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6·25 사료를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초등학교 교사 출신 탈북자와 6·25전쟁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북한에선 6·25전쟁은 미국과 남한의 전면적인 북침으로 시작됐고, 미국의 일방적 종전 요구로 북한이 승리한 전쟁”이라 가르친다고 전했다. 북한은 정전협정 체결일(7월 27일)을 전승절로 기념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통일이 되더라도 6·25전쟁의 역사적 사실을 북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좋은 대책을 알려 달라고 했다. 필자가 보기에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북한이 남침했다는 역사적 기록물을 제시하는 것이다. 정전 70주년을 맞은 2023년의 끝자락에서 아직도 6·25전쟁을 외세의 침략에 맞선 조국해방전쟁으로 선전하는 북한의 역사 왜곡을 분명하게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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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는 북침이다”는 북한 왜곡
역사적 진실 제대로 전수해야
후세대 역사의식 배양에 도움
」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에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이 시작됐다. 유엔은 당시 헌장 1조 1항에 따라 한국에 대한 지원을 결의했다. 6·25전쟁은 1945년 10월 24일 출범한 유엔이 최초로 유엔군을 파견한 전쟁이다. 유엔의 결의에 따라 병력지원 16개국, 의료지원 6개국, 물자지원 39개국이 유엔의 깃발 아래 한반도 평화를 지키려 피 흘리며 싸웠다.
유엔군 파견은 유엔의 기본 정신에 따라 적극적으로 세계 평화를 보장하고 안정적인 국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라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 7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최전방 감소초소(GP)에 유엔 깃발이 휘날리는 이유다. 사상 처음 ‘집단 안전보장 원칙’에 따라 국제사회가 행동한 사례다.
필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6·25전쟁 사료 및 자료를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올해 기준으로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훈민정음』 『난중일기』(2013) 등 모두 18건이다. 세계에서 다섯째로 많은 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6·25전쟁 사료도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6·25전쟁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을 경우 무엇보다 유엔의 설립 목적인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게 된다. 6·25전쟁을 새롭게 기억하게 해주고, 국제사회의 집단안보체제가 작동하고 있음을 일깨워 줄 것이다.
남북통일 이후 벌어질 수 있는 혼란을 줄이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특히 북한 주민에겐 6·25전쟁의 역사가 북한 정권이 억지로 왜곡해 주입한 한국의 북침이 아닌 북한의 남침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국방부와 육·해·공군 및 해병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6·25전쟁 기록물부터 먼저 등재를 진행해야 한다. 이어서 참전국과 의료 및 물자지원국 보관 자료를 추가로 올리고, 최종적으로는 러시아·중국 등의 자료까지 포함할 수 있다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등재된 6·25전쟁 기록물을 기반으로 공간사(公刊史)까지 재발간한다면 금상첨화다. 공간사는 준비 단계부터 발간까지 20년 정도가 걸리는 방대한 편찬 작업이다. 6·25전쟁 발발 100주년이 되는 2050년쯤에는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6·25전쟁 기록물을 바탕으로 전투사 위주의 현행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아우르는 진정한 공간사가 재발간되길 바란다.
북한은 1959년 6·25전쟁을 자신들의 관점에서 서술한 『조국해방전쟁사』를 펴내 세계 곳곳에 뿌렸다. 1967년 발간되기 시작한 한국의 『한국전쟁사』보다 8년이나 앞섰다. 이는 올바른 역사를 담은 공간사 편찬을 위해 6·25전쟁 기록물을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하루 속히 올려야 한다는 당위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세계 최초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가 지난 11월 1일 충북 청주에서 개관했다. 센터 설립은 6·25전쟁 기록물을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더없이 좋은 기회다. 노자의 『도덕경』에 ‘제대로 세운 것은 뽑히지 않고, 제대로 품은 것은 빼앗을 수 없다(善建者不拔, 善抱者不脫)’는 구절이 있다. 6·25전쟁 기록물을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 공간사까지 재편찬한다면 후세의 역사의식을 배양할 또 하나의 튼튼한 토대를 얻게 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성춘 원광대 연구교수·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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