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생 로랑부터 이사무 노구치까지! 시대를 초월한 아티스트의 놀라운 거실 #더리빙룸

이경진 2023. 12. 22.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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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한 아티스트들의 집. 그 중심엔 고유의 존재감을 발산하는 거실이 있다.
「 ISAMU NOGUCHI HOUSE 」
조각과 회화 · 조경 · 가구 · 인테리어 등에서 활약한 전방위적 작가, 20세기를 상징하는 아티스트 이사무 노구치. 그는 1969년 시코쿠 섬 다카마츠의 무레에 석조 작업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석재 생산지이기도 한 이곳은 주요 활동지였던 뉴욕과 달리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노구치는 이곳에 야외 작업장을 갖춘 스튜디오를 짓고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작업실 옆으로는 그가 머물던 집이 보존돼 있다. 전통적인 일본 목조가옥 안에 정갈하게 배치된 바닥과 가구, 조형 작품에서 생활 속 예술을 추구한 이사무 노구치의 신념이 느껴진다. 일본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끊임없이 차별을 겪었지만, 일본인으로서 정체성을 저버리지 않았던 이사무 노구치. 무레의 집은 그에게 작업 후 쉬는 장소 그 이상의 의미였다
COURTESY OF RIZZOLI NEW YORK
「 YVES SAINT LAURENT'S APARTMENT IN PARIS 」
이브 생 로랑과 그의 동반자인 피에르 베르제는 1970년 파리 7구 아파트먼트를 구입해 수십 년 동안 이를 가꾸며 보냈다. 인테리어는 1920년대 프랑스 건축가인 장 미셸 프랭크가 아르데코 스타일로 디자인했는데, 당시 이브 생 로랑이 푹 빠져 있던 아르데코의 고급스러운 미학을 읽을 수 있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과 같은 방식으로 그린 벽화, 마르셀 프루스트의 서사시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연상시키는 침실 등 시적 영감이 가득한 집의 정점은 2층 높이의 살롱. 리빙룸 역할을 했던 살롱에서는 아름다움에 사로잡혔던 두 수집가의 극도로 절충적인 미학과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르네상스시대의 청동 조각과 로마시대의 대리석 작품, 프란시스코 고야와 피카소와 앤디 워홀의 그림, 장 미셸 프랭크와 에일린 그레이의 현대적 가구, 클로드 & 프랑수아 그자비에 랄란의 재치 있는 조각품까지. 서로 다른 스타일과 시대를 매력적으로 혼합시키는 독보적 안목이 집약된 공간.
COURTESY OF MARIANNE HAAS
「 VILLA E-1027 by EILEEN GRAY 」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 아이콘 에일린 그레이. 프랑스 남부 해변 리비에라 절벽에 있는 빌라 E-1027은 연인 장 바도비치와 지내기 위해 1929년 설계한 별장이다. 가구와 인테리어, 건축을 차례차례 섭렵한 그녀의 디자인 철학이 집대성된 곳으로, 디자인이 공간 전체를 형성하는 ‘총체 예술’의 진면모를 엿볼 수 있다. 거실은 에일린이 이곳을 위해 디자인한 컬렉션으로 완성됐다. 견고한 쿠션으로 감싼 ‘비벤덤(Bibendum)’ 체어부터 회전형 서랍이 있는 캐비닛, 상판 높이 조절이 가능한 사이드 테이블 E1027, 해변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트랜싯(Transat)’ 체어. 여기에 짙은 파란색의 파티션과 러그, 벽면의 대형 항해 지도가 바다를 향한 두 사람의 낭만을 보여준다. 아쉽게도 집이 완성될 무렵 둘은 헤어졌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디자인을 향한 순수한 열망을 담은 공간은 그대로 남아 많은 이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COURTESY OF MANUEL BOUGOT
「 THE MENIL HOUSE 」
현대예술계의 메디치 가문으로 불리는 도미니크 드 메닐 부부의 집. 텍사스 석유 재벌 콘래드 슐럼버거의 딸 도미니크와 존 드 메닐은 결혼 후 미국으로 건너와 컬렉터의 길로 들어섰다. 부부는 텍사스 휴스턴에 터를 잡고 젊은 건축가에게 집 설계를 맡겼는데, 그가 바로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제자이자 훗날 ‘글라스 하우스’를 지은 필립 존슨이다. 인테리어는 미국 최초의 쿠튀르 디자이너 찰스 제임스에게 부탁했다. 미니멀리즘 건축과 풍부한 장식, 메닐 부부의 광범위한 컬렉션까지. 이보다 더 강력한 조합이 있을까. 심플하고 단정한 외관과 달리 거실은 강렬한 컬러와 존재감 넘치는 아이템으로 가득하다. 앤티크 피아노와 18세기 베네치아 소파, 널찍한 팔각형 오토만 의자, 제임스가 디자인한 버터플라이 소파. 여기에 입체파와 초현실주의 작품, 아프리카 조각, 지중해 유물 등 시대와 양식을 초월하는 예술품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COURTESY OF THE MENIL COLLECTION
「 JEAN CHARLOT HOUSE 」
하와이 호놀룰루에는 프랑스 태생의 미국 화가 장 샤를로가 인생의 후반기를 보낸 집이 있다. 1920년대 ‘멕시코 벽화운동(Muralismo)’의 주역인 그는 50대 때 하와이 대학교 건물 벽에 프레스코화를 그려 달라는 의뢰를 받고 섬을 방문했다. 그러다 자연과 깊이 교감하는 원주민 문화에 매료된 나머지 여생을 하와이에서 보내기로 했다. 그는 하와이 대학교 교수로 지내며 다수의 프레스코 벽화와 조각품을 남겼는데, 아내 그리고 네 명의 자녀와 함께 살기 위해 지은 집에 자신의 예술적 감성과 섬에 대한 동경을 열정적으로 반영했다. 아직 공사가 한창이던 때 동료 벽화가 줄리엣 메이를 불러 거실에 거대한 벽화를 그릴 정도였다고. 갖가지 열대식물이 어우러진 프레스코화는 천연 자재로 마감한 내부와 샤를로의 또 다른 작품들과 어우러져 강렬한 동시에 부드러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COURTESY OF DARREN BRADLEY
「 CHARLESTON FARM HOUSE by VANESSA BELL 」
바네사 벨은 20세기 초 영국 화가이자 버지니아 울프의 언니다. 찰스턴 팜 하우스는 그녀의 예술혼이 녹아든 장소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그녀는 연인 던컨 그랜트와 이스트 서식스에 있는 농가로 이사했다. 너른 정원과 연못이 있는 집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한 바네사는 즉시 던컨과 함께 눈 닿는 곳곳에 붓칠을 하기 시작했다. 거실 벽과 벽난로는 물론이고 문짝과 테이블, 의자, 심지어 욕조에까지 그들의 손길이 닿았다. 이에 더해 직접 디자인한 패턴으로 만든 카펫과 앤티크 가구, 벽에 걸린 그림 등으로 집 안 곳곳을 장식했다. 대담하고도 열정적인 시도에서 여자이자 예술가로서 사회의 통념을 벗어나고자 한 바네사는 1961년 사망 전까지 이곳에 살며 그림을 그렸다. 그녀에게 집이란 자신의 정체성과 이상향을 실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가 아니었을까.
COURTESY OF LEE ROBBINS, THE CHARLESTON TR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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