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106억, 서삼석 66억…여야 올해도 쪽지예산 담합했다

김효성, 김준영, 전민구 2023. 12. 2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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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가 사퇴 8일 만인 2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 출석해 동료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법정기한을 19일 넘긴 21일에야 처리된 2024년도 예산안에 여야 의원의 지역구 예산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내년 4·10총선을 3개월 앞두고 여야가 서로 ‘쪽지예산’을 용인한 결과다. 정치권에선 “선거를 앞두고 매표(買票)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중앙일보가 이날 2024년도 세출예산안 증액 및 감액 내역을 전수조사한 결과 지난 9월 제출된 정부안에는 없거나 소액이었던 사업이 큰 폭으로 증액된 채 본회의를 통과했다. ‘상임위원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예결위 소소위’를 거치는 과정에서 여야 실세 의원이 지역구 사업비 증액을 요구하면 이를 순순히 반영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장인 이철규 의원(강원 동해-태백-삼척-정선)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의 지역구에선 총 9개 사업에 걸쳐 58억9200만원이 증액됐다. 정부안에는 없던 ‘동해 묵호항 여객터미널 신축이전’(10억원), ‘태백 분뇨처리시설 개량사업’(11억3200만원) 등이 포함되면서다. 당 사무총장인 이만희 의원(경북 영천-청도) 지역구에서는 애초 58억8000만원의 사업비가 책정됐던 ‘영천 산단 진입도로 사업’이 25억원 늘어나는 등 총 6개 사업에 걸쳐 61억5400만원이 증액됐다. 김기현 전 대표(울산 남을) 지역구에서도 ‘울산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지원’(37억5000만원) 등 4개 사업, 106억4200만원이 증액됐다.

국민의힘 이만희 사무총장(왼쪽)과 이철규 인재영입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강서구 ASSA 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인재 토크콘서트 '대한민국의 보석을 찾다'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예결위 여당 간사인 송언석 의원(경북 김천)은 ‘김천 양천~대항 국도 건설’에 10억원을, ‘문경~김천 철도건설’에 20억원을 증액하는 등 총 50억6900만원을 추가 배정받았다. 또 ‘원조 친윤’ 권성동 의원(강원 강릉) 지역에서는 ‘지능형교통체계(ITS) 구축’ 사업 관련 예산 45억원이 새로 책정됐다. ‘친윤 핵심’ 장제원 의원 지역구인 부산 사상구의 ‘노후산업단지 개발 사업’은 정부 원안(384억원)보다 5억원의 예산이 더 늘었다. 당 정책위의장을 지냈던 성일종 의원(충남 서산-태안) 지역구에선 ‘태안 고남~창기 국도건설’에 100억원이 증액됐다. 윤재옥 원내대표 겸 대표 권한대행(대구 달서을) 역시 ‘달서구 임휴사개방형명상센터 건립’(1억5000만원) 등 3개 사업 6억5000만원을 증액했다.

이런 상황은 야당도 마찬가지다. 국회 예결위원장으로 예산안 처리 전(全) 과정에 관여한 서삼석 민주당 의원(전남 영암-무안-신안)은 ‘무안 현경~해제 국도건설’(10억원),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연장’(25억원) 사업 등 지역 예산 66억1500만원을 늘렸다. 민주당 정책위의장인 이개호 의원(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은 ‘영광 추모공원 봉안당 신축’(9억9400만원) 등 9개 사업에서 45억7200만원을 증액했다.

차준홍 기자


홍익표 원내대표의 내년 총선 출마지인 서울 서초구에서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리모델링’ 예산이 10억원 늘어났다. 친명계인 박찬대 최고위원(인천 연수갑) 지역구에서는 ‘연수구 지방보훈회관’(2억5000만원) 사업비가 새로 책정됐고, 예결위 야당 간사인 강훈식 의원(충남 아산을)은 ‘아산 둔포 원도심 연결도로 사업’(10억원) 등 35억8500만원을 새로 따냈다. 5선 중진인 변재일 의원(충북 청주 청원) 지역구에서는 정부안에는 없던 ‘청주국제공항 주기장 확충’ 사업에 100억원이 새로 배정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인천 계양을)는 ‘계양-강화고속도로건설’(1억원) 등 비교적 사업규모가 작은 사업 3건(총 7억800만원)에 대해서만 증액했다. 예산 심사 과정에서 동료 의원을 통해 요구했던 ‘인천 계양구 선주지동·둑실동 도로개설비’(18억8000만원)는 논란이 커지자 증액을 더는 요구하지 않았다.

차준홍 기자

여야는 당 차원에서 내걸었던 대표 사업도 대부분 증액했다. 국민의힘은 ‘취약계층 전기요금 감면’(2691억원), ‘천원의 아침밥’(5억원) 사업을, 민주당은 지역사랑상품권(3000억원) 등을 증액하면서다. 여야는 3000억원이 증액된 ‘연구개발(R&D) 사업비’에 대해서는 “사업비를 되살려 국가경쟁력을 확충시켰다”(국민의힘), “윤석열 정부의 비정한 예산을 바로잡았다”(민주당)며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놨다. 여야는 그러면서도 국회 관련 예산은 대거 증액했다. 정부안에서 9억9900만원이 책정됐던 ‘국회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사업은 76억100만원이 증액됐다. 국회 관련 예산 중 감액된 것은 단 1건에 불과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다른 부처 예산에는 엄격하고, 자신들이 쓸 예산에는 관대한 행태”라고 했다.

한편 윤석열 정부 관련 사업은 야당의 적극적인 감액 요구가 상당수 반영됐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조사’ 사업의 경우 정부안은 854억400만원이었지만 이 중 61억원이 감액됐다. 현 정부 중점 과제 중 하나인 ‘국립북한인권센터 건립’ 사업은 정부안(103억9200만원)의 절반 수준인 57억6300억원이 감액됐다.

서삼석 국회 예결위원장(왼쪽부터)과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간사, 송언석 국민의힘 간사가 1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신원식 국방부 장관 출석과 관련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이현출(정치외교학) 건국대 교수는 “여론 뭇매를 맞더라도 지역을 위해서는 정치력을 발휘했다는 것이 표에 도움이 되다 보니 의원들이 발 벗고 나서는 것”이라며 “그러나 국가 예산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효성·김준영·전민구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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