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초 싸움에 신발도 한몸…꼭 맞는 구두 찾은 ‘빙속여왕’
토끼띠 김민선(24·의정부시청)은 2023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지난 2월 막을 내린 2022~2023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여자 500m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여섯 차례의 레이스에서 금메달 5개, 은메달 1개를 따내며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스케이트 여왕의 자리에 오른 김민선은 “좋은 성과를 거둬서 기쁘다”고 했다.
그러나 올해 10월 개막한 2023~2024시즌엔 굴곡을 겪었다. 1차 대회에서 5위에 머물렀고, 2차 대회 두 번의 레이스에서도 2, 3위를 차지해 우승하지 못했다. 갑자기 부진했던 건 스케이트화(靴) 때문이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신발을 교체했는데 불편함을 느꼈다.
김민선은 “선수들끼리 자기한테 꼭 맞는 구두를 찾는 게 평생에 한 번뿐이란 이야기를 하곤 한다. 1000분의 1초까지 다투는 종목인 만큼 신발에 특히 예민하다. 보통 3년 정도 스케이트화를 신는데 지금 신발은 4년이나 신었다. 다음 올림픽(2026년 밀라노)을 염두에 두고 미리 신발에 적응하려고 새 구두를 맞췄는데 불편함을 느꼈다. 어쩔 수 없이 옛 신발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고 말했다.
신발을 바꾸자 문제가 해결됐다. 3차 대회에서 시즌 첫 금메달을 따냈고, 4차 대회 1차 레이스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2차 레이스에선 에린 잭슨(미국)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월드컵 랭킹 포인트에서도 잭슨(374점)에 이은 2위(352점)가 됐다. 김민선은 “1등이 되는 것보다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가 힘들다는 말을 실감했다. 부담을 느꼈고, 즐기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내년 2월까지 이어지는 2023~24시즌 남은 레이스는 이제 세 차례다. 자력 우승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모두 1위에 오른다면 역전 우승 가능성이 열린다. 김민선은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확신은 없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가장 신경 쓰는 건 스타트다. 김민선은 “올 시즌 100m 구간 기록이 10초5~10초6대였는데 지난 레이스에서 처음으로 10초49를 기록했다. 꾸준히 10초4대에 들어간 뒤 10초3대를 찍는 게 목표”라고 했다.
김민선은 11세 때 스케이트를 처음 탔다. 쇼트트랙 취미반으로 시작했지만, 롱트랙으로 전향한 뒤 두각을 나타냈다. 김민선은 “쇼트트랙은 몸싸움도 많고, 변수도 많다. 나는 혼자 달리는 걸 좋아해 스피드스케이팅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2016년 릴레함메르 청소년올림픽에서 금메달(500m)을 따냈던 김민선은 이듬해 7월 37초70을 기록, 2007년 이상화가 세운 세계 주니어신기록(37초81)을 갈아치웠다. ‘이상화의 후계자’란 타이틀도 이때 생겼다.
하지만 생애 첫 올림픽인 2018 평창대회를 열흘 앞두고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이 찾아왔다. 김민선은 “(요추)통증이 심해 세수도 하기 힘들었다. 신발을 신으려고 허리를 숙일 때도 아팠다. 진통제를 맞고 올림픽에 나갔다. 그때 무리하게 경기를 한 탓에 회복이 더 힘들었다. 병원마다 진단이 달라서 애를 먹었다. 여러 가지 치료와 재활을 하면서 코어 강화 훈련을 했다”고 했다. 그러나 메달을 기대했던 베이징올림픽에선 7위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허리 통증이 사라지면서 기록도 점점 좋아졌다. 제갈성렬 의정부시청 감독의 조언으로 중장거리 훈련을 하면서 경기 막판까지 힘있는 레이스를 펼칠 수 있게 됐다. 김민선은 “갑자기 통증이 사라졌다. 믿기 힘들 정도인데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엔 의미있는 시간도 가졌다. 처음으로 팬미팅을 열고, 팬들과 만났다. 김민선은 "설렘과 걱정이 반반이었다. 국제대회가 많아 팬들을 만날 기회가 적은데,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정말 응원을 받고 있구나'라는 느낌과 함께 힘을 얻었다"고 했다. 팬들을 위해 걸그룹 블랙핑크의 노래에 맞춘 댄스도 펼쳤다. 김민선은 "학원까지 다니며 열심히 했다. 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를 해본 적도 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고 웃었다.
힘들 땐 반려견 모카와 함께 시간을 가지며 힐링한다. 김민선은 "예전엔 베이킹이나 활동적인 것취미도 가졌는데 요즘은 쉬는 게 좋다. 강아지와 산책하고, 친구들 만나 밥 먹고 카페 가는 게 좋다"고 했다. 그는 "모카는 진천선수촌 근처 카페에서 임시보호하던 유기견이었다. 보는 순간 너무 키우고 싶어 데려왔다"고 했다.
밀라노올림픽까지 남은 시간은 2년 2개월이다. 베이징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아쉬움에 눈물까지 흘렸던 김민선은 “앞으로 2년 동안 기량을 갈고 닦겠다”며 “의미는 다르지만,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다면 또다시 눈물이 날 것 같다. 금메달을 따고 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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