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국가배상 첫 인정…26명에 146억 지급 판결
법원이 군부 독재 시절 부랑자로 찍혀 인권을 유린당했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1987년 원생 35명의 집단 탈출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36년 만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9부(부장판사 한정석)는 21일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하모씨 등 26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피해자에게 수용 기간 1년당 8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총 청구금액 203억원 중 72%인 145억8000만원을 인정했다. 피해자 1인당 8000만~11억 2000만원이다. 이번 판결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2021년 5월 이후 제기한 16건의 국가 손배소 중 첫 판결이다.
먼저 피해자를 위로한 재판부는 “대한민국은 1975년 (부랑인 신고·단속·수용과 관련한) 내무부 훈령으로 원고들을 단속하고 강제 수용했는데, 이 훈령은 법률 유보·명확성·과잉 금지·적법절차·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한 위헌·위법적 훈령”이라며 “이에 따른 강제 수용도 위법한 조치”라고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정부 측의 소멸 시효 완성 주장은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은 1975년 박정희 정부가 부랑자 단속을 위해 제정한 내무부 훈령 제410호를 근거로 육군 부사관이던 고 박인근씨가 전국 최대 규모 부랑인 보호시설인 형제복지원을 설립한 게 발단이었다. 박씨 등은 군부독재 시절인 1970~80년대 시민들을 납치·감금한 뒤 구타·학대·강제노역 등으로 인권을 침해했다. 이 과정에서 사망자를 암매장하거나 일부 시신은 해부실습용으로 팔았다. 경찰과 공무원도 뒷돈을 받고 범행에 가담했다. 1975~86년 형제복지원 입소자는 3만8000명이 넘었고, 657명이 폭력·고문 등으로 사망했다.
박씨는 이 사건으로 1987년 재판에 넘겨졌지만, 징역 2년 6개월형에 그쳤다. 2018년 11월 문무일 검찰총장이 검찰개혁위원회 건의에 따라 박씨 사건을 비상상고했다. 대법원은 2021년 3월 상고를 기각하면서도 “과거사위가 이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한 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해 8월 이 사건을 “국가 공권력의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인정했다. 피해자 이모씨는 선고 직후 “판결에 대한 항소는 피해자들이 하면 모를까 국가에서는 안 했으면 좋겠다. 피해자들은 빨리 끝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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