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수의 카운터어택] 부재의 존재감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에서 뛰었던 이정후가 지난 15일 미국 프로야구(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돈 얘기에 눈길이 간다. 계약금과 향후 여섯 시즌 연봉을 합쳐 1억1300만 달러(약 1468억원)다.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을 거친 만큼, 원 소속팀 키움도 최대 1882만달러(약 248억원)의 이적료를 받는다. 키움 1년 구단 운영비와 맞먹는 액수라 한다. 키움은 모기업 없이 팀 명명권 판매가 주요 수익원인 구단이다. 살림 빠듯한 구단에 큰돈 안기고 떠나는 서사. 어디선가 봤는데….
이정후의 아버지 이종범은 해태 타이거스 소속이었던 1997년, 시즌 직후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로 이적했다. 그 전 시즌과 그 시즌 해태를 한국시리즈 연속 우승으로 이끈 직후였다. 당시 해태는 모기업 부도로 자금난을 겪었다. 주니치가 해태에 지급한 이적료는 4억5000만엔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환율이 치솟아 90억원 가까운 액수였다. 당시 해태의 1년 구단 운영비보다 많았다고 한다. 맹활약 뒤 큰돈까지 남기고 떠나는 게 부전자전이다.
앞서 1996년 주니치로 이적한 선동열에 이어 이종범까지 떠나자 해태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김응용 당시 해태 감독 푸념은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은 명언이 됐다.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천하의 명장도 키 플레이어가 연거푸 떠나자, 그 어마어마한 ‘부재의 존재감’ 앞에 하릴없었다. 속담도 있지 않나.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지내고 보니 옛말은 틀린 게 별로 없더라.
한편, 최근에도 부재의 존재감에 맞섰던 명장이 또 한 사람 있다. 그는 다음 달 더 큰 부재의 존재감에 직면할 위기다. 주인공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의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이다. 토트넘은 2023~24시즌 개막 후 EPL 10경기 무패(8승 2무)를 질주했다. 그런데 지난달 초 공수의 핵인 제임스 메디슨과 미키 판 더 펜이 부상으로 빠졌다. 그 뒤로 5연속 무승(1무 4패) 수렁에 빠졌다. 가까스로 분위기를 추슬렀나 싶은데, 조만간 주장이자 키 플레이어인 손흥민 없이 경기에 나서야 한다.
손흥민은 다음 달 13일 개막하는 아시안컵 축구대회 출전 차 새해 벽두 토트넘을 비운다. 한국이 결승에 오를 경우 토트넘은 EPL와 FA(축구협회)컵 대회를 합쳐 5경기를 손흥민 없이 치러야 한다. 포스테코글루 감독 입에서도 “흥민이도 없고, (메)디슨이도 없고”라는 푸념이 절로 나올 판이다. 그런데 반대로 그가 손흥민 부재의 존재감을 지워버릴 묘수를 내놓는다면. 진정한 명장의 반열에 오르지 않겠나. 위기가 곧 기회라 했다. 나중에 보니 옛말은 틀린 게 거의 없더라.
끝으로 한국 축구대표팀과 토트넘, 그리고 이정후의 선전을 기원한다.
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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