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 ‘친구 카페’ 편의점식 ‘반값 헬스장’ 초가성비 오마카세…쌀·간장 편집숍도
1인 가구 증가, 비혼,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 지방 소멸 등….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문제를 일본은 수십 년 전부터 겪어왔다.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여러 과제를 떠안은 상황에서 다양한 생존 방법을 먼저 고민해온 만큼, 우리에게 좋은 나침반이 될 수 있다. ‘도쿄 트렌드 투어’에 참여해 도쿄에서 최근 어떤 트렌드가 유행인지를 둘러본 배경이다.
‘반려돼지’부터 손님과 반말까지
시부야 하라주쿠역 앞에 펼쳐진 다케시타 거리는 우리나라 홍대 거리를 연상케 한다. 음식과 패션에서 일본의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거리로 유명하다.
다케시타 거리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가게는 2019년 문을 연 반려돼지 카페 ‘마이피그’다. ‘일본 최초의 마이크로 돼지 카페, 돼지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고객은 돼지와 교감을 나눌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다.
사전에 예약한 손님만 입장 가능한 이 카페는 인기가 워낙 많아 일주일 전 예약이 필수라는 전언. 무제한 음료를 포함한 30분 기준 이용료는 약 1500엔 정도다.
마이피그 돼지는 체중이 일반 돼지의 10분의 1 수준인 20~40㎏에 불과한 소형 품종이다. 강아지 몰티즈나 푸들 정도 크기다. 마리당 분양가는 200만~300만원 정도. 카페에는 이런 소형 돼지들이 20마리가량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자리에 앉으면 무릎을 기어오르는 등 반려견 못지않게 사람을 잘 따른다. 귀여운 외모의 마이피그 돼지가 인기를 끌며, 현재 일본 내 매장은 9개까지 늘어났다.
하라주쿠에는 또 다른 이색 카페가 있다. 지난 4월 오픈한 ‘친구가 하는 카페(TYC·TOMODACHIGA YATTERU CAFE)’다. 이름처럼 손님이 입장하면 직원들이 다가가 친한 친구처럼 “어서 와 오랜만이야”라며 ‘반말’로 맞이한다. 손님 나이가 10대든 60대든 상관없이 카페 안에서는 모두가 친구라는 개념이다. 인테리어도 카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긴 일자형 테이블을 배치해 다른 일행과도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여고생과 넥타이를 맨 아저씨가 자연스럽게 반말로 대화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 카페만의 특별한 메뉴도 있다. ‘언제 먹어도 좋은 음료’다. 주문하면 무작위로 ‘추천 소프트드링크’가 나온다. 가게에서 친구가 늘 주문하던 음료라는 개념으로, 친근함을 드러내는 메뉴다.
전문가들은 이런 친구 콘셉트 카페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직원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프랜차이즈와 개인 식음료(F&B) 매장 6개를 운영하는 이도원 풍바오 대표는 “사람마다 반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나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밤에는 술을 판매하는 주점으로 바뀌는 만큼, 손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적절한 톤앤매너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인 고깃집, 편의점식 헬스장
도쿄에서 최근 유행 중인 트렌드의 하나가 혼자 가는 고깃집 ‘야키니쿠라이크’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오전부터 혼자 고기를 구워 먹는 손님들이 가득하다. 일부 2인 테이블도 마련돼 있지만, 식당 대부분 좌석은 한 의자당 작은 화로가 1개씩 붙어 있는 ‘바(Bar)’ 형식이다. 손님들은 자리에 일렬로 나란히 앉아 개인 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는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인기 메뉴 ‘라이크 콰트로 세트’ 가격은 200g에 약 1400엔(약 1만3000원). 갈비, 갈매기살 등 고기 3종에 밥, 국, 김치가 함께 제공된다. 주문은 각 자리마다 배치된 태블릿PC로 한다. 엄청난 가성비에 인기를 끌며 점포 수가 2020년 3월 28개에서 지난해 80개를 돌파하며 2년 사이 3배나 늘었다.
미슐랭 2스타 오마카세를 5만원대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초밥집 ‘긴자 오노데라 등용문’도 최근 입소문을 타는 곳이다. 긴자오노데라스시그룹은 30만원대 고가 오마카세 브랜드다. 같은 식재료를 쓰면서도 5만원대로 가격을 대폭 낮춘 비결은 두 가지. 서서 먹는 ‘타치구이’ 방식으로 회전율을 높이고, 비숙련 견습생 셰프를 고용해 인건비를 절감한 덕분이다.
이런 방식으로 긴자오노데라그룹은 30만원, 15만원, 5만원, 3만원대 다양한 가격대로 브랜드를 확장했다. 단계별 가격 전략은 차츰 값비싼 본점으로 고객을 유도하는 효과를 낸다. 울산에서 돈가스, 중식당 등 5개 식당을 운영하는 김준헌 오사카에프앤비 대표는 “서서 먹어야 한다는 점이 불편할 수 있지만, 그 덕분에 손님들은 높은 품질의 오마카세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그룹 차원에서 견습생에게 실전 경험을 쌓게 해 본사로 데려오는 육성형 시스템도 인상적이다”라고 말했다.
