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기 속 한국 대응은···中 자원무기化 맞서 소재 개발·다변화
31년 만에 적자.
올해 대(對)중국 무역수지 성적표다. 우리나라는 1992년 중국과 수교한 후 첫해(10억달러 적자)를 제외하고 지난해까지 꾸준히 흑자를 내왔다. 그러나 올해부터 매달 적자 행진을 펼치며 결국 연간 단위 적자를 기록할 것이 확실해졌다. 한국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에서마저 적자를 기록하면 향후 미래는 아득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안미경중’을 외치지만 현장에서는 뾰족한 해법이 안 보인다는 의견도 많다.
탈중 아니라 극중(克中)해야
문재인정부 때 한일 관계가 경색됐다. 그 때문에 일본 정부는 핵심 기술 수출을 통제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핵심 산업에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됐다. 조선기자재 등 일부 품목은 실제 상당 기간 고전했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이 틈을 타 국내 소부장 기업이 기술 자립을 통한 수입품 대체를 위해 힘썼다. 그 결과 상당수의 반도체 소부장 기업은 기술 자립에 성공했다. 실적도 우상향곡선을 그릴 수 있었다. 한국기계산업진흥회의 ‘소재·부품·장비 산업 동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기준 한국의 고무·플라스틱, 금속제품, 금속가공제품, 일반기계, 정비장비, 정밀기기, 산업공장장비 등 7개 주요 수입 품목의 대일본 수입 비중은 전년 동기(19.77%) 대비 3.13%포인트 줄었다. 한국기계산업진흥회 관계자는 “일본이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를 했을 때 한국 정부, 민간 기업이 합심해 대안 마련을 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사례를 교훈 삼아 미중 무역 갈등 여파가 한국에까지 영향을 끼칠 때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대안은 선별적인 탈중국, 일부 산업군에서는 극중(克中) 전략이 거론된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제한적으로 탈중국을 외칠 분야는 중국이 먼저 ‘자원 무기화’를 외친 희토류, 소재 혹은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영역에 국한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기업이 음극재 소재를 대체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인 예다. 음극재의 주원료는 흑연이다. 국내 기업은 그동안 중국에 대부분 의존해왔다. 그런데 올해 중국은 갈륨·게르마늄·흑연을 수출 통제 품목에 올렸다. 이런 기류를 감지한 포스코케미칼은 오랜 개발 기간을 거쳐 최근 인조흑연 생산을 본격화했다.
여기에 더해 중국과 수출 경합 혹은 내수 시장 경쟁 품목에서는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극중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중국의 제조업을 뛰어넘을 신기술, 신제품, 신서비스를 못 만들면 답이 없다”며 “단순히 ‘탈(脫)중국’을 외칠 게 아니라 정부, 민간이 합심해 중국에 없는 모델, 중국이 추월하기 어려운 신기술·제품을 만드는 데서만 극중 전략을 펼쳐야 할 때”라고 말했다.
K푸드·베이커리 성장 ‘쑥쑥’
서울 강남에서 ‘낙곱새(낙지·곱창·새우)’ 메뉴로 유명한 낙월식당. 중국에서 레스토랑을 하던 사업가가 이 브랜드에 매료돼 상하이에 운영하던 식당을 접고 현지 중심가에 이 식당을 열었다. 130석 규모 상하이 낙월식당은 지난 11월 문 열자마자 ‘오픈런’이 생길 정도로 맛집 명소가 됐다.
‘아우어베이커리’ ‘버터풀앤크리멀러스’는 중국에서 한국 베이커리 열풍을 주도한다. 코트라(KOTRA) 톈진 무역관이 성공 사례로 다룰 정도다. 보고서는 아우어베이커리 현지 성공 진출 비결로 ‘고급스럽고 차별화된 인테리어’ ‘높은 품질’ ‘더티초코(아우어베이커리)’처럼 중국에서 접하지 못한 새로운 스타일의 메뉴 등을 꼽았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강철용 에이든랩 대표는 “최근 K푸드가 전 세계적으로 히트 치면서 중국인 사이에서도 단순히 현지인이 흉내 낸 한식당보다 한국에서 인지도 있는 맛집을 선호한다”며 “여타 도시에서도 한식당은 추가 출점 제안이 쏟아질 정도로 K푸드가 하나의 IP(지식재산권)로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K뷰티가 중국에서 ‘한물갔다’는 평가에도 불구, 신생 브랜드 LBB가 중국 신화그룹과 내년부터 3년간 800억원의 수출 계약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차별화된 원료, 고급 이미지 등이 먹히면서다. K패션 분야에서는 F&F의 MLB와 디스커버리, 스트리트패션 브랜드 ‘아크메드라비’가 중국 MZ세대에게 통하며 유행을 선도한다. F&F는 중국에서만 매출액이 1조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중국 내수 시장 잠재력, 변화상에 걸맞은 소비재로 문을 두드려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박승찬 중국경영연구소장은 “중국이 국산품 애용, 자국 브랜드 육성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한국 문화 위상이 올라간 만큼 세련된 브랜드 이미지를 갖춘 프리미엄 제품 수요는 있다”며 “중국 내수 시장의 취향과 안목을 끌어올릴 수 있는 소비재, 서비스 산업 진출은 앞으로도 유망하다”고 말했다.
요소수 사태 재발해도 속수무책
12.5 규획.
중국이 2011년 발표한 12차 5개년 개발계획을 뜻하는 말이다. 여기에는 브랜드 육성, IT·자동차 등 핵심 산업에서의 경쟁력 강화, 외자 기업으로부터 자국 기업 보호, 중국 국산품 애용 장려(일명 궈차오 운동) 등이 담겼다. 10여년 동안 이 계획대로 중국은 성장을 거듭했다. 반면 한국 기업은 중국 시장에서 점차 밀려났다. 한때 ‘매장만 열면 팔린다’던 한국 자동차, K패션, K뷰티 제품은 이제 중국에서 외면받는다. 현대차기아는 아예 일부 공장 폐쇄를 단행했다.
김도학 네모파트너즈차이나 중국지사장은 “중국 정부는 한국 경제 성장을 벤치마크해 5개년 성장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나 기업은 이런 종합 청사진을 안일하게 여겨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현지 진출 한국 기업 상당수가 초라한 실적과 함께 중국 시장에서 퇴출됐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런 때 ‘지중(知中)파’ 전문가 집단을 더욱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단순히 근거 없이 ‘탈중국’만 외치다가는 실리를 놓칠 수 있어서다. 박승찬 교수는 “요소수 사태는 2년 전에도 발생했던 사안이라 그 이후 충분히 정부, 민간 대처를 할 수 있었는데도 막지 못했다. 이는 대중국 동향을 제대로 파악한 전문가 집단이 없다는 뜻이다. 중국 경제와 산업 공급망을 주관하는 전문 컨트롤타워가 전문가 위주로 새롭게 구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대안을 찾는다면 범정부 싱크탱크가 체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향후 위기를 예상한다면 사실 중국과의 관계를 서서히 줄여나가는 게 현명한 판단”이라며 “새로운 신흥 시장을 찾아야 한다는 마지막 경고라 할 수 있는데 정부, 민간 전문가 집단이 중국 대항마를 찾을 수 있게 머리를 맞댈 때”라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9호 (2023.12.20~2023.12.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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