 메인 프로젝트는 천연 폴리머 실험을 펼친 ‘보타니카(Botanica)’였고, 그 다음은 용암과 화산재를 다룬 ‘자연의 화석(De Natura Fossilium)’이었다. 모두 원료와 자재를 조사하는 데 중점을 뒀다
A : 소재는 아직 제품이 되지 않은 상태라 잠재력이 많다고 봤다. 디자인을 결정할 때도 폭넓은 선택권을 가질 수 있으니까. ‘보타니카’는 플라스틱 예술 작품과 디자인 보존에 전념하는 연구재단 ‘Plart’의 의뢰로 시작됐다. 우리는 플라스틱 제품을 재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던 재단과 함께 천연수지와 고무, 목재와 동물성 재료로 플라스틱을 만드는 실험을 했다. 천연 폴리머 실험을 통해 얻은 다양한 결과물을 세라믹과 금속 · 조명 · 가구 등과 결합했고, 솔방울이나 씨앗 꼬투리처럼 자연에서 파생된 모양과 디테일의 오브제가 탄생한 것이다.
Q : 이번에는 아르텍의 스툴60 탄생 90주년을 기념한 프로젝트를 알리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협업 결과인 한정판 스툴60 ‘빌리(Villi)’에서는 근래 아르텍이 생산한 스툴 60과 달리 나무 옹이와 얼룩 등을 그대로 볼 수 있다
A : 스툴60의 빈티지 제품 중 80년대 생산 제품을 보면 목재의 차이가 느껴질 만큼 재료 본연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품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고, 훌륭한 가구의 정의가 티 없는 마감으로 왜곡되기 시작하면서 제작 과정에 변화가 있었다. 이는 플라스틱 제품의 사용이 본격화된 시점과 관련 있다. 가정에서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하니 모든 소재가 플라스틱처럼 흠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Q : 아르텍과의 협업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큐레이션으로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펼친 〈캄비오 Cambio〉전이 계기였다고
A : 숲에서 목재를 추출하는 거버넌스에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였다. 과학과 보존, 엔지니어링과 정책 입안을 연결하고 더 나은 미래를 형성하는 데 디자인이 할 수 있는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 일련의 영화도 제작해 상영했는데, 철학자이자 작가인 에마누엘레 코치아(Emanuele Coccia)의 독백이 포함돼 있다. 나무의 관점에서 인류에게 전하는 독백이다. 다른 생물종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개념이 서구권에는 익숙하지 않기에 더욱 특별했다. 2008년 기후변화로 인한 폭풍으로 파괴된 이탈리아의 숲에서 가져온 소나무로 테이블과 스툴, 책상, 의자, 책장 시리즈를 만들기도 했다. 우리 디자인은 사고에 중점을 두지만, 연구 자료를 전시하기 위해 일련의 가구를 고안하기도 한다. 〈캄비오〉는 나무 한 그루의 목재만 사용한 전시였다.
Q : 협업 파트너를 고려할 때 그들이 갖고 있는 질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밝힌 적 있다. 아르텍이 던진 물음은
A : 아르텍은 우리에게 전체 제작 과정을 오픈해 완전한 접근을 제안했다. 제작에 대해 비평하고 분석하길 원한 것이다. 디자이너로서 그런 부분이 좋았던 건 우리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할 때 이 과정을 큰 그림에서 바라보고 분석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그 점이 좋았다.
Q : 포르마판타스마와 아르텍의 디자인 철학에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나
A : 있다. 아르텍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아르텍은 알바 알토가 직접 디자인에 참여한 시기부터 줄곧 숲과 디자이너가 상호작용하며 일관된 관계를 지속해 왔다. 자연스럽게 숲의 관점에서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아르텍에 관심을 가졌던 가장 큰 이유는 현지에서 조달한 목재를 제품 생산에 사용해서다. 탄소발자국 측면에서도 긍정적 부분이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생태계 가까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책임감을 갖기 마련이다. 재료가 어디서 어떻게 수입됐는지조차 모르는 채로 사용하는 것은 식민지 시대의 유럽 국가들이 다른 영토의 자원을 다루는 방식과 비슷하다. 유럽은 그런 식으로 부를 축적해 왔고, 이제는 자원에 대한 잘못된 사고방식이 남용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Q : 기후변화로 아르텍 역시 목재를 찾기 위해 점점 더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A : 나무가 자라는 환경이 이전과는 다르게 불안정해서 각각의 성장 속도도 변했고, 얼룩도 생긴다. 그렇다 보니 더 북쪽으로 올라가 나무를 수급해야 하는데, 우리와 협업하며 다시 공장 반경 200km 이내에서 나무를 수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Q :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작업을 이어왔다. 〈캄비오〉전을 완성하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깊고 넓게 연구하고 이를 디자인으로 발전시키는 건 포르마판타스마에 왜 중요한가
A : 우리는 수집한 정보를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개한다.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전시도 하고 인터뷰도 싣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를 위해 리서치한 지식과 정보를 단순히 갤러리나 전시회장에서 보여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작업, 나아가 우리가 아닌 그 어떤 이들의 움직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Q : 포르마판타스마는 17명 규모의 단일 팀으로 움직인다. 역할 분담 없이 모든 구성원이 함께 프로젝트를 실행하며 얻는 장점은
A : 어떤 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굉장히 넓어진다. 만약 우리가 제품 개발에만 집중하는 디자인 오피스였다면 제품 외 다른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디자인 서비스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패션과 박물관,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다채로운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금 팀 단위로 함께 일하지만, 모두 서로의 친한 친구가 돼 분위기가 좋은 편이다. 규모의 관점에서 지금의 일을 감당하려면 팀이 지금의 두 배 정도 커져야 하는데, 우리는 작은 몸집을 유지하고 싶다. 작은 팀이라 항상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Q : 시모네는 어린 시절에 좋아한 디자이너로 엔초 마리를 꼽기도 했다. 의외였다
A : 엔초 마리는 정치적 표현을 많이 한 디자이너다. 그는 디자인이 가진 가능성과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했다. 작업은 서로 다르지만 그런 부분에서 그에게 동의한다. 좋은 디자인은 아름다운 모습 그 이상의 뭔가를 담아내야 한다는 아이디어 말이다.
Q : 포르마판타스마의 역할은 협업 파트너에 따라 무한히 확장된다. 새롭게 협업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A : 샴페인 브랜드와 뷰티 브랜드 컨설팅 프로젝트도 진행 중인데, 프로젝트 종류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어떤 고객과 일하느냐다. 그에 따라 우리가 일으킬 수 있는 변화의 크기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픈 마인드로 흥미로운 요청을 하는 고객과 일할 수 있다면 그 주제나 분야가 어떤 것이든 굉장히 흥미로울 수 있다. 관계가 중요하다.
Q : 문득 궁금해진다. 두 사람은 집에서 어떤 가구를 사용하나
A : 단순한 가구. 어떤 공간에서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편안한 디자인이다. 대부분 직접 디자인한 가구를 사용한다. 그 밖에는 이사무 노구치의 디자인이 많은 편이다.
Q : 포르마판타스마의 생태학적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의 탐욕스러운 소비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그리게 됐다. 동시대 디자인 소비자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관점이 있다면
A : 어떤 디자인 제품은 굉장히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각자의 생애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사용하는 제품의 수가 지금보다 현격히 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분명한 생산자, 좋은 내구성 등 정보 공유가 활발해야 한다. 우리는 디자인 ‘소비자’ 대신 디자인 ‘시민(Citize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여기에서 관점이 달라지는 것 같다. 우리에게 디자인은 소비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고 가꾸고 고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Copyright © 엘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