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에서 밀려난 존재 ‘약자 남성’들
스기타 슌스케 지음, 명다은 옮김
또다른우주, 236쪽, 1만6800원
일본에서는 ‘남성학’이란 게 형성되고 있는 모양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은 일본에서 논의되는 남성학을 엿보게 해준다. 저자 스기타 슌스케는 이 분야를 대표하는 비평가다. 직장을 갖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 경험을 바탕으로 ‘프리터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무능력 비평: 노동과 생존의 에티카’ ‘도라에몽론: 급진적인 약함의 사상’ 등을 썼다. 프리터, 무능력, 약함 등 자본주의 사회가 주목하지 않는 단어들을 붙잡고 새로운 사상을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2016년 ‘인기 없는 남자의 품격: 남자에게 약함이란 무엇인가’를 시작으로 남성 문제 3부작을 집필 중이다. 2021년에 남성학 두 번째 책 ‘주류 남성에게 정직함이란 무엇인가: 미투에 참여하지 못하는 남자들’을 출간했다. 이번 책은 3부작에 속하지 않는 번외편이지만 저자가 전개하는 남성학의 요지를 경쾌하게 전달한다.
스기타 슌스케가 펼치는 남성학은 한 마디로 ‘약자 남성’론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을 약자로 규정하는 시각은 낯설다. 저자는 “현대의 약자 남성들은 글로벌 자본주의, 자유주의 사회에서 ‘방치되고’, ‘남겨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정의한다. “이 잔혹한 자본주의, 능력주의, 생산성 중심 사회에서 무능하고 무력하고 무용한 취급을 받는 사람들”, 외모나 가난·장애 등의 이유로 굴욕을 당하고 이성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남자들, 여성·장애인·성소수자·이민자 같은 소수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배적인 남성문화의 수혜자도 아닌 남자들. 그런 남자들이 있다. 그것도 꽤 많다. 알바족, 비정규 노동자, 은둔형 외톨이, 비자발적 독신, 독거 노인…. 저자는 남자들 가운데 80% 정도가 여기에 속한다고 본다.
“저마다의 복잡한 사정으로 빈곤, 박탈감, 존엄성 훼손을 떠안게 된 ‘약자 남성’들의 절망과 고뇌”는 실재하지만 이를 논의하기 위한 말과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성문화에서는 약함이나 실패를 포용하지 않으며, 페미니즘은 남성들 사이의 격차를 보지 않은 채 남성 전체를 다수자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약자를 옹호하는 좌파들도 이 가난한 노동자 계급을 무시하고 정체성 정치에만 치우쳐 있다.
“소수자는 차별당하는 속성을 무기로 내세워 정체성 정치로 전환할 수도 있다. 부당하게 억압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소수자 속성이 없는 남성들은 정치성을 띨 수 없다. 연대도 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내면의 불행, 고뇌 그리고 약함에서 비롯된 마음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안티’나 ‘인셀’의 어둠으로 빠지기 쉽다.”
저자는 이 시대 남성들에게서 약자성을 발견하고, 이 남자들을 ‘약자 남성’이란 이름으로 가시화한다. 자본주의와 남성문화, 페미니즘이 압도하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한 남성들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일본의 ‘초식남’, 한국의 ‘루저’ ‘이대남’ 등이 그런 단어들이다. 약자 남성이란 말은 이들 모두를 포괄하면서 이들에게 보편성을 부여한다.
‘약자 남성’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한 남성들이 이를 파괴적인 방식으로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안티 페미니즘의 논리로, 무차별 테러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이용될 수 있다. 이 책은 2021년 ‘분슌 온라인’에 발표한 글이 시초가 됐는데, 아베 총리 암살 사건의 용의자가 이 글을 읽고 자신의 트위터에 감상을 올린 사실이 알려졌다.
저자는 약자 남성들의 수치와 원한에 공감하면서도 “증오하지 말고 분노하라”고 주장한다. 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 약자 남성 대 페미니스트의 대립 등은 ‘가짜 대립’이라며 “우리는 ‘적’을 오인해 진흙탕 싸움처럼 서로를 미워하지 말고 이 세상의 시스템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약자 남성과 인셀이 벌이는 무차별 테러는 “현대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단순한 ‘폭발’과 ‘경련’에 지나지 않는다”며 “타인에 대한 증오와 치욕을 사회를 향한 집합적 분노로 변화시키라”고 촉구한다.
저자는 남성의 약함을 긍정하고 약함이 가진 급진적 에너지에 주목하면서 ‘약함의 사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얘기한다. “비정규적이고 주변적인 남성들은 어쩌면 남성 특권에 보호받은 패권적인 남자다움과는 다른 가치관, 즉 성과주의, 능력주의, 우생학, 가부장제 가치관을 대체할 급진적이고 근원적인 가치관을 발견해낼 기회를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와 소설을 분석하면서 남성의 약자성을 탐구해 나가는 것도 흥미롭다. 저자는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의 주인공 아서를 이 시대 약자 남성의 전형으로 묘사하고, ‘바냐 아저씨’ 등 안톤 체호프의 소설들을 약자 아저씨들의 이야기로 읽어낸다. 또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와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통해 약함을 인정할 수도, 말할 수도 없는 남성 약자성의 곤란을 들여다본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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