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어, 어!" 빙판길 미끄러지는 버스를 살렸습니다
[김정연 기자]
▲ 눈이 내려 하얗게 덮여 있는 군산 은파 유원지의 모습. |
ⓒ 김정연 |
지난 19일, 화요일 밤부터 소소하게 내리던 눈은 급기야 눈덩이로 변했다. 20일 수요일에는 한파와 대설경보가 발효되었고 이날 새벽 한파와 대설 주의 안내를 받았다. 오후가 되면서 전북 군산에는 더 많은 눈이 내렸다.
밤새 내린 눈으로 쌓인 눈은 약 20cm를 훌쩍 넘었고, 21일 오전 출근길은 여지없이 대혼란이었다. 휴대폰 안전 문자는 이른 새벽부터 계속 대설 경보와 폭설로 인한 미끄럼 사고에 주의하라고 알려왔다.
출근길 곳곳에서 갓길에 멈추는 차량이 발생했다. 원래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려 겨우 도착했다. 무사히 출근했다는 데에 안도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때 어린이집 버스로 보이는 노란색 버스 한 대가 눈길 위 경사로 인해 옆으로 미끄러지며 길가에 주차돼 있는 있는 차 옆으로 자꾸만 다가가고 있었다.
옆으로 미끄러지던 버스, 긴박했던 순간
곧바로 사고가 날 것 같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퀴가 미끄러지며 옆차에 부딪히려는 순간은 긴박했다.
"어, 어, 어!"
사무실 안에서, 빙판이 된 오르막길을 힘들게 올라가는 차들을 창밖으로 보고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 버스 기사는 곧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봤다(다행히 안에 탑승자는 없었다). 접촉사고는 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앞으로 가려던 버스는 갯벌의 게가 된 듯, 앞으로는 가지 못하고 옆으로만 미끄러지듯이 이동했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 버스가 차량 사이에서 미끄러지며 사고가 날 뻔한 현장을 시민들이 달려들어 힘을 모아 위기에서 구출하는 장면이다. |
ⓒ 김정연 |
길에 나가서 직접 보니, 미끄러진 버스와 주차된 차와의 간격은 겨우 한 뼘이나 됐을까? 충돌하기 직전이라 아슬아슬했다. 사람들이 달려 나오니 버스 기사도 차에서 내려 어떻게 할지를 같이 고민했고, 결국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차 뒤로 돌아가 버스를 밀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재빠르게 도로 옆에 설치된 모래함에서 모래주머니를 꺼내 뿌리고 있었다.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면서 빙판길 도로 위에는 어느새 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멈춰 있는 버스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비켜 가느라 모두 아찔했다. 어느새 남자 한 명이 도로 한복판에 서서 차량 통행 안내를 하고 있었다.
미끄러지는 차량은 뒤에서 밀어주며 옆으로 비켜 가라는 신호를 계속해서 보냈다. 신호가 다시 빨간색으로 바뀌고 차량이 줄어들었을 때 모두가 버스 뒤로 돌아가 다 함께 힘껏 버스를 밀기 시작했다.
▲ 폭설로 인해 빙판길 위에서 옆으로 미끄러지는 버스를 함께 밀어주는 시민들의 모습. 결국 옆차량과의 접촉사고 없이 무사히 오르막길을 넘어갔다. |
ⓒ 김정연 |
버스는 힘겹게 빙판 위를 미끄러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버스 뒤를 밀고 고개를 넘어설 때까지 손을 떼지 않고 버스를 따라 오르막길로 올라간 사람들이 시야에서 멀어졌다. 무사히 오르막길을 넘어서는 버스를 바라보며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도로 위에는 아직도 미끄러져 흔들거리는 차량이 많았다. 버스를 보낸 사람들이 여전히 다른 차의 뒤를 밀고 있었다.
드디어 버스는 충돌 위기를 벗어났고 함께 도움을 준 사람들은 환호했다. 함께였기에 나설 수 있었던 일이었다. 누군가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마 바라보고 안타까움만 내비쳤을 일이었지만,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세 사람이 되고 열 명이 되어보니 부끄러움도 힘든 것도 떨쳐낼 수 있었다.
속수무책으로 폭설에 파묻혀 다른 차와 부딪힐 뻔한 버스를 빙판길에서 구해준 사람들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모두 나서서 한마음 한뜻으로 혼잡한 도로 위를 정리하는 시민들의 힘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더 단합된 힘이 솟아나는 시민들의 힘은 이럴 때 빛이 나는 것 같다. 올겨울 폭설은 이제야 시작된 것 같지만, 한겨울 한파와 폭설이 몰려와도 시민들의 이런 힘이라면 무사히 잘 넘길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덧붙이는 글 | 개인 SNS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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