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성장 위해선 전기요금 결정 시스템 독립시켜야”
기후 위기 속에서 세계 각국이 기후 대응과 녹색산업 분야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다. 대통령 직속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의 김상협 민간위원장은 “이 거대한 흐름을 놓치면 완전히 밀려나고 만다”며 “기후 분야의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탄녹위는 탄소중립 정책을 심의하는 최상위 결정 기구다. 김 위원장은 윤석열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부터 원자력발전과 재생에너지를 결합한 ‘에너지 믹스’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다.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 있는 탄녹위 사무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한국의 에너지 정책 전환 방향과 녹색성장을 위한 구상 등에 대해 들어봤다.
김 위원장은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의 산업 구조상 원전을 포함해 다양한 무탄소 에너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에너지 믹스 모델을 바탕으로 세계 녹색산업을 이끌어가려면 그만큼 성공적·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녹색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제로 ‘전기요금 결정 체계의 독립’을 꼽았다.
-제28회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이 합의됐다.
“이번 협상은 화석연료 탈피가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보여줬다. 올해 COP28에선 파리 협약에 따라 그동안의 이행 성과를 점검하는 전지구적 이행점검(GST)이 이뤄졌고, 산유국 등의 반발로 ‘화석연료 폐지’에서 ‘화석연료로부터 전환’이라는 문구가 결정문에 담겼다. 이런 ‘워딩(wording) 게임’을 두고 글로벌 토크쇼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국가별 이익이 충돌하기 때문에 COP28에서 획기적인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보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기후분야로 천문학적인 돈이 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후 재원 규모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많다.
“COP 총회에서 기후 재원으로 850억 달러가 조성됐지만 충분치 않다. 그러나 COP28 합의문을 보면 2030년까지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 이행을 위해 5조8000억 달러 이상 투입돼야 하고, 청정에너지 분야에 4억5000억 달러를 투자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문화돼 있다. 이뿐만 아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기후테크를 중심으로 300개 이상의 데카콘(유니콘의 10배, 100억 달러 이상 기업 가치를 지닌 비상장 기업)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한다. 인공지능(AI)도 기후 대응 기술에 깊숙이 들어오는 등 엄청난 판이 펼쳐지고 있다. 이 흐름을 놓치면 한국은 완전히 뒤로 밀려나고 만다.”
-재생에너지 투자가 급격히 높아지는 추세인데 한국의 에너지 믹스 모델은 경쟁력이 있나.
“미국 영국 중국 일본 등은 한국이 주도하는 무탄소 에너지에 많이 공감하고 있다. 제조업이 강한 산업구조의 국가는 특정 에너지원을 지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탄소배출이 없는 그린 에너지 옵션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이것이 RE100처럼 하나의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으려면 우리가 모범적으로 에너지 믹스를 이루고, 그 성과를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 한국이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세계가 따라온다.”
-구상하고 있는 에너지 믹스는 어떤 모습인가.
“한국은 산업적 잠재력이 뛰어나다. 특히 한국형 소형모듈원자로(SMR)는 출력이 20%에서 100%까지 조절된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에 따라 SMR 발전량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상호 작동성이 높아지면 화석연료를 많이 줄일 수 있다. 원전 기술을 고도화하면서 재생에너지를 확충해 가는 것이 우리의 확고부동한 노선이다. 한국은 해상 풍력 발전 가능성이 큰데 초기 투자비용이 크다는 이유로 시작도 못하고 있다. 모든 부처가 새로운 기회에 눈을 뜨고 가야 한다. 앞으로는 원전, 재생에너지, 수소가 3대 에너지가 될 것이다.”
-한국이 녹색성장을 위해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는.
“현재 전기요금을 올리고 내리는 문제가 정치적으로 결정되고 있다. 하지만 총선 이후에는 에너지 가격 체계, 즉 전기요금 체계를 독립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에너지 가격 결정 기구를 전문화·독립화 하는 것이 선진국의 조건이 될 것이다. 한국의 에너지 시스템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와 결부되는 문제다.”
-전기요금 독립이 왜 중요한가.
“한국은 COP28에서 ‘세계 재생에너지 용량 3배 확대, 에너지 효율 2배 확대’ 협약에 참여했다. 앞으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미 전기 에너지가 원가보다 저렴하다. 저렴하게 에너지를 이용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위해 노력할 수 있을까. 한국전력의 에너지 독점 이유 중 하나는 그만큼 손해를 보고 에너지를 팔고 있다는 명분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뼈 아프고 힘든 작업이더라도 해야 한다. 탄녹위도 관련 부처와 이 문제를 면밀히 논의하겠다.”
-국제사회에서 바라보는 한국은.
“한국의 무탄소 에너지 이니셔티브 구상은 국제 주요 기관과 인사로부터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세계 10위 에너지 소비국인 한국은 기후 문제에서만큼은 10위에 걸맞는 발언권을 갖지 못하고 있다. COP28 기간 중 만난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로부터 한국이 석탄 발전 퇴출에 조속히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도 한국의 에너지 시스템이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땅 속 자원이 아니라 기술 자원을 활용하는 문제라면 한국이 잘 할 수 있다. 퍼스트 코리아,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
세종=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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