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의 시선] 의대 증원과 이공계 인재 확보
대폭 삭감돼 논란이 됐던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이 막판에 6000억원 증액돼 21일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 제출안의 실질 삭감액이 3조4000억원(명목 분류상 5조2000억원)이니 일부 증액됐다고 해도 2조8000억원 정도 줄었다.
정부 예산으로 주는 연구비를 엉뚱한 곳에 쓰는 사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니 R&D 예산을 정비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어떻게 미리 다 알 수 있나. 이렇다 보니 실제로는 일괄 삭감 형태로 진행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연구비엔 대학원생에게 지급되는 인건비도 있다. 군대도 요즘 병사 월급을 올리고 있다. 대학원 실험실을 지키는 게 대학원생인데 이들의 인건비를 깎으면 연구 의욕이 생기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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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공대가 최대 피해자" 우려
미용성형의사 증가 방치 안 돼
국가 차원 인재 배분 고민해야
」
이런 논란이 불거지다 보니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런저런 해명을 하느라 바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시정연설에서 보완책을 언급할 정도였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예산 삭감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R&D 예산 조정 과정에서 현장으로 가서 의견을 듣고 반영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대학원생 인건비와 관련해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예산 삭감은 너무 급하게 추진된 측면이 있다. R&D 예산은 한해 집행하고 마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깎았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내년 예산 집행 과정에서 꼼꼼히 따져봐야 올해의 논란이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2조8000억원을 절감한 것이 성과라고 볼 수도 있으나 과학기술계의 정부 불신과 사기 저하라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과학기술계의 사기를 높일 대책도 필요하다.
며칠 전 통화한 수도권 소재 공대 교수는 “아직 개별 사업에 대해 얼마나 연구비가 깎였는지는 통보받지 못했다. 내년에 어떻게 될지 몰라서 내 분야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학생에게 오라고 얘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쉽게 칼질을 당하면 연구를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닌가. 대학원의 연구 역량을 유지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여기에 대규모 의대 증원까지 들고 나왔다. 응급실 등 필수의료 분야에서 의사가 모자라는 것은 사실이고 증원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의대를 증원해도 필수의료 분야로 인력이 간다는 보장이 없다. 메마른 곳이 있으니 물을 쏟아붓겠다는 정책인데 문제는 관에 누수가 있어 물이 새고 수로가 정비 되지 않아서 물을 부어도 메마른 곳에 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물론 새는 것 신경 쓰지 않고 물을 충분히 부으면 어디에선가 흘러넘쳐서 메마른 곳으로 물이 갈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물이 충분한 상황인가.
현재 의대 정원은 3058명이다. 연간 1000명에서부터 3000명까지 늘린다는 얘기도 나온다. 의대 증원이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2025년에 대학에 들어가는 2006년 출생자들은 45만 명 정도다. 10여 년만 더 지나면 이 숫자가 30만 명대(2017년생)로 떨어진다. 지난해 출생아가 25만 명도 안 되는데 한 해에 의사를 4000~6000명 배출한다면 어떻게 되나.
대입에서 의대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이공계는 우수 인재 확보가 더 어려워진다. 의대 정원 확대의 최대 피해자는 서울대 공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공공연히 나온다. 지난 14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 토론회에선 “의대 정원이 확대되면 내신 3등급도 서울대 공대에 진학할 것”이라는 얘기마저 나왔다.
인공지능(AI)이나 반도체 분야에서 사활을 건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한국은 최상위권 인재들이 의대로 몰리고 그중의 일정 수는 미용성형 의사가 된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고 의대 정원만 늘리면 안 된다. 한국이 반도체 등 전자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이유도 그만큼 우수한 인재들이 관련 분야로 몰렸기 때문이다. mRNA 방식의 코로나19 백신으로 유명한 모더나의 공동창업자 중엔 의사가 있다. 하지만 최고 인재가 몰리는 국내 의대에서 과연 이런 '의사과학자'가 얼마나 탄생했나. 의료 분야가 중요하지만 이공계 인재 확보라는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의 인재 배분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의사를 충원하는 방법이 꼭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미용성형 분야 중 다른 직역에 개방할 것을 찾고, 외국인 의사를 유치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은 수로를 잘 고치면서 물을 부어줘야 한다.
김원배 논설위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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