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예수 탄생일 맞나요?…추기경과 목사님 똑닮은 답 [종교의 삶을 묻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간담회 자리에서 누군가 물었습니다. “12월 25일이 정말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인가요?” 맞은 편에 앉은 소강석(새에덴교회) 목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짜보다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더 중요합니다.”
예수의 탄생일에 대해선 사실 이견이 많습니다. 지금은 지구촌 사람 대부분이 양력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라 부릅니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아기 예수에 대한 미사와 예배가 곳곳에서 열립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의 유래는 로마의 동짓날 축제입니다. 이 축제는 12월 말경 1주일 정도 열렸다고 합니다.
그럼 로마의 동짓날은 무슨 날일까요. 그리스도교는 처음에 로마제국으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당시 로마의 종교는 다신교였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태양신을 섬겼습니다. 로마의 동짓날은 다름 아닌 태양신의 탄생일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동지 지나 열흘이면 해가 노루 꼬리만큼씩 길어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동짓날 다음부터 해는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합니다. 로마인들이 동짓날을 태양신의 탄생일로 정한 이유입니다. 이날을 기점으로 하늘에 해가 떠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서기 313년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했습니다. 이와 함께 로마인들이 추앙하던 대표적인 축일이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축일로 바뀌었습니다. 태양신의 탄생일로 여기던 날이 예수의 탄생일로 바뀐 것입니다. 로마 제국을 중심으로 그리스도교는 세계로 뻗어 나갔고, 이와 함께 크리스마스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16세기에는 새로운 달력이 등장했습니다. 로마력보다 더 정교한 ‘그레고리력’입니다. 요즘 우리가 쓰고 있는 태양력입니다. 가톨릭의 그레고리 교황이 이 달력을 썼기에, 그 영향력 아래 있던 국가들은 다들 그레고리력을 썼습니다.
그런데 서방의 로만 가톨릭이 아닌 동방의 정교회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그레고리력을 수용하지 않고 ‘율리우스력’을 썼습니다. 12월 25일이 율리우스력에서는 1월 7일입니다. 요즘도 유럽 동유럽의 정교회에서는 예수 탄생일이 1월 7일입니다. 그럼 대체 어떤 날이 예수께서 태어난 날일까요. 요즘도 예수의 탄생일은 논란의 대상입니다. 정확한 역사적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故) 정진석 추기경에게 이 물음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정 추기경은 이렇게 답하더군요. “예수님이 12월 25일에 오셨거나, 아니면 24일이나 26일에 오신 게 큰 차이가 있나?” 그러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습니다.
정 추기경은 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날짜가 중요한 게 아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중요한 거다. 예수님은 12월 25일에만 오시는 것이 아니다. 바로 여러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여러분의 일상, 그 일상의 매 순간순간에 오셔야 하는 거다.” 그렇게 정 추기경은 ‘기록의 예수’를 찾지 말고 ‘생명의 예수’를 찾으라고 했습니다.
똑같은 질문을 서울 강남의 사랑의교회를 개척한 고(故) 옥한흠 목사에게 던진 적이 있습니다. 옥 목사는 이렇게 답하더군요. “성탄의 날짜가 중요한 게 아니다. 오심의 의미가 중요하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찾아오신 날. 이게 성탄절의 키포인트다.”
그렇다면 ‘예수 오심’의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요. 옥 목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으면서 이런 복도 받고, 저런 복도 받고 싶어한다. 그러다 신앙이 성숙해지면 달라진다. ‘이런 것도 포기하겠습니다, 저런 것도 포기하겠습니다’가 된다. 그렇게 조금씩 예수님이 내 안을 차지하도록 자리를 내주게 된다. 예수님 말씀을 내 안에 간직하고,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길 원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떻겠나. 예수께서 차지하는 공간이 내 안에서 점점 더 넓어진다. 그런 식으로 예수의 말씀이 나의 살이 되고, 나의 피가 되는 거다.”
듣고 보니 성탄절은 단순하게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 아니더군요. 이 땅에 오신 예수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되묻는 날이더군요. 예수의 살과 피가 어떡하면 나의 살과 피가 될 수 있는지, 그걸 짚어보게 하는 날 말입니다.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세상에서 힘 있고 위대한 자들이 용기를 잃는 곳, 그들의 영혼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장소가 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름 아닌 ‘말구유와 십자가’입니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62) 목사는 “말구유와 십자가, 이 둘이 우리에게 삶의 기준을 제시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예수의 시작이고, 또 하나는 예수의 끝입니다. 그 둘을 이으면 길이 생깁니다. 예수께서 몸소 걸어갔던 길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길 원한다면 누구라도 가야 할 길입니다. 그 길의 출발선이 성탄절입니다.
올해는 물음을 던져보는 성탄절이 되면 어떨까요. 말구유와 십자가, 그 둘을 잇는 길. 그 어디 쯤에 나는 서 있을까. 그걸 차분히 묵상해보는 성탄절을 맞아보면 어떨까요. 메리 크리스마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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