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혜의 미술로 한걸음] 암각화에 큰절 올린 사진가 강운구

2023. 12. 22. 00:2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인혜 미술사가

1942년생. 올해 81세인 강운구는 사진가다. 그는 한때 수많은 근현대 예술가의 초상사진을 찍었다. 박경리·김승옥·허백련·오지호·박고석·장욱진 등 그가 찍은 예술가 사진을 보면, 매우 평범하고 자연스러운데, 가끔 소름 끼칠 정도로 섬뜩하다. 그 예술가의 ‘에센스’에 가까이 접근했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때 든 생각. ‘이 사진가는 무림의 고수다.’

강운구가 이번에는 중앙아시아 암각화 사진을 잔뜩 찍어 왔다. 시발점은 51년 전, 울주 반구대 암각화가 처음 발견되어 대서특필됐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사진이 신문에 났는데, 이 고래들이 세로로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는 것처럼 표현된 것이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 암각화 고래가 세로인 이유는?
50년 전 반구대에서 품은 의문
중앙아시아 일대 3년간 탐색

중앙아시아 암각화를 찾아나선 강운구의 촐폰아타, 키르기스스탄, 2017. [사진 강운구]

왜일까? 가로로 유영하는 고래가 아닌, 왜 세로로 서 있는 고래를 그렸을까? 강운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으나, 지금껏 어떤 논문에도 이에 대한 의문조차 없었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이 직접 그 해답을 찾고자 중앙아시아로 떠났다. 학자들이 반구대 암각화는 중앙아시아의 영향권에 있었다고들 하니, 거기에 가면 답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그는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기스탄 등지와 러시아·몽골·중국을 약 3년간 줄기차게 탐사했다. 파미르고원, 톈산산맥, 알타이산맥 언저리를 주로 뒤졌다. 나이 여든에 그 오지를 생고생하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되돌아와 다시 반구대 앞에 서니, 뭐가 좀 보이더라는 거다. ‘아, 고래가 서 있는 것은 살아있음을 표현한 방식이구나.’ 죽은 고래는 배를 보인 채 옆으로 누워 있는 모습으로 표현한 반면, 살아있는 고래는 수직으로 그려 생사(生死)의 모습을 구분했다고 그는 결론 내렸다. 끝.

그런데, 우리는 그가 정말 이런 “쩨쩨한 의문”(강운구의 표현) 때문에 중앙아시아를 갔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그에게 이 질문은 단순한 ‘트리거’에 불과하다. 그는 그를 매료시킨 암각화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것이 보여주는 ‘사실’ 자체와 그것을 해석하는 인간의 ‘상상력’ 사이를 자유로이 넘나들고 싶었다. 핵심은 말이다. 고래가 서 있는 이유에 대해 그가 내린 결론이 ‘정답’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모종의 결론을 내리기까지의 과정과 경험에 있다.

그가 직접 발로 뛰면서 깨달은 일차적인 사실은 이런 것들이다. 고대인은 무엇보다 파티나(광물질을 품은 돌이 산화되어 표면이 검게 뒤덮인 현상)가 잘 되어 있어, 그리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돌에 매료됐다. 파티나가 잘 형성된 돌 표면은 검기 때문에, 조금만 힘을 줘도 흰 바닥이 드러나서 그리기가 쉽다. 그가 관찰한 사실엔 이런 것도 있다.

“중앙아시아 암각화에는 식물 형상이 없고, 대부분 동물이다.” “인간은 늘 동물보다 작게 표현되며, 인간이 등장할 경우 거의 활로 동물을 포획하고 있다.” “오늘날의 인터넷처럼 그때의 암각화는 정보공유의 장이어서, 바퀴와 같은 신문물을 보게 되면 그걸 그림으로 기록했다” 등등. 이런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흥미롭고, 갖가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고 강운구가 갑자기 고고학자가 되겠다고 암각화를 찾아 헤맨 것은 더욱 아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사진가다. 그에게 암각화가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그의 ‘사진가적’ 시선 때문이었다. 암각화는 고대인이 실제로 본 것만을 그림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충동과 욕망, 삶과 죽음, 생활과 믿음에 대한 담백하고 정직한 표현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도 사진기를 매고 다니는 노장의 사진가가 평생 해온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대에도 지금도, 인간이 평범한 삶 속에서 할 수 있는 조그마한 가치 있는 일 중 하나는 ‘정직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강운구는 수만 개 돌무더기 사이에 수천 개 암각화가 남아있는 중앙아시아 첫 답사지에 도착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큰절을 올렸다고 한다. 약 3000년 전 그 땅을 밟았을 고대인의 자취. 그것은 존재만으로 일종의 경외감을 준다. 황량한 산야에서 암각화를 찾아 헤매며, 그는 끊임없이 고대인과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내가 고대인이라면, 이 위치에 그림을 그렸을 것 같다”고 유추해야만 그는 암각화를 찾을 수 있다. 그가 본능적으로 사이트의 중심 바위를 찾아냈을 때, 그것은 그의 본능이 고대인의 본능과 일치한 순간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나눈 현대인과 고대인의 대화. 그것은 실로 웅장한 경험이었으리라. 그렇게 강운구가 만난 1000여 명의 고대 예술인이 현재 전시되고 있다.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내년 3월 17일까지.

김인혜 미술사가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