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화양연화가 지나간 뒤의 착각
화양연화(花様年華)는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어느 순간을 말해. 생각해보면, 화양연화가 없는 삶도 없고, 화양연화가 지속하는 삶도 없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화양연화는 잠시 스쳐 가는 간이역 같은 거지. 그 슬픔의 평범성은 우릴 눈물짓게 하지만 한편으론 위안을 주기도 해. 화양연화가 지나도 삶은 계속되잖아.
영화 ‘나폴레옹’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일대기를 빠르게 훑고 가지. 그중에서 조제핀과의 애증을 빼고 나면 ‘전쟁 영웅의 흥망성쇠’가 오롯이 남아. 1805년 12월의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의 그는 찬란하게 빛나. 지형지물을 철저히 파악한 뒤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을 사지(死地)에 몰아넣는 그의 전략적 능력은 완벽 그 자체니까.
그러나 10년 후 워털루 들판에선 그의 얼굴에 광채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아.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시간을 끌다가 영국군과 프로이센군에 협공당하는 신세가 되지. 대포와 기병대가 적군의 방어막을 뚫지 못하자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말을 타고 내달리기도 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영국의 웰링턴은 개탄하지. “참을 줄을 모르는군!”
그토록 탁월하던 나폴레옹이 왜 곤두박질치게 된 걸까. 한 사람의 능력도 늘 같을 수는 없어. 아우스터리츠의 나폴레옹은 누구도 막지 못할 기세에 올라탔지만, 워털루의 나폴레옹은 유배 생활에서 빠져나와 한풀 꺾인 상태였어. 무엇보다, 무적의 군대였던 프랑스군이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의 혹독함을 맛본 뒤였고….
“나는 이곳 워털루를 알고 저들은 모른다.” 화양연화가 지난 줄도 모르고 허세를 부리던 나폴레옹의 시대는 그렇게 저물고 말아. 전성기의 실력으로 착각하다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거지. 내리막길에 있는 자는 상대가 실수할 가능성보다 내가 실수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해. 하지만 어쩌겠어. 미망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자기 성질대로 운명을 향해 직진해가는 게 또한 인간인 것을.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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