편의점과 바가 결합된 ‘컨비니언스 바’도 독특한 모델로 관심을 끌고 있다. 2022년 10월 도쿄 신주쿠 호텔 지하에 선보인 이 가게는 바와 붙어 있는 편의점에서 안주를 사와 술만 주문해 즐기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안주 매출을 과감히 포기한 대신 일평균 1000명 안팎의 편의점 유동인구를 흡수했다. 편의점 8개를 운영 중인 심규덕 SS컴퍼니 대표는 “편의점과 바의 결합은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모델이다. 고가의 주류뿐 아니라 편의점 안주와 어울리는 저렴한 주류까지 판매 제품 라인업을 확장한다면 시너지가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신개념 헬스장 ‘초코잡’도 눈길을 끈다. 출퇴근길에 버스를 기다리다, 또는 친구와 약속 시간이 조금 남았을 때 짬을 내서 운동할 수 있는 ‘편의점식 헬스장’이다. 편의점에 들르듯 운동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들어와서 자유롭게 운동하고 가는 식이다. 매장에는 샤워실도, 관리하는 상주 직원도 없다. 원가가 줄어드는 덕분에 회비는 월 3만원으로, 기존 헬스장의 반값이다.
초코잡은 바빠서 시간은 부족하지만 자기 관리에는 진심인 MZ세대 젊은 층을 공략했다. 문을 연 지 1년여 만인 지난 8월 회원 수 80만명을 돌파하며 업계 1위에 올라설 정도로 인기가 폭발적이다.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지점 1000여곳을 운영 중이다.
장인 정신으로 부가가치 높인 가게
쌀&간장 편집숍…1만원대 군고구마
도쿄에는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가게가 즐비하다. 대표적인 곳이 도쿄 긴자에 위치한 ‘츠보야키이모’다. 이 가게는 군고구마 1개를 약 1만원에 판매한다. 1개에 1200엔, 반 개에 650엔이다. 군고구마 1개에 1만원이 넘는 가격은 소비자에게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 처음에는 장사가 잘될까 의문스러웠지만, 다수의 단골손님들이 수시로 매장을 방문하는 모습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객들은 “맛이 있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도 계속 찾게 된다”고 입을 모았다.
군고구마 맛의 비결은 요리법에 있다. 이 가게는 항아리로 굽는 100년 전 요리법을 적용했다. 항아리에 고구마를 넣고 2시간에 걸쳐 천천히 구워야 가장 맛있는 군고구마가 완성된다고. 맛을 보장하기 위해 1시간에 단 15개 고구마만 생산한다. 고구마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고구마라떼도 인기 상품이다.
‘아코메야’는 밥의 특성을 분석해 밥 본연의 맛을 살린 식당이다. 아코메야는 ‘쌀 가게’라는 뜻으로, 본래 ‘쌀 편집숍’에서 시작된 가게다. 일본 곳곳의 맛있는 쌀을 모아 밥을 짓고 각각의 특성을 분석, 밥의 질감이나 찰기를 수치화해 점도표로 만들었다.
식사 자리 건너편에는 쌀과 반찬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각종 쌀은 물론, 밥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반찬, 소스, 술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한다. 최근에는 주방용품까지 상품군을 확장했다. 아코메야 도쿄 관계자는 “사람들이 어떤 지역 쌀이 유명한지는 알아도 왜 맛있는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밥의 특성을 수치화해 어떤 점에서 밥이 맛있고 어울리는 반찬은 무엇인지 제안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식당은 체험 공간으로 운영한다. 쌀만 좋으면 평범한 반찬과 먹어도 맛있는 식사가 가능하다는 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라고 덧붙였다.
아코메야가 쌀 편집숍이라면, 마츠야 긴자 백화점 지하 2층에 있는 ‘장인간장’은 간장 편집숍이다. 전국 간장 양조장에서 납품받은 100여개 간장을 100㎖ 샘플 크기로만 판매한다. 일단 맛을 보고 맛있으면 해당 양조장에서 주문하도록 해 상생을 추구한다. 간장 포장지에는 간장과 잘 어울리는 음식이 그림으로 표시돼 있다. 아이스크림용 간장, 계란밥용 간장, 적색·백색 사시미용 간장 등이다. 100㎖ 샘플의 개당 판매 가격은 400~600엔 정도.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몰에서도 운영 중이다.
평일 저녁에도 만석…하라주쿠 제쳤다
도쿄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트렌드는 바로 ‘한류’다. 도쿄를 넘어 일본에서 가장 핫한 상권이 시부야·하라주쿠에서 한인타운이 있는 신오쿠보로 넘어갔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대표적인 한인타운으로 꼽히는 신오쿠보 거리는 명성에 걸맞게 각종 한국 음식점이 즐비하다. 떡볶이, 삼겹살, 불고기 등 각종 한국 음식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줄줄이 붙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인 가게들은 한국식 주점이다. 평일 늦은 저녁에도 대기 손님이 있을 정도다. 조개구이 전문 프랜차이즈로 8개 매장을 운영 중인 이경욱 하와이조개 대표는 “한국식 주점 인기가 높으니 일본에서 K-조개구이 매장을 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단, 한류 열풍에 힘입어 창업을 쉽게 생각하고 뛰어드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특히 처음 창업하는 사람일수록 편견이나 아집으로 인해 아이템이나 전략 설정에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다. 예비 창업자나 소상공인을 위해 ‘장사고수와 함께 떠나는 도쿄 트렌드 투어’를 기획한 노승욱 창톡 대표는 “창업 전 최소 3명의 장사고수에게 1 대 1 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며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 여럿이 다양한 관점과 노하우를 제시하면 같은 사안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도쿄 = 문지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9호 (2023.12.20~2023.12.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